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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전쟁' 감독 "이승만 미화라고? 다른 영화와 균형 맞춘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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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다큐영화 '건국전쟁' 김덕영 감독

15일 서울 어느 극장에서 만난 김덕영 감독. 최기웅 기자

15일 서울 어느 극장에서 만난 김덕영 감독. 최기웅 기자

한국의 첫 대통령인 이승만을 재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의 돌풍이 놀랍다. 16일에 누적 관람객 50만 명을 돌파하면서, 역대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 흥행 5위에 올랐다.

지난 1일 개봉 당시, 스크린 167개, 일일 관객 5400여 명에 불과했던 이 영화는 점차 입소문으로 관객을 끌어 모아왔다. 특히 설 연휴(2월 9-12일)를 기점으로 가수 나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유명인들의 관람과 그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며 15일 기준으로 스크린 921개, 일일 관객 5만1000여명에 이르렀다. 영화의 각본과 감독을 맡은 김덕영 감독(59)조차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현상이다. 다큐멘터리, 그것도 정치 다큐멘터리가 관람객 10만 명을 넘긴 사례는 소수에 불과한데, 그 소수 또한 모두 진보 혹은 좌파 진영의 견해를 담은 다큐멘터리였기 때문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영화관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와 정치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관람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영화관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생애와 정치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관람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수 나얼이 영화 ‘건국전쟁’ 포스터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나얼 인스타그램 캡처

가수 나얼이 영화 ‘건국전쟁’ 포스터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나얼 인스타그램 캡처

‘건국전쟁’이 화제가 되면서 불편함을 표출하는 목소리도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4.19혁명을 촉발한 이승만을 미화함으로써 헌법의 정신을 훼손한다”는 비난이 많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 권칠승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 등)

이에 대해 김덕영 감독은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4.19의 정신은 자유를 위해서 불의에 항거하는 정신이다. 우리는 이승만에 대해 70년 동안 잘못되게 알고 있었고, 이것 또한 불의라고 생각한다. 나도 4.19정신을 높이 평가하며 이 영화는 결코 4.19정신을 훼손하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김 감독은 이승만이 자신이 이 땅에 뿌리내리려 애쓴 자유민주주의 정신으로 4.19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에 스스로를 결국 실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며 그런 맥락에서 하야 후에 대만 총통 장제스의 위로 편지에 '나는 위로 받을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고 영화에서 인용했다.

김 감독은 또한 ‘건국전쟁’이 이승만의 공과를 균형 있게 다루지 못하고 업적만 다뤘다는 지적에 대해 “그 동안의 문화콘텐트가 모두 그의 과오에만 치우쳐 있었기에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은 서강대 철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립영화계에서 활동해왔다. 6.25 전쟁 이후 동유럽에서 생활했던 북한 전쟁고아들의 행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2020)이 여러 국제영화제 본선에 오르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다음은 감독과의 일문일답.

감독으로서 ‘건국전쟁’ 흥행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선, 70년 동안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을 객관적이고 건조한 사실에 기초해서 이야기하니 사람들이 받는 충격이 큰 것 같아요. 댓글이나 관람평을 쭉 보면 ‘충격적이다’라는 표현이 많아요. 이걸 프로파간다처럼 제시했다면 우리 국민들이 세련되어서 안 통했을 겁니다. 또 한 가지는 이승만이란 인간의 삶이 고전적인 영웅의 서사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거예요. 신화에 나오는 영웅들은 처음에는 굉장히 잘 되다가 어느 순간 인생의 고비가 오고 완전히 밑바닥으로 가잖아요. 그래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지만 궁극적으로는 승리를 하는 그런 신화적인 구성들이 또 많잖아요. 이런 신화적인 요소, 비극적 영웅의 요소가 이승만의 삶과 이 영화 속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큐 영화 '건국전쟁'을 만든 김덕영 감독이 이승만 전 대통령의 1954년 방미 기간 뉴욕 맨해튼 '영웅의 거리' 카퍼레이드 영상이 담긴 필름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 감독이 70년만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발견했다. [사진 김덕영]

다큐 영화 '건국전쟁'을 만든 김덕영 감독이 이승만 전 대통령의 1954년 방미 기간 뉴욕 맨해튼 '영웅의 거리' 카퍼레이드 영상이 담긴 필름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 감독이 70년만에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발견했다. [사진 김덕영]

