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2년 내 죽을 확률 90%" 그 말 깬 '한국 호킹'의 특별한 졸업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14일 오후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중강당에서 신경근육계 희귀난치질환을 앓으면서도 대학 입학 및 졸업을 앞둔 이들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입학생 대표로 희망의 메시지를 낭독한 권정욱(20)씨가 입학증서와 꽃다발을 안고 웃음 짓고 있다. 우상조 기자

14일 오후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중강당에서 신경근육계 희귀난치질환을 앓으면서도 대학 입학 및 졸업을 앞둔 이들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날 입학생 대표로 희망의 메시지를 낭독한 권정욱(20)씨가 입학증서와 꽃다발을 안고 웃음 짓고 있다. 우상조 기자

“공공 부문에서 언어를 어떻게 사용해야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는지 연구하고 싶어요. 어릴 때 아팠던 기억이 많은데,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언어가 사람 생각에 미치는 영향이 정말 중요하구나 느꼈거든요.”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강남세브란스병원 5층 호흡재활센터 병동에서 만난 권정욱(20)씨는 병상에 앉아 확고한 꿈과 미래를 이야기했다. 권씨는 다섯 살 무렵 ‘폼페병’이라는 희귀 난치질환을 진단받았다. 체내에 당원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해 근력이 떨어지고 호흡까지 어려워지는 병이다. 또래와 같은 신체 활동이 어려웠던 권씨는 학교에서 따돌림을 받기도 했지만, 공부에 흥미를 붙이면서 삶에 불빛이 켜졌다. 집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어가면서 공부한 끝에 지난해 고려대 자유전공학부에 합격했다.

강남 세브란스 병원에서는 이날 ‘호킹의 날’ 행사가 열렸다. 루게릭병과 싸우면서도 세계적인 석학이 된 스티븐 호킹의 이름을 본딴 행사로 올해로 10회째를 맞았다. 권씨와 같이 신경근육계 희귀 난치질환을 앓고 있지만, 학업에 매진한 끝에 대학 입학 및 졸업을 앞둔 이들이 초대받는다. 올해는 병원 호흡재활센터에서 치료받아온 대학 입학생 8명과 졸업생 5명이 참석해 축하를 받았다.

14일 오후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중강당에서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 행사가 열렸다. 사지마비와 호흡장애를 극복하고 대학 입학 및 졸업을 앞둔 난치질환 환자들과 가족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14일 오후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중강당에서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 행사가 열렸다. 사지마비와 호흡장애를 극복하고 대학 입학 및 졸업을 앞둔 난치질환 환자들과 가족들이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권씨가 대학 입학을 축하받기까지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에 합격한 기쁨도 잠시, 입학을 코앞에 둔 지난해 2월 급격한 호흡곤란 증세로 정신을 잃고 응급실에 실려 갔다. 기관절개 수술을 받고 치료에 집중하느라 지난 한해를 통으로 휴학한 뒤 오는 3월 본격적인 대학생활 시작을 앞두고 있다.

권씨는 여전히 매일 밤 인공호흡기를 착용하고 2주에 한 번 주사 치료제를 맞아야 한다. 이날도 행사 참석 전 검사를 받았다. 이런 현실도 그의 꿈을 흔들진 못했다. 그는 “대학에서 많은 학문을 융합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기대된다”며 “나중에는 행정고시를 통해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공직자가 되어 사람들이 의사소통으로 서로 행복을 전할 수 있도록 하는 국어 관련 정책을 담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14일 오후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중강당에서 열린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 행사에서 난치질환을 극복하고 대학 졸업을 앞둔 한 참석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바라보며 대견해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14일 오후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 중강당에서 열린 '한국의 호킹들 축하합니다' 행사에서 난치질환을 극복하고 대학 졸업을 앞둔 한 참석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바라보며 대견해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7살부터 ‘듀센 근이영양증’을 앓은 이태윤(19)씨도 자신이 경험한 아픔을 바탕으로 타인을 돕는 게 꿈이다. 이 질환도 갈수록 근육이 약해져 걷지 못하게 되고 자발적 호흡이 어려워지는 난치병이다. 이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휠체어 위에서 생활했다. 명지대 사회과학대 입학을 앞둔 이씨는 “평소에 안 해본 것에 도전하는 느낌이 설렌다”며 “장애인 복지 관련 직업을 갖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이씨 어머니 조모(50)씨는 “아들이 어디를 다닐 때 휠체어로 넘기 너무 높은 문턱 등 불편한 점을 경험하면서 사회 정책을 개선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3살에 ‘척수성 근위축증’을 진단받은 김소정(24)씨는 목을 가누지 못해 거의 평생을 휠체어에 누워 생활한 경우다. 어머니 이주연(51)씨는 7개월 무렵 뒤집기를 못하는 아이를 보고 놀라 병원에 데려갔고 의사로부터 “2년 내에 죽을 확률이 90%”라는 말을 들었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김씨는 긍정적이고, 좋아하는 것 많은 아이로 자랐고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다.

작가가 되고 싶어 국문과에 진학한 김씨는 졸업 후에도 순수문학, 웹소설 등을 가리지 않고 써볼 생각이다. 어머니 이씨는 “우리 딸은 좋아하는 게 많아서 작년에는 야구를, 지난주에는 피겨 스케이팅을 보러 갔다”며 “바라는 건 ‘오늘 하루’를 행복하고 소중하게 보내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