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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전쟁할 결심했다”는 분석은 틀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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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로버트 칼린 미들베리국제연구소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 몬테레이연구소 박사의 최근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이 이목을 끌고 있다. 제목은 ‘김정은, 김일성처럼 전쟁 결심한 듯’이었다. 그들의 주장에 화들짝 놀란 미국 정부는 백악관 고위급에 보고까지 했다.

두 사람은 이런 주장의 근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호전적 수사와 통일 포기 선언, 그리고 격화하는 미·중의 지정학적 긴장을 거론했다. 그중에서도 지난 2019년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에게 더 나은 딜을 제공하지 않은 당시 트럼프 행정부와 취임 이후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는 윤석열 정부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동의 힘든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
미국 정부 당국자도 가능성 일축
무리한 북한 요구 들어주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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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새로울 것 없는 주장이다. 해커 박사는 그동안 가장 크게 대북 유화 정책을 주장해온 학자다.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 소장을 지낸 그는 핵무기 개발과 비확산 노력에 참여했다. 그는 외교와 억제 정책이 북한의 지속하는 도발을 저지하지도 못했고 핵무기 개발을 위한 자체 우라늄 농축 기술 개발도 막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국제사회가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려면 군축협정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30년 동안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1991년)부터 북핵 6자 회담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약속도 지킨 적이 없다. 북한이 가짜 군축 협정에 따른 데탕트(긴장 완화)를 이용해 무기 개발을 위한 자금과 기술 확보를 노렸을 뿐이라는 사실은 이미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다시 그 길을 간다면 북한의 무기 위협과 요구만 들어주는 양보만 하다 다시 끝날 것이다. 해커 박사의 주장은 기술 전문가의 시각을 담고 있지만, 정치적 고려는 부족하다. 이들의 임박한 전쟁 주장에 대해 백악관이 브리핑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가 만난 수많은 미국 당국자는 그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최근 김정은의 화법이 달라진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는다. 11월 미국 대선 시기에 호전적 위협과 언론의 조명을 받는 데 목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후보는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는 김정은에 대응할 가능성이 크고, 김정은은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과 진배없다.

두 학자의 예견이 틀렸다 하더라도 이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북한이 얼마나 위험한 국가인지 깨달았다. 북한은 최근 국제정치의 역학 구도가 재조정에 들어감에 따라 훨씬 더 큰 공간을 확보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중 갈등은 김정은이 거의 면죄부를 들고 한국과 국제사회를 테스트하고 도발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스 한·미·일 정상회담 이후 3국 협력이 공고해져 한반도 억제와 준비태세가 강화됐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동시에 북한을 압박하려는 동인이 없다.

미국 대선 정국도 불확실성을 더한다. 트럼프 후보의 비전과 언행은 재앙적이다. 김정은과의 ‘브로맨스’는 물론 주한 미군의 철수 고집도 여전하다. 헛된 계획이고 현실적 전략이 아니다. 미국 의회와 트럼프 참모들은 트럼프 1기 때는 트럼프의 이런 생각을 저지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지만, 재집권 시에도 과연 그럴지는 알 수 없다.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도 문제다. 북한 문제를 우선순위에 놓는 순간 유권자들이 바이든 대통령 집권 기간에 전 세계가 통제 불능 상태로 빠지고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는 점을 백악관도 알고 있다. 이 지점이 바로 트럼프가 북한 문제를 부풀리고자 하는 동인이며, 동시에 바이든에겐 그 반대의 동인으로 작동할 테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행히 한·미 동맹은 구조적으로 여전히 튼튼하다. 한·미 동맹에 대한 여론 지지는 한국과 미국 모두에서 높다. 한·미 연합군의 압도적 군사력은 대북 억지로 작동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미국 의회의 지지도 강력하다. 바로 이것이 한반도 안정의 토대다. 앞으로 1년은 김정은의 강한 언사에 휘둘려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한 헛된 방안을 새로이 찾는 데 쏟을 것이 아니다. 한·미 연합군의 역량을 강화하고 한·미 동맹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강화하는 데 써야 할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