실제로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이 적지 않은데요.  
“중장년층도 그렇지만 젊은 여성 중에도 있습니다. 여성참정권 부분에서 2030 여성들이 굉장히 놀라는 거예요. 1948년 이승만이 선물처럼 투표권을 줬다는 거예요. 반드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될 게 1930~40년대까지도 많은 서구 선진국들이 여성에게 투표권을 주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서구에서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기 위해서 길거리에서 투쟁을 하다가 얻어맞고 끌려가고 심지어는 죽기까지 했단 말이에요. 스위스 같은 나라는 1971년에야 여성 투표권을 줬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1948년 건국을 하면서 (남성과 함께 일괄로) 여성 투표권을 줬습니다. 지금은 여성참정권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 당시로선 엄청난 사건이었어요. 그러니까 여성들 중에 그것을 몰랐던 것에 미안함을 느끼는 분들이 나오고요. 제가 몇몇 분과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이구동성으로 그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또 5060대 여성분들은 저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서 후대에게 굉장히 좋은 역사 교육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극장에서 만났던 60대 여성분이 영화를 세 번 네 번 봤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올 때마다 다른 사람들을 열 명씩 데리고 온다는 거죠. 이 N차 관람이 흥미로운 현상이거든요. 이 분들은 이걸 기부처럼 생각하는 거예요. ‘내가 이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는 못했지만 이 영화의 상영에 대해서만큼은 어떻게 하든 지켜주고 싶다.’ 이런 헌신적인 마음들이 모아지면서 N차 관람률이 지금 굉장히 높아요. 또 이 영화가 우리 사회 세대간의 갈등, 남녀 간의 갈등을 해소시켜주는 역할도 해요.”
오히려 갈등을 부추긴다고 보는 견해도 있던데요.  
“그건 우리가 기존에 갖고 있던 (이승만과 현대사에 대한) 프레임에 갇혀서 세상을 그렇게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얘기하는 거죠. 어느 분이 페이스북에 쓰신 걸 봤는데 좀 좌경화된 생각을 갖고 있는 고등학생 딸과 늘 정치 이슈로 싸우다가 어찌어찌 해서 딸을 간신히 데리고 이 영화를 보러 가셨대요. 그런데 극장에 앉을 때까지 엄마에게 짜증내던 딸이 영화 끝날 때 눈물을 훌쩍이고 있더라는 거예요. 갈등을 부추기는 것과 정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적으로도, 호남에서도 이 영화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분들이 많아요.”
다큐 영화 '건국전쟁'에 담긴 이승만 전 대통령의 1954년 뉴욕 맨해튼 '영웅의 거리' 카퍼레이드 장면. [사진 김덕영]

다큐 영화 '건국전쟁'에 담긴 이승만 전 대통령의 1954년 뉴욕 맨해튼 '영웅의 거리' 카퍼레이드 장면. [사진 김덕영]

이 영화에서 특히 민감한 부분 중 하나는 3.15 부정선거가 이승만과 관련 없다는 입장일텐데요.
“(이승만에 대해)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게 뭐냐 하면 자손이 없잖아요. 출연하신 며느님은 양자의 부인이시고. 4.19가 일어났을 때 이분의 나이가 85세였거든요. 당시 평균 수명이 60세예요. 엄청 장수한 거고 그만큼 노쇠한 거죠. 판단력도 흐려지고 자식이 없고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 대해 의존하게 되었고…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쓴 책의 원제가 ‘대통령의 건강’일 정도로 그 당시 최대 관심사는 그의 건강이었어요. 갑자기 돌아가시면 권력이 바뀌는 거거든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 헌법에는 대통령 유고 시에 부통령이 승계하게 돼 있거든요. 그런데 이기붕은 민주당의 장면에 비해 인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기붕과, 그를 어떻게든 부통령에 당선시키고자 하는 자유당의 문제 있는 세력들이 3.15 부정선거라는 역사의 비극을 획책한 거라고 저는 봐요.

