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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과 '의리' 대신 韓과 '실리' 택했다...쿠바 결단 뒤엔 경제난-한류-세대교체

중앙일보

입력

14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한국과 쿠바의 수교는 쿠바 측의 정치적인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은 쿠바와의 국교 수립을 위해 계속 문을 두드려왔지만, 그간 쿠바가 북한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좀처럼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소 급작스레 이뤄진 쿠바의 ‘용단’에는 한류 확산을 통한 우호적 감정 확산, 극심한 경제난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4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클래식 차들이 정차된 모습. EPA. 연합뉴스.

지난해 4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 클래식 차들이 정차된 모습. EPA. 연합뉴스.

외교부는 이번 수교가 이뤄진 배경에는 오랜 기간 쿠바 내에서 인기를 끌어온 한류의 힘이 톡톡히 한몫을 했다고 보고 있다. 14일 수교 보도자료에서도 “그간 양국은 문화, 인적 교류, 개발협력 등 비정치 분야를 중심으로 교류와 협력을 확대했고, 특히 최근 활발한 문화 교류를 통한 양 국민간 우호적 인식 확산이 수교에도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외교 소식통은 “권위주의 체제라 하더라도 한국과 수교라는 중대 결정을 내릴 때는 쿠바도 국민 여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북한과의 관계 악화를 감수하고 한국과 수교하는 데 대해 국민적 반감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쿠바도 한 것 같고, 여기에는 실제 한국 드라마와 음악 등에 우호적인 쿠바 내 분위기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쿠바와 북한이 여전히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혁명 1세대인 북한 김일성 주석과 쿠바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 때와 같은 ‘동지의식’은 이미 상당 부분 희석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피델 카스트로에 이어 라울 카스트로가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수행하고,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권력을 이어받는 과정에서 원로 혁명 세대는 사실상 모두 일선에서 퇴장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86년 3월 방북했던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만나는 모습. 북한 선전매체 '조선의 출판물' 캡처. 연합뉴스.

북한의 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86년 3월 방북했던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만나는 모습. 북한 선전매체 '조선의 출판물' 캡처. 연합뉴스.

무엇보다 미국의 제재와 코로나19 등으로 극심해진 경제난이 쿠바의 결단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쿠바 중앙은행은 2021년 이후 해마다 40%를 넘는 인플레이션에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외국 연구기관들은 실제 인플레이션 수치는 공식 발표의 10배까지 이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쿠바 정부는 인플레이션과 암시장에서의 환율 급등 등을 막기 위해 현금 사용 제한 조치까지 내렸다.

쿠바의 주된 외화 수입원이던 관광 산업도 코로나19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기본적인 생필품 수급조차 되지 않고, 의료품 부족과 전력난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로 인한 인구 유출도 급증하고 있다. 1965~1973년 쿠바 이민자를 미국으로 실어나르던 이른바 ‘프리덤 플라이트’ 시기를 능가할 정도라는 평가도 나오는데, 가족 단위 이민이 주를 이루던 당시와 달리 젊은 고학력자들의 개인 탈출이 70% 이상이라는 점에서 파급효과가 훨씬 크다.

미국 워싱턴의 쿠바 대사관에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워싱턴의 쿠바 대사관에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결국 쿠바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은 사회주의 형제국 북한과의 ‘의리’보다는 잠재력이 큰 경제 파트너가 될 수 있는 한국과의 ‘실리’를 택한 셈이다.

이와 관련, 외교가에서는 현재 공고하게 유지되는 한·미 동맹도 쿠바의 결단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쿠바 입장에선 결국 미국의 제재가 풀려야 경제 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미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협상에 나설 때 미국이 신뢰하는 동맹국인 한국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또 한국과 쿠바와의 경제 협력을 위해서는 미국의 제재 해제나 유예가 필요한데, 이런 상황을 가정해도 한·미 동맹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부 역시 쿠바와의 수교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미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거나 오해가 없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최종 수교 통보는 직전에야 했지만, 그간 각급에서 쿠바 정부 측 인사들과 접촉할 때마다 미국과 충분히 소통했다는 설명이다.

한편 한국과 쿠바가 기후 위기 대응에 있어서도 협력 잠재성이 상당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카리브해 섬나라인 쿠바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등 위기에 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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