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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 오바마'의 기막힌 꼼수…정적 러닝메