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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북한의 반통일론에 더 적극 맞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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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

드디어 북한이 남북통일은 불가하며 남북은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라고 선언했다. 한 민족이나 통일이라는 용어도 금하고 관련 조직을 철폐 했다. 과거에 남북은 유엔에 함께 가입함으로써 국제적으로 두 국가로 인식되었으나, 남북끼리는 기본합의서를 통해 나라와 나라 관계가 아닌, 통일될 때까지 잠정적인 특수관계라고 규정한 바 있다. 이후 국제적 인식과 남북 간 인식이 병립하는 이중적 상황이 지속되었다. 이제 당사자인 북한이 입장을 바꿨으므로 두 인식 중에서 특수관계라는 인식이 동력을 잃을 상황에 처했다. 한국의 통일정책에도 큰 애로가 예상된다. 그만큼 이번 북한의 선언은 남북관계와 통일 추진에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다.

영구 분단의 함정을 피하려면
국내의 통일 여론 규합 나서고
미·일·중·러 대한 설득 외교 필요
관련된 헌법 개정도 검토해야

이에 대하여 정부는 ‘한 민족으로 함께해온 오랜 역사를 부정하는 반민족적 반역사적 행태’라는 입장을 천명했다. 남북이 일차 응수를 교환한 셈인데, 북한이 후속조치를 할 것이므로 논란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미 북한은 헌법개정을 예고했다. 알려진 대로 북한은 헌법에 한국을 제1적대국으로 규정할 것이고, 북한의 주권행사 영역을 영토로 정할 것이다. 전쟁이 날 경우 남쪽을 ‘평정’하여 북한에 편입시킬 근거도 마련할 것이다. 나아가 북한은 중·러 등을 상대로 두 국가론을 선전할 것이다. 중·러는 미국과의 대립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자신 주변에 북한이라는 우호적 완충국이 있는 것이 유익하므로 북한에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미·일도 내심 한국이 통일 불가론과 두 국가론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한·미·일 공조에 집중하기를 바랄 수 있다. 한·미·일과 북·중·러 간 대립구도 하에서, 미·일은 한국을 한·미·일 진영의 일원으로 확고히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이래저래 두 국가론이 세를 얻을 소지가 있다.

이런 상황 전개는 결코 한국에게 좋은 일이 아니다. 통일과 관련한 한국의 운신 여지가 줄고, 분단이 영구화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는 남북이 특수관계이고 한국은 북한에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으며, 남북은 통일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퍼져야 유리할 것이다. 예컨대 북한에서 인도적 재앙이 생기거나 북한 주민이 극심한 박해에 직면하여 사방으로 집단 탈북하는 위기가 생길 때, 한국이 이를 동족의 일이 아닌 남의 나라의 일로 여겨야 한다면 우리 대처는 크게 제약받을 것이다. 그때 한국이 이들을 외면한다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책임이나 가치 외교를 운운할 권위를 잃는다.

1945년의 분단은 강대국들이 갓 해방된 한반도에 38선을 그은 데에서 비롯되었다. 80년이 지난 이제 세계 10위권의 중견국이 된 한국이 다시금 마냥 영구분단의 길로 휩쓸려가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상황에 대해 비상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는 북한의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 천명에서 더 나아가 이를 막아내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우선 남북은 특수관계이며 궁극적으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명제의 동력을 살려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국내적으로 우리 입장을 견고히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좋다. 다행이 이 문제에 대해 주요 정파 간 이견은 없다. 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도 ‘북한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고,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그러나 국내에는 통일에 소극적이고 무관심한 여론이 상당하다. 이런 여론을 망라하여 범사회적 담론을 일으킴으로써, 차제에 남북 간의 특수관계와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면 우리 입장이 견고해질 것이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입장을 기초로 미일을 설득하여 한국의 입장을 지원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치열하게 전개해야 한다. 동시에 중·러에 대해서도 분단을 고착화하고 북핵을 돕는 일을 마구 하지 못하도록 교섭해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한·중, 한·러 관계를 지금처럼 악화일로로 끌고 가서는 안 된다. 중·러와의 외교공간을 열어 필요한 협조를 하고 우리 입장을 반영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편 북한의 헌법개정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우리 헌법개정도 검토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입장을 견고히 하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북한이 헌법에 유사시 한국을 북한 영역에 편입시키는 조항을 신설한다고 하니, 한국도 서독의 기본법 23조처럼 통일 시에 북한 지역을 한국에 편입시킬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우리가 지금 적극 대응하지 않으면 한반도는 분단의 영구화라는 또 다른 100년의 길로 갈 수 있다. 지금이 그 순간일 수 있다. 개탄할 것은 그 전기를 북한이 제공했다는 점이다. 걱정할 것은 주변 주요국 간 역학이 통일을 저해하는 쪽으로 흐를 소지가 큰 가운데 정작 국내에선 통일에 대한 소극적 여론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정치인과 사회지도층의 각별한 의지가 요구된다. 당사자인 우리가 나서야 한다. 한국 말고는 나설 나라가 없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