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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세경쟁력 14→23위 "낡은 세제-지배구조 함께 바꿔야" [코리아 디스카운트 이젠 끝내자<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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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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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기업지배구조 개편뿐만 아니라 상속세·법인세 등 한국식 ‘징벌적 조세 제도’도 함께 손봐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세제 부담을 줄여 기업 수익을 늘리고 투자를 활성화해 증시를 부양해야 한다는 취지다.

14일 중앙일보가 실시한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다수의 경제학자와 시장 전문가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조세 제도’를 꼽았다. “세금 부담 완화가 경영 목적이 되면서 주식 가치가 인위적으로 하락했다”(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적처럼 과도한 세제 부담이 증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차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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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한국의 조세 제도는 글로벌 기준에서도 한참 뒤처진다는 평가다. 미국 싱크탱크 ‘택스 파운데이션’ 분석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의 조세 경쟁력 지수(ITCI) 순위는 2014년 14위에서 지난해 23위로 9년 새 아홉 단계나 뒷걸음질했다. 특히 상속세를 포함하는 재산세(24위→32위)와 법인세(13위→26위) 등이 주요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각국의 조세 경쟁력 지수는 ‘조세 경쟁력’과 ‘조세 중립성’을 중심으로 한 40가지 이상 정책 변수로 평가된다. 조세 경쟁력은 세율이 높을수록, 조세 중립성은 세법 체계가 복잡할수록 나쁜 평가를 받는다. 택스 파운데이션은 “경쟁력과 중립성을 갖춘 조세 제도는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과 투자를 촉진하지만, 잘못 구성된다면 국내 경제를 왜곡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25년째 그대로인 상속세율…“주가 상승 인센티브 약화”

한국경제인협회 등에 따르면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2000년 45%에서 50%로 상향된 이후 25년째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OECD 국가 중 일본(55%)에 이어 2위다. 최대주주 할증까지 적용하면 60%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특히 피상속인 전체 재산에 세금을 매기는 지금과 같은 ‘유산세’ 방식은 1950년 법 제정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상속세를 운영하는 OECD 24개국 가운데 유산세 방식을 채택한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4개국뿐이다. 나머지는 상속인이 실제 물려받는 재산에 각각 세금을 부과하는 유산취득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차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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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과도한 상속세가 주가 상승 인센티브를 약화시키고 기업 투자도 위축시킨다고 보고 있다.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쪼개기 상장, 터널링(지배주주 사익을 위해 회사 이익을 빼돌리는 행위) 등 다양한 사익 추구 현상을 야기할 우려도 있다. 김정남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APG) 아시아ㆍ태평양 매니징 디렉터는 “상속에 대한 징벌적 세율은 지배주주와 비지배주주 간의 이해관계 불일치를 조장한다”며 “형평에 맞게 세율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맥락에서 윤석열 대통령도 상속세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정부도 본격적인 개편 작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중앙일보 설문조사에 응한 전문가들도 상속세 개편의 정책적 효과에 대해 10점 만점에 6.3점의 비교적 높은 점수를 줬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진 않았지만, 현행 유산세 방식을 유산취득세로 전환하고 과표구간을 재조정하는 방향이 거론된다. 이사회 감시 기능 강화와 같은 상법 개정을 전제로 한 최대주주 할증 과세 폐지, 최고세율 완화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네번째,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 - 네번째,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마찬가지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은 법인세를 함께 손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022년 25%에서 24%로 1%포인트 낮아졌지만, 여전히 OECD 평균(약 22%)보다 높은 수준이다. 특히 ‘4단계 누진 구조’의 복잡한 과세체계를 가진 국가는 OECD 중 한국이 유일하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법인세는 외부 투자자들이 한 국가의 세금 수준을 가늠하는 주요 지표”라며 “국제 기준에서 멀어질수록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기업지배구조 개편 선행돼야”…감세 부작용 우려도

다만 세제 개편에 앞서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 개편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송민경 한국ESG기준원(옛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에서 기업 승계는 단순히 자산을 승계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부담과 책임을 넘기는 것”이라며 “반면 한국은 지배구조 체계의 수준이 해외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에 상속세 감면 등 제도 개편은 사회적·경제적 설득력을 갖지 못한 채 오히려 부의 대물림만 보장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세제 개편에 따른 세수 감소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유산세를 유산취득세로 전환할 경우 상속인 수(2~4명)에 따른 세수 감소 폭이 2021년 기준 6379억에서 1조2582억원으로 추산됐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감세는 세수 부족으로 이어져 거시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주식시장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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