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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걸어준 소중한 금메달… 양궁 금메달리스트 기보배 은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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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연 기보배(오른쪽)에게 남편 성민수씨와 딸 제인양이 순금메달과 꽃다발을 선물했다. 김효경 기자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연 기보배(오른쪽)에게 남편 성민수씨와 딸 제인양이 순금메달과 꽃다발을 선물했다. 김효경 기자

가족이 걸어준 금메달과 함께 은퇴 소감을 밝혔다. 2012 런던올림픽과 2016 리우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기보배(36)가 27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쳤다.

기보배는 14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7년 동안 이어온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지도자 분들과 대한양궁협회에도 감사드린다 국민 여러분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월 전국체전을 끝으로 은퇴했다.

가족과 함께 기자회견장을 찾은 기보배는 그동안의 소회를 털어놓으며 여러 차례 눈시울을 붉혔다. 특히 가족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털어놨다. 기보배는 "2018년 임신 2개월일 때 종별선수권에서 비를 맞고 경기를 하면서 우승했다. 양궁 선수를 엄마로 둔 딸이 한창 응석을 부릴 나이에 엄마의 곁을 떠나서 지내야만 했다"고 눈물을 흘렸다.

기보배는 1997년 안양서초등학교 4학년 때 활을 처음 잡고, 2004년 주니어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기보배는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 무대에서 활약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단체전)을 시작으로 2011 유니버시아드에선 3관왕에 올랐다.

최고의 무대인 올림픽에서는 특히 강했다. 2012 런던올림픽에선 2관왕에 올랐고, 2016 리우올림픽 단체전에서 우승해 3번째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계선수권에서도 단체전 포함 5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국제 대회에서 따낸 메달만 56개(금 37, 은 9, 동 10개)나 된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2관왕에 오른 기보밴.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12 런던올림픽에서 2관왕에 오른 기보밴.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에 대한 질문을 받은 기보배는 런던올림픽 결승을 꼽았다. 당시 기보배는 아이다 로만(멕시코)와의 마지막 슛오프에서 9점을 쐈다. 그러나 로만이 8점을 쏘면서 극적으로 우승했다. 기보배는 "슛오프 한 발을 쐈을 때가 기억난다. 힘든 과정을 겪었고, 금메달로 이어졌다. 내 양궁 인생에 있어 변곡점이었다"고 말했다.

아쉬운 순간 역시 올림픽이었다. 4년 뒤 리우올림픽에서 기보배는 장혜진과 준결승에서 만났으나 패했고, 동메달결정전에서 이겨 동메달을 따냈다. 기보배는 "매순간 '내 안의 모든 걸 쏟아내자'는 생각으로 경기에 나섰다. 그래서 많은 대회를 참가했지만 아쉬움이 크진 않았다. 그래도 하나를 꼽으면 리우올림픽 4강이다. 2연패 문턱에서 무너져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기도 했다"고 미소지었다.

가족들은 기보배를 위한 깜짝 선물도 건넸다. 27년간의 선수 생활을 기념해 순금 스물 일곱 돈으로 제작한 메달을 만들었다. 남편과 딸 제인(6)이 꽃다발과 함께 메달을 목에 걸어줬다. 기보배는 "올림픽 메달 3개보다 훨씬 무겁다"며 활짝 웃었다.

기보배는 2020 도쿄올림픽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는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2023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8위에 올라 태극마크를 다는 등 여전한 경쟁력을 유지했다. 하지만 2024 파리올림픽 대표 선발전에도 나서는 대신 은퇴를 택했다.

기보배는 "2023년 태극마크를 힘들게 달았는데 올림픽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런던, 리우 때의 마음가짐으로 준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후배들이 잘 해내거라 믿고, 물러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한민국 양궁 국가대표가 되는 것도 힘든 일이고, 그걸 이뤘기 때문에 만족하고 활을 내려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2016 리우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기보배(오른쪽). 왼쪽은 금메달리스트 장혜진. 중앙포토

2016 리우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낸 기보배(오른쪽). 왼쪽은 금메달리스트 장혜진. 중앙포토

양궁 최강국 한국에서 국가대표가 된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기보배는 "다시 태어난다면 양궁을 하고 싶지 않다. 두 번의 올림픽에 나갔지만, 양궁선수로 올림픽에 가는 건 상상도 하기 힘들다. 우리 나라 선수들이 너무 잘 해서 살아남는게 힘들다. 다시 태어난다 해도 양궁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했다.

기보배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도 조선대와 서울대 등에서 학생들에게 양궁을 가르쳤다. 2022년엔 체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보배는 "엘리트 체육 지도자보다는 생활체육 활성화를 위해 힘쓰려고 한다. 유소년 선수들이 충분히 기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는 걸 느꼈다. 일반인과 꿈나무들이 양궁을 좀 더 즐겁고 재밌게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만들고 싶다. 차근차근 양궁을 알려나가겠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최근 스포츠계에선 2세 선수들이 많다. 기보배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양궁은 물론이고 운동을 시키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전국체전이 끝난 지난해 10월부터 딸과 집에서 함께 지내보니 나 못잖게 승부욕이 강하다. 그래서 본인이 하고 싶다면 운동을 시킬 의향이 생겼다"고 했다.

서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는 기보배. 연합뉴스

서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는 기보배. 연합뉴스

기보배는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도 오랫동안 선수로 뛰었다. 그는 "내가 어렸을 때 선배들은 결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은퇴했다. 국내 대회 나가면 '제일 나이 많은 언니'였다. 후배들이 '언니처럼 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많이 해 한 경기 한 경기 허투루 뛰지 않아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졌다. 다른 종목에서도 엄마 선수들이 팀에 피해를 준다는 생각 대신 후배들의 귀감이 된다는 생각을 가지길 바란다"고 했다.

기보배는 선수로 출전하지 않지만, 해설위원으로 파리올림픽을 함께 한다. 기보배는 "이번 올림픽에서 여자 단체전 10연패에 도전한다. 내가 나갔을 때 중압감과 부담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거웠다. 아시안게임을 보면서 이번 올림픽도 준비를 잘 한다면 후배들이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을 응원하고, 해설위원으로 소식을 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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