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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프트 귀국 일정까지 챙기는 일본의 ‘감성’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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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태화 기자 중앙일보 특파원
강태화 워싱턴 특파원

강태화 워싱턴 특파원

외교에서 ‘죽창가’ 같은 감정(感情)은 금기된 요소다. ‘한끗 차’지만,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도 있다. 바로 감성(感性)이다. 총성 없는 전쟁에 비유되는 외교에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감성도 빠질 수 없다. 외교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주미 일본 대사관이 배포한 성명서가 화제가 됐다. 내용은 이랬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도쿄를 출발해 수퍼볼 경기장에 도착할 수 있다고 말할 수(Speak Now) 있다. 스위프트가 빨간(Red) 옷을 입고 응원할테니 걱정하지 않도록(Fearless) 확인해주고 싶었다”. ‘Speak Now(3집)’, ‘Red(4집)’, ‘Fearless(2집)’는 스위프트의 앨범 타이틀이다.

지난해 5월 캠프 데이비드 회담. 바이든 대통령(왼쪽)과 기시다 총리가 어깨에 손을 얹고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5월 캠프 데이비드 회담. 바이든 대통령(왼쪽)과 기시다 총리가 어깨에 손을 얹고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왜 가수의 경기 관람까지 정부가 보증을 섰을까. 이번 경기엔 스위프트의 연인 트래비스 켈시가 뛰었다. 켈시가 우승컵을 들어 올린 뒤 청혼할 수 있다는 극적 장치까지 마련됐다. 그런데 일본 때문에 세기의 드라마가 결방됐다면? 일단 일본의 ‘보증서’는 큰 관심을 끌었다. 게다가 켈시는 종료 10초를 남기고 돌파에 성공했고, 연장 승부 끝에 극적인 우승 드라마가 완성됐다.

이것만 해도 성공한 작전이다. 그러나 일본의 의도는 이게 끝일 리가 없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이 기가 막힌 그림을 그렸다”며 “이례적 행동에는 당연히 목적이 있고, 이번엔 4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의 국빈 방미를 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이다. 그러나 순방과 통화의 순서 등 모든 면에서 일본이 앞서왔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은 첫 아시아 순방 때 한국을 먼저 찾았다. 국빈으로 먼저 초청된 사람도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쿼드(Quad) 멤버인 인도와 호주 정상이 윤 대통령에 이어 초청됐지만, 기시다 총리는 아직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일본이 트럼프에 반대했던 스위프트를 내세운 것은 바이든용 메시지”라고 했다. 그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자민당 부총재의 트럼프 면담 시도로 오해가 생겼다”며 “감성을 내세운 일본의 보증으로 드라마가 완성됐고, 이후 스위프트가 바이든이 원하는 대로 지지 선언까지 해준다면 이번 보증서는 일본의 요구를 관철할 묘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기시다 총리가 4월 방미 때 자위권 확대를 요구할 거란 관측이 나온다. 경우에 따라 중국은 물론 한국의 여론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 두 사람의 만남은 총선일인 4월 10일로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