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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하현옥의 세계경제전망

정부 신뢰·부동산 경기 회복이 성패 가를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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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중국의 증시 부양 전면전 성공할까

하현옥 논설위원

하현옥 논설위원

중국이 ‘증시 구하기(救市·쥬스)’에 나섰다. 그야말로 총력전이다. 주가 부양을 위한 각종 정책과 제도를 하루가 멀다고 쏟아내고 있다. 외국인 자금 이탈과 국내 투자자의 불만이 커지는 상황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증시 관련 브리핑을 직접 받는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춘제(春節) 연휴 시작 전인 지난 7일에는 증권 당국 수장을 전격으로 교체하는 초강수를 뒀다.

외국인 반년 새 37조원 이탈

중국 증시는 그동안 ‘날개 없는 추락’을 이어갔다. 상하이·선전 증시에 상장된 대형주로 구성된 CSI300 지수는 최근 1년간 20%가량 주저앉았다. 2019년 1월 이후 5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국에 주가연계증권(ELS) 폭탄 사태를 초래한 홍콩H지수도 최근 1년간 7500선에서 5300대까지 추락했다. 미국과 일본 증시가 날아오르는 동안 중국 증시는 뒷걸음질하며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CSI300지수, 1년 새 20% 하락
2019년 이후 5년래 가장 낮아

중국 기업 시총 7조 달러 증발
외국인 순매수액 10분의 1로

증시안정기금 조성, 공매도 금지
주식·ETF 매입 등 전방위 공세

미끄러지는 주가는 투자자 이탈 때문이다. 중국 부동산 침체와 기업 규제 여파 속에 외국인 투자자의 ‘차이나 엑소더스’는 거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선강퉁(선전과 홍콩 교차매매)과 후강퉁(상하이와 홍콩 교차매매)을 통해 지난달 중국 증시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145억 위안(약 2조6694억원)에 이른다. 6개월 연속 외국인 자금 순유출이다. 지난달까지 6개월간 외국인은 2010억 위안(약 37조원) 규모의 중국 주식을 팔아 치웠다.

겁먹은 투자자는 중국 시장에 섣불리 발을 담그지 못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상하이와 선전 시장에서 2021년 4322억 위안(약 80조원)에 달하던 해외 투자자 순매수액은 지난해 442억 위안(약 8조원)으로 10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주가 하락이 투자자 이탈을 부추기고, 투자자가 떠나며 주가를 끌어내리는 악순환이다.

분노한 개미투자자 2억2000만 명

주가 하락의 충격은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이달 들어서는 ‘스노우볼’ 상품의 대규모 청산이 발생하며, 주가 하락과 손실 확대가 반복되고 있다. 스노우볼은 ELS처럼 녹인(Knock-In·원금 손실 발생 구간) 구간을 터치하면 원금 손실이 발생하는 파생상품이다. 해당 상품이 추종하는 CSI500과 CSI1000 지수 급락으로 전체 물량의 65~80%가 청산됐다. 그 결과 마진콜로 인한 반대매매가 속출하며 주가를 더 끌어내렸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투자자의 상처와 충격도 깊다. 주가가 정점을 찍었던 2021년 초와 비교하면 중국 상하이와 선전, 홍콩과 뉴욕에 상장된 중국 기업의 시가총액에서 7조 달러(약 9300조원)가량이 증발했다. 그중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2배에 이르는 6조 달러(약 7971조원)가 중국과 홍콩 증시에서 사라졌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주가가 바닥을 치며 지난해 말 기준 전 세계 시가총액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8.6%)도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개인투자자인 ‘주차이(韭菜·부추)’의 속은 타들어 간다. 손실을 보고도 다시 주식에 뛰어드는 모습이 윗부분을 잘라내도 순식간에 다시 자라는 부추와 비슷하다는 의미로 주차이로 불리는 중국 개인투자자는 2억2000만명에 이른다. 전체 주식 투자자의 99%를 차지한다. 문제는 주차이가 부동산 시장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이들이라는 데 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2021년 이후 부동산 가격과 주가 하락으로 GDP 대비 40%에 달하는 자산가치가 증발했다.

주차이의 분노는 의외의 곳에서 터져 나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2일 중국 주재 미국 대사관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가 증시 폭락에 분노한 중국 투자자의 ‘통곡의 벽’이 됐다. 미 대사관이 올린 야생 기린 보호 활동 게시물에 ‘상하이 거래소를 폭격할 미사일 몇 개만 빌려달라’는 등 증시 상황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15만건이 넘는 댓글이 달렸다. 중국 정부의 검열을 피할 수 있는 미 대사관 SNS가 성토장이 된 것이다.