(기자 주: 당시 대한민국의 정·부통령은 미국처럼 러닝메이트 개념이 아니라 별도로 선거를 했고 따라서 서로 다른 정당의 후보가 각각 정·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소위 ‘발췌 개헌’이라 불리는 1952년 개헌의 결과물이었다. 1960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은 선거 1개월을 앞두고 사망했기 때문에 이승만은 경쟁자가 없었다. 부통령 후보의 경우 야당 장면이 이기붕보다 지지를 받고 있었기에 그가 부통령으로 당선되고 고령인 이승만의 유고 시에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를 두려워한 이기붕 세력이 부정선거를 획책했으며 이승만은 몰랐다는 것이 영화의 주장이다. 이승만이 정말 몰랐는지, 어느 정도까지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과 검증이 필요할 것이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4월 12일 국무회의록을 보면 그제서야 이승만 대통령이 ‘지금 부산에서 애들이 죽고 다치고 이런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 제대로 보고 안 하느냐’ 이런 게 있습니다. 민경우 씨(시민단체 길 대표)도 얘기해요. 이 사람이 학생운동했고 4.19에 대해서도 많이 아는데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4.19가 일어난 지 4일 만에 이승만이 서울대 병원에 찾아가서 부상당한 학생들 손을 잡고 위로하는 장면이 나오더라, 세상에 어느 독재자가 자기가 총을 쏘고 다친 사람들을 찾아가서 미안해 하느냐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저는 다큐멘터리를 하다 보니까 그 사람의 눈을 주목해서 보고 눈을 보면 그게 거짓인지 아닌지 알아요. 이승만이 눈물 짓는 장면에 무슨 거짓이 있어요? 그래서 결국 하야했잖아요. 그때 사람들이 응원을 하고 집에다 ‘만수무강하세요’라는 글씨를 자발적으로 붙여놓고 오는 게 영화에 나옵니다. 정말 끔찍한 독재자였으면 그렇게 응원을 해줍니까. 영화에서 이승만 유해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장례식 장면도 기억나세요? 숭례문 위까지 사람들이 빼곡히 올라가 있고, 서울시청 광장, 서울역 꽉 채운 거… 그거 동원된 인원이 아니에요. 이승만의 장례식은 국장이 아니라 가족장이었어요."
또 한가지 민감한 부분이 이른바 ‘김구-유어만(리우위안) 대화 비망록’인데, 백범을 존경하는 이들의 반발이 심할 것 같습니다. 유어만 비망록은 얼마나 학계에서 인정이 되고 검증을 받은 상태인가요?
“거기서 김구가 말한 내용이 (1948년 4월) 평양에 가보니 북한의 군사력이 이미 어마어마해서 북한이 지금 군사력 증강을 3년간 중단하고 남한이 지금부터 군사력을 증강시킨다 하더라도 남한이 북한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잖아요. 그러면서 (장제스가 보낸 외교관 유어만이 권유한) 이승만과의 협력을 거부한 거죠. 그러니까 김구는 전쟁이 날 것을 알고 있었던 거예요. 굉장히 충격적인 이야기죠. 비망록이 발굴된 지 벌써 시간이 꽤 되었는데 (기자 주: 2015년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가 이에 대한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역사학자들이 아예 언급조차 안 합니다. 역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증거 자료가 발굴되면 뒤집혀야 되는 거예요. 무조건 믿으라는 게 아닙니다. 같이 이야기하자. 토론하자. 반박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해라. 그런데 언급조차 안 해요."
86세대이신데, ‘김일성의 아이들’을 만들면서 이승만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됐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김일성의 아이들’을 만들기 위해 16년 동안 자료를 파다 보니, 북한이 80-90년대까지 ‘이승만 괴뢰도당 타도하자!’를 부르짖은 걸 알게 됐어요. ‘아니, 1960년에 이미 끝난 정권을 무슨 부관참시라도 하나?’하며 이해가 안 갔거든요. ‘진짜 왜 이러지?’하는 호기심으로 이승만을 파다가 여기까지 온 겁니다. 이 영화에 대중이 공감하는 부분이 바로 그겁니다. 애초부터 감독이 이승만을 존경하는 사람이라서 숭상하는 영화를 만든다고 쳐보자고요. 실제 그런 시도가 있었는데 다 흥행을 못했죠. 그 영화들과 이 영화의 차이는 만드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저는 이승만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나름대로 이성과 논리를 중시하며 살았던 사람인데 내가 우리 역사에 대해서 이렇게 몰랐구나’ 이런 통렬한 반성이 있었어요. 그 마음이 대중의 마음과 같으니까 공명을 일으키는 거예요. 사실 이승만에 대한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고착화시키는 데 양적으로 기여한 게 우리 86세대들이에요. 그래서 여당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운동권 청산론’을 시대정신으로 내세우고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이 영화가 성공하는 중요한 요인일 수 있겠네요. 영화가 시대를 너무 앞서가거나 뒤처지거나 하면 대중의 정서와 괴리되는데, 이 영화는 시기가 정확하게 맞은 거예요. 게다가 선거(총선)를 앞둔 시기라는 게 이 모든 것들이 폭발적으로 등장하는 시기이거든요.”
영화 '건국전쟁' 포스터. [사진 김덕영]

영화 '건국전쟁' 포스터. [사진 김덕영]

지금까지 소위 ‘영화 정치’가 성공한 사례는 거의 진보 혹은 좌파 성향 영화였습니다. 보수 혹은 우파 성향 다큐멘터리 영화가 흥행한 것은 처음입니다. 이건 왜 그런가요?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프로파간다 성격이 굉장히 강하잖아요. 그래서 원래부터 공산주의·사회주의권에서 영화라는 매체를 굉장히 활용을 많이 했어요. 재미난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1946년에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이라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남로당(조선공산당)이 정치자금이 모자라자 가짜 돈을 만들다가 적발당한 사건이에요. 그런데 그들이 가짜 돈으로 만든 막대한 정치자금으로 뭘 샀는지 아세요? 극장을 사요. 사람들을 선동할 수 있는 도구로 영화만큼 좋은 게 없다는 걸 진작부터 알았던 거예요.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특히 우리나라 영화계는 좌파 성향이 강합니다. 그런 토양이다 보니 우파 성향 영화가 피어나기 힘들어요. 영화는 팀워크인데 스태프부터 모으기 힘듭니다. 이 포스터까지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그런데 역사는 취사선택으로 팩트를 발췌해서 쓰는 것이고, 팩트 중에서 어떤 것을 고르는지 그 자체가 의견인 것이잖아요?  
“중요한 질문이고, 어떤 의도로 질문하시는지 아는데 거기에 대한 답은 아주 명쾌해요. 제가 지금 선택한 팩트 말고 반대쪽의 선택만 70년 동안 있었어요. 영화나 문화 콘텐트나 심지어 학교 교과서까지 제가 선택한 팩트를 다루지 않았어요. 이 영화가 왜 뜨냐 하면 처음으로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저는 이게 균형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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