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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와 노무현·박근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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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방현 기자 중앙일보 내셔널부장
김방현 내셔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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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국가지도자로는 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세종시가 지금처럼 ‘행정수도’ 면모를 갖춰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종시에는 현재 40여개 정부부처가 입주했고, 국회 분원과 대통령 집무실 설치도 추진 중이다.

세종시 건설은 2002년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가 “충청에 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세종시는 몇 차례 위기를 맞았다. 2008년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 때가 큰 고비였다. 그는 행정도시 대신 교육과학중심도시(경제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 이에 충청권이 반발하는 등 한동안 혼란을 겪었다. 이 상황을 정리한 인물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2010년 6월 29일 박근혜 의원은 국회에서 “(행정도시)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며 경제도시를 반대했다. 이에 친박근혜계 의원 50명이 뜻을 같이하면서 이명박 대통령 계획은 무산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친필 휘호가 새겨진 표지석. 2015년 7월 1일 세종시청사 개청을 기념해 세웠다. [중앙포토]

박근혜 전 대통령 친필 휘호가 새겨진 표지석. 2015년 7월 1일 세종시청사 개청을 기념해 세웠다. [중앙포토]

그래서인지 세종시에는 노무현·박근혜 대통령 흔적이 눈에 띈다. 세종시 호수공원에는 노무현 기념공원이 있다. 여기에는 노 대통령이 자전거 타는 모습을 한 조형물 등이 있다. 정치인들이 주로 선거 때 이곳을 찾아 사진을 찍는다. 반면 박 대통령 기념물 등은 수난을 당했다. 박 대통령이 불명예 퇴진한 게 발단이었다. 세종시청사와 세종시 대통령기록관에는 박 대통령 친필 휘호 표지석이 있다. 2015년 7월과 2016년 1월 각각 세운 이들 표지석은 2019년 철거 논란에 휩싸였다. 일부 시민단체 등이 “부끄러운 역사의 흔적은 지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기록관에 있는 대통령 초상화도 박 대통령 탄핵 이후 2년 넘게 설치되지 않았다. 당시 필자는 표지석은 보존하고, 초상화를 빨리 설치할 것을 주장하는 글을 몇 차례 쓴 적이 있다. 다행히 표지석은 철거되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을 보는 시선은 싸늘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박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 최근 삼성그룹 부당합병 의혹,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잇달아 무죄가 선고된 것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들 사건은 박 대통령 탄핵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도 지난 5일 『박근혜 회고록: 어둠을 지나 미래로』 출간을 기념하는 북 콘서트를 여는 등 명예회복에 나선 모습이다. 박 대통령은 북 콘서트에서 “재임 중 실수는 있었을지라도, 의도적으로 국민 앞에 부끄러운 일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당당했다”고 말했다. 이제 많은 국민도 당시 탄핵 사태는 극단적인 생각에 휩쓸린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세종시 건설 과정에서 본 것처럼 진영이 상반된 정치세력이라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