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조가 있는 아침

(214) 거리에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거리에서
권갑하(1958∼)

나무들은
하나

숲을 이뤄 모여들고

맑은 가슴을 열어
푸른 바람 일으키는데

우린 왜
숲이 되지 못하고
떠돌고만 있는 걸까
-우리시대현대시조100인선 76(태학사)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군중 속의 고독을 거리에서 절감한다. 시대의 삶과 현실을 주된 테마로 다루고 있는 권갑하 시인의 시조 한 수를 더 읽는다.

간절히 기댈 어깨 한 번 되어주지 못한/빈 역사(驛舍) 서성이는 파리한 눈송이들/추스린 가슴 한 쪽이 자꾸 무너지고 있다.-‘세한(歲寒)의 저녁’ 셋째 수

이 고독한 거리에서 우리는 누군가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나무들이 모여 숲이 되는 이치다. 그런데 끝내 어깨를 내어주지 못하고 돌아서는 가슴이 무너져내린다. 그러나 우리에게 숲의 나무가 되라 하고, 서로 기댈 어깨를 내어주라고 하는 시인의 호소가 세한의 겨울에 눈송이 되어 빈 역사에 서성인다. 그러는 한 우리에게 아직 희망은 있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