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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환수와 활용 ‘투 트랙 전략’ 필요한 해외 문화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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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오영찬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장

오영찬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장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영국 런던 브리티시박물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프랑스 파리 국립기메박물관 등 22개국 65개 박물관에는 한국 문화를 알리는 ‘한국실’이 설치돼 있다. 세계 주요 문명을 중심으로 전시실이 편제된 것인데, 여기에 한국실이 별도 설치돼 있다는 사실은 이례적이다.

세계 10위권으로 도약한 한국의 경제 위상과 K팝의 인기에 힘입은 문화적 성취에 긍지가 생기지만, 막상 외국에 나가서 현지 박물관의 한국실을 방문하면 실망스러울 때가 많다. 인접한 ‘중국실’이나 ‘일본실’과 비교해 볼 때 전시품이 부실해 민망할 때도 있고, 전시품이 빈약해 상대적 초라함 때문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불법 유출 경우는 환수가 맞지만
현지에서 잘 전시하는 것도 방법
국외 소재 문화유산 새 접근 필요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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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브리티시박물관 중국실에 빼어난 전시품이 많다는 것을 달리 생각해 보면, 영국으로 유출된 중국의 문화유산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7세기 이후 중국의 무역도자(貿易陶瓷)와 더불어 1841년 설치된 영국령 홍콩을 통해 많은 문화유산이 유럽 각지로 반출됐다. 중국의 관점에서 보면 브리티시박물관 중국실의 훌륭한 전시를 그렇게 반길 일만은 아니다.

반면에 브리티시박물관의 한국실이 부실한 것은 그만큼 영국으로 흘러나간 한국의 문화유산이 적었기 때문일 수 있다. 이는 개항 이후 영국과의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하지 않은 데 기인한다.

한국의 문화유산이 가장 많이 있는 나라는 일본과 미국이다. 일본과는 식민 지배의 불편한 관계도 있었다. 미국은 해방 이후 긴밀한 정치·경제적 관계 속에서 교류가 활발했다. 이처럼 문화유산을 둘러싼 풍경은 국제정치의 산물이기도 하다.

지난 1월 기준으로 국외에 있는 한국의 문화유산은 29개국 24만6304점으로 파악된다. 물론 잠정적인 통계이며, 향후 더 늘어날 것이다. 외국에 있는 한국 문화유산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그것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며, 민족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하는 길이라 믿는다.

문화재청은 전담기관인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설립해 그동안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2011년 장기 임대 형식으로 ‘외규장각 의궤’가 145년만에 돌아온 것이 좋은 사례다.

하지만, 외국에 있는 한국의 문화유산을 모두 국내로 들여와야 하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꼭 그렇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유네스코 등을 중심으로 제정된 국제 규범에 따르면 불법·부당하게 유출된 문화유산은 끝까지 추적해 환수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국제 규범상 정상적 방식과 절차에 따라 다른 나라로 건너간 문화유산도 다수 존재한다. 예컨대 선물이나 매매 등을 통해 건너간 경우다. 이런 문화유산은 환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런 경우에는 현지에서 잘 활용돼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지 박물관의 한국실이 부실하다고 탓하면서 현지에 있는 한국 문화유산을 모두 국내로 들여와야 한다는 발상은 이율배반적이다. 현지 박물관에 잘 전시되고 활용될 수 있도록 오히려 도울 필요가 있다. 이처럼 환수와 활용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상보적인 것이다.

문화유산은 만국 공통 언어인 동시에 상호 이해와 공감의 원천이다. 다른 국가와 민족의 문화유산을 전시하는 것은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문화적 다양성을 공유하는 행위다. 환수가 어려운 국외 소재 유산들의 현지 활용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앞으로 현지 박물관의 한국실에서 더 많은 세계인에게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더 잘 알리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최근 미국 보스턴미술관에서 사리(舍利)와 사리구(舍利具·사리를 넣은 용기)에 대한 협상이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4세기 고려 불교 공예품인 사리구는 보스턴미술관 한국실에 전시된 유물이다. 보스턴미술관은 합법적인 거래를 통해 사리구를 구입했다는 입장이다. 이번 협상에서 사리는 기증의 형태로 돌아오고, 사리구는 교류 전시의 형태로 한국 대여를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반출의 불법 부당성이 명쾌하지 않은 문화유산을 협력의 대상으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국외 소재 문화유산에 대한 새로운 접근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영찬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