국유기업 KPI에 시총 관리 포함해

이런 상황 속 중국 정부는 증시 부양을 위한 총공세에 나서고 있다. 중국인민은행은 지난 5일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인하했다. 이를 통해 1조 위안 규모의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했다. 중국 시가총액의 3% 규모인 2조 위안(약 368조원) 규모의 증시안정기금도 조성해 물량 공세에 나설 태세다. 국부펀드 등 그동안 증시 부양 해결사로 나섰던 이른바 ‘국가대표(國家隊·궈자두이)’도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후이진(匯金)투자공사와 중국 증권금융공사 등이 3000억 위안(약 55조원) 규모의 주식을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후이진투자공사는 중국 연계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에 나선 데 이어 ETF 보유 비중을 확대하겠다며 증시 부양에 힘을 싣고 있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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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기업도 증시 부양에 동원됐다. 국무원 국유자산감독관리위원회(국자위·SASAC)는 지난달 29일 국유기업 핵심성과지표(KPI)에 시가총액 관리를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상하이 증시 시가총액의 40%를 차지하는 국유기업이 주가 관리에 적극 나서도록 함으로써 증시를 지지하겠다는 포석이다. 국자위의 조치에 시장에서는 ‘중즈터우(中字頭·대부분 중(中)자로 시작하는 국유기업을 일컫는 말)’ 테마 장세가 벌어지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중앙기업(央企)과 주요 국유기업에 자사주 매입도 장려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에 많은 국유기업이 주가 부양을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시장에 돈을 쏟아부으며 중국 정부는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한 방어막도 확실하게 치고 있다. 공매도 단속에 나선 것이다. 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위)는 지난달 29일 공매도 목적의 주식 대여를 금지했다. 앞서 일부 헤지펀드에 선물 시장에서 공매도 제한도 요청했다. 그뿐만 아니다. 악의적 공매도를 단속하는 한편 무관용 대응 입장을 밝혔다.

증시 부양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증감위 주석 교체로 확인됐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지난 7일 우칭(吳淸) 전 상하이시 당 부서기를 증감위 주석 겸 당서기로 임명했다. 황후이밍 난징 징흥인베스트먼트 펀드매니저는 블룸버그에 “이번 인사는 중국 최고지도부가 투자자 손실을 우려한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증시 침체 상황을 반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부유 정책, 중국 정부 신뢰 훼손

정부의 이런 전방위 공세에 지난 8일까지 중국 증시는 3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문제는 예전 같지 않은 회복세다. 중국 증시가 ‘대폭락’했던 2015년에도 중국 정부는 증시 심폐소생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당시만 해도 국가대표의 등장은 주가 상승을 예고하는 선행지표였다. 이들이 시가총액의 6%에 달하는 개별주식을 매입하면서 이른바 ‘국가주도 장세’가 펼쳐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부의 강력 드라이브에도 시장은 크게 움직이지 않고 있다. 다음 달 5일 열리는 양회에서 강력한 한방이 나올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라고 치더라도 움직임이 미미하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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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중국 정부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박인금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021년 이후 공동부유(共同富裕) 정책으로 부동산 가격과 주가가 하락하며 정부의 경제 운영 능력에 대한 경제 주체의 신뢰가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공동부유 정책은 빈부 격차를 줄이고 함께 잘 살자는 것으로, 이 과정에서 적폐청산과 대대적인 숙청 작업이 벌어지며 부유층의 자금 유출을 야기했다. 또한 알리바바와 디디추싱 등 플랫폼 기업과 부동산 기업, 사교육 규제 등으로 헝다(恒大·에버그란데)그룹 등 부동산 업체가 줄도산하며 증시도 하락의 늪에 빠졌다.

민간 기업에 대한 중국 정부 규제가 촉발한 해외 투자자의 불신도 쉽게 해소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골드만삭스는 미국과 유럽 등 해외 뮤추얼펀드와 헤지펀드의 중국 주식 보유 규모가 역대 최저라며 올해 중국 증시에서 1700억 달러(약 226조원)가 유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증시 부양 의지에 지난 6일 외국인 누적 순매수가 플러스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분위기가 급격하게 반전할지는 미지수다.

디플레 우려·가계빚에 더딘 소비 회복

실물 경기의 부진도 증시 구하기에 나선 중국 정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성장 동력이 떨어지는 데다 디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8일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 1월 중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년 전보다 0.8% 하락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달(-0.3%)과 전망치(-0.5%)를 밑돈 것으로 2009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내렸다. 이날 발표된 생산자물가지수(PPI)도 1년 전보다 2.5% 하락했다. 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소비를 늦추는 것이 유리하다고 여겨져 가계가 쉽게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있다. 늘어난 가계 빚 부담도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중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는 2006년 3월 11.5%에서 지난해 2분기 62%까지 늘었다.

무엇보다 중국 GDP의 25%를 차지하는 부동산 경기 회복이 증시 부양의 성패를 가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경우 중국의 고질적인 병폐가 수면 위로 떠오르며 주식 시장 위축과 실물 경제로의 전이 우려도 커진다”고 지적했다. 성연주 신영증권 연구원은 “부동산 시장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증시 개선의 불확실성도 클 수밖에 없다”며 “증시안정기금의 규모 등이 구체화하고 대규모 증시 부양책이 확정돼야만 실제 반등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