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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이대로 폐기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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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원자력 발전의 이용에 있어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은 필수 시설이다. 방사성폐기물 중 방사능이나 열이 아주 적은 것은 중저준위, 높은 것은 고준위로 분류한다. 대표적으로 사용후핵연료가 고준위 폐기물이 될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95% 정도가 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으므로 당연한 폐기 대상으로 볼 수는 없지만, 만약 현 상태 그대로 재활용 없이 버리기로 한다면 사용후핵연료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로 이름표가 바뀌게 된다. 설사 사용후핵연료를 재활용하더라도 양만 줄어들 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은 발생하게 된다. 결국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은 어떤 경우에도 필요한 시설이다.

중저준위 방폐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특별법을 제정해 경주에 건설하고 운영 중이다. 반면 고준위 방폐장에 대해서는 정부가 두 차례 비슷한 공론화를 반복한 이후 기본계획은 수립했으나 법적 근거가 되는 법안이 없는 상태다. 즉 정부 계획은 있으나 계획이 실행되지 못하고 시간만 가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3건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안과 1건의 방사성폐기물관리법 전부개정안 등 총 4건의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고준위 방폐장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부지 선정, 주민 보상 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에 대한 법적인 절차와 규정이 필요하다. 법 없이 정부가 임의로 추진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4건의 법안, 그것도 여당과 야당이 2건씩의 법안을 발의하고 있으니, 일이 쉽게 풀려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 여·야 이견이 있는 부분이 해소되지 않아 계속 계류 중인데, 이대로 간다면 법안은 21대 국회 회기 만료에 따라 자동폐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준위 폐기물을 처분해야 할 마당에, 법안만 폐기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고준위 폐기물 영구처분장은 반드시 하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법안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법안의 통과가 가로막혀 있다.

결국 특별법의 핵심쟁점은 원전정책을 둘러싼 이념논쟁이다. 탈원전 측은 특별법을 탈원전의 방해물로 본다. 또, 이들은 이 법안이 고준위 방폐장 부지선정을 위한 절차 등을 담고 있다는 내용은 빼놓은 채 원전부지를 영구처분장으로 만들 것이라는 등 근거 없는 억측 주장만 늘어놓고 있다.

고준위 방폐물의 건식저장과 처분은 현재까지 입증된 가장 안전한 관리방식이다. 사용후핵연료는 물속에 넣어둘 때 관리할 것이 많고, 부지 내에 건식으로 저장하면 관리할 일이 거의 없고, 영구처분장에 넣고 폐쇄하면 그 이후로는 관리할 일이 전혀 없다. 더 안전한 방향으로 관리하는 데 필요한 고준위 특별법, 가로막지 말고 길을 열어야 한다.

정용훈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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