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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 트라우마에도 군복이 자랑"…26년 함정 오른 사나이 [서해 NLL을 가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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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7일 밤 서울함에서 이찬영 주임원사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해군

지난 7일 밤 서울함에서 이찬영 주임원사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해군

서울함의 사격통제(사통)를 담당하는 이찬영(50) 주임원사는 스물 다섯 살이던 1999년 6월 15일, 제1연평해전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영해를 침범하자 한국 해군 고속정이 직접 부딪혀 ‘밀어내기’ 공격으로 맞서다 교전이 벌어졌고, 우리 해군의 응사로 북한의 어뢰정과 경비정은 침몰하거나 선체가 파손된 채 퇴각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참수리 322호에 이 원사는 부사관으로 타고 있었다.

지난 7일 밤 서울함에서 만난 그는 “아직도 가끔 트라우마처럼 그 때 일이 떠오를 때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우리 측은 부상자만 있었고, 북한에선 수십 명이 사망했다. 우리로선 ‘대승’이었지만, 북한의 선제 사격으로 근접 교전이 벌어진 탓에 우리 군인들은 침몰해가는 북한 경비정의 참혹한 모습을 그대로 목격했다. 우리와 같은 말을 쓰고, 비슷한 얼굴을 지닌 북한 군인들의 마지막 순간을 말이다. 이 원사는 “당시 현장에서 들리던 북한군의 다급한 목소리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이 원사도 실전은 처음이라 충격이 컸다. 하지만 그는 이내 배로 돌아갔다. 이 원사의 해상 근무 경력은 해군 내에서도 손에 꼽힌다. 오는 17일 복무 30주년을 맞는 그는 지금까지 26년 4개월 간 함정에서 근무했다. 출동 일수만 약 4000일, 햇수로 꼬박 11년을 바다 위에 있었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 때는 참수리정에 몸을 싣고 동료들을 구조했다.

그 역시 군 경력 초반엔 육상 근무도 지원했지만, 인력 문제 등으로 함정 근무를 연이어 하게 됐다고 한다. 그 이후론 배 위의 삶이 더 익숙해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운명 같아서 배를 탔다.

“아빠하고는 추억이 없다”고 가끔 볼멘 소리를 하던 어린 딸은 그 사이 대학생이 됐다. 이 원사의 가슴에 아프게 남아 있는 말이다.

그는 최근 가장 힘든 일로는 “점점 심해지는 해군의 인력난”을 꼽았다. 그는 “배를 타야 해군인데, 다들 배를 잘 안 타려 하고 육상 근무를 더 선호한다”며 “가족과 며칠씩 연락이 안 되는 채로 바다 위에 있다 보니 일부 젊은 간부·병사는 평소에 없던 강박증과 공황 장애를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원사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서울함에서 내부 고충 상담을 하고 있다. “각자가 하는 일은 하찮아 보여도 하나하나가 모이면 서로의 목숨을 살린다”는 말을 주로 해준다.

그는 “군복을 입었다는 것 자체가 내겐 명예이고, 자랑”이라며 “당장 오늘 싸우다 죽더라도, 이길 수만 있다면 군인으로서 명예로운 죽음이라고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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