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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성장률 12년째 내리막... OECD국 중 한국 밖에 없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끝내자 <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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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7일 부산항 신선대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는 모습.뉴스1

지난 7일 부산항 신선대부두 야적장에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는 모습.뉴스1

한국 경제의 성장성·역동성·수익성이 주력 산업에서부터 하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근본 원인으로 ‘한국 기업의 투자 매력도 저하’가 꼽히는 이유다.

중앙일보와 대한상공회의소SGI가 공동 분석한 결과, 전자·화학·전기 장비 제조업 등 한국 주력 산업 성장률은 1970년대 19.3%에서 1990년대에 9.6%로, 2010~2022년엔 그 수치가 3.4%까지 뚝 떨어졌다. 20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급락한 것이다.

주력 산업이 흔들리니 국가 전체의 동력도 약해졌다. 한국의 올해 잠재성장률은 2.0%로 지난 2011년(3.8%) 이후 단 한 차례의 반등도 없이 떨어지기만 했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이런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제조업 가동률은 2010년 80.4%에서 지난해 71.3%(잠정치)까지 하락했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자들에게는 북한 정세 등 다른 요인보다도, 한국 기업의 낮은 성장성 자체가 투자의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특히 자본시장의 활기를 돋울 혁신 기업의 씨가 말랐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선정한 ‘2023년 가장 혁신적인 기업 50’ 내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7위)뿐이었다. 2013년에는 삼성(2위)·현대차(16위)·LG(25위)·기아(36위) 4개 사가 이름을 올렸으나, 지난 10년 새 하나씩 순위에서 사라졌다.

반면 독일은 설립 15년 차 제약회사 바이오엔테크가 신규 진입하고 175년 차 기업 지멘스가 전년 대비 10계단 뛰어올라 10위에 오르는 등 50위 안에 6개 사가 등재됐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순위 내 새로운 한국 기업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글로벌 경쟁자들 시각에서 볼 때 한국의 혁신성과 역동성이 큰 위협이 되지 못하는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한국은 기업도 ‘저출산 고령화’다. 한계 기업은 좀비처럼 목숨을 부지하고, 팔팔한 새 기업 탄생은 멈췄다.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기업이 적고, 실제 이익을 주주와 나눌 수 있는 기업의 수가 제한적이라는 의미다. 2000년대 중반 국내 기업 신생률은 18%대였지만, 지난 2022년엔 13.6%까지 떨어졌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산업구조변화 속도를 나타내는 지표(Lilien Indicater)에서 한국은 1991~199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0위였지만 2014~2018년엔 30위까지 내려왔다.

김영옥 기자

김영옥 기자

산업 역동성을 떨어뜨리는 핵심 원인은 규제였다. 기업들은 새 사업이 어려운 이유로 절반 이상(55.1%)이 ‘규제’를 꼽았고, 구체적으로 명시된 것 빼고 다 안 되는 포지티브 규제(31.0%) 방식과 중복 행정규제 부담(25.0%) 등을 호소했다(2022,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1000개사 설문). 김천구 대한상의 연구위원은 “기업 소멸과 생성이 계속돼야 전체 산업 생산성이 올라가는데, 국내에 그런 선순환이 약해졌다”라고 말했다.

제조 대기업도 벤처 투자 통해 혁신

한국 기업들이 역동성을 살리려면 벤처·스타트업 투자를 늘리고, 방식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정거래법이 개정돼 2021년 12월부터 국내 지주회사도 기업형벤처캐피털(CVC)을 자회사로 보유할 수 있게 됐다. 산업연구원 최신 연구에 따르면 CVC 모기업은 연간 특허 출원 수가 그 외 기업의 40배 이상이며, 특허 당 경제적 가치도 5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또한 개별 부서보다 CVC를 자회사 유형으로 둔 회사에서 투자가 더 활발했다.

최근 해외에서는 구글 같은 첨단 빅테크의 ‘신사업 씨 뿌리기’ 식 CVC뿐 아니라, 물류·제조·식음료 기업이 본업 혁신을 위해 운용하는 CVC가 주목받고 있다. 아마존이 지난 2022년 출범한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 규모의 ‘산업혁신 펀드’는 ‘창고 자동화 및 공급망 혁신’이라는 뚜렷한 목표로 운용되고 있다. 아마존의 이 펀드는 유통 과정 손실을 줄이는 영상 AI 스타트업 비마안, 컨테이너 하역 자동화 시스템의 라이트봇, 재고 관리용 로봇 시스템 개발사 인스톡 등에 투자했다. 지멘스는 2016년 CVC인 ‘넥스트47’을 출범, 10억 유로(약 1조4300억원)를 산업용 IT·AI 등 자사 핵심 역량과 직결되는 분야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다국적 회사 네슬레와 유니레버도 CVC를 통해 전 세계 식음료·뷰티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그러나 한국에선 여전히 지주사 CVC의 해외 투자를 펀드 조성액의 20% 이내로 제한하는 등 각종 규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30%로 상향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계류 중이다. 김용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CVC를 통해 해외 스타트업에 투자한 모기업·계열사에서 신규 출원 특허 수가 유의미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라며 CVC로 본업을 혁신하는 전략적 효과는 해외투자에서 더 컸다고 소개했다. 김 위원은 “벤처 투자를 단지 국내 스타트업과의 상생이나 사회공헌 정도로 볼 게 아니라, 모기업의 혁신과 생산성 제고를 위한 주요 수단으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노후한 상장사의 회춘을 위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2003년부터 15년간 국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제조기업 3753곳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신제품 매출 비중과 특허 수 등 혁신 수치가 높은 기업은 기업 수명 주기가 개선돼 ‘기업 회춘’ 효과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이들 중 총 매출 대비 해외 매출 비율이 높을수록 종업원 1인당 부가가치와 순이익이 높아지며, 기술적 효율성도 높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원자연 순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해외 진출은 그 자체로 기업의 생산 기술과 경영능력 등 무형 자산의 가치를 높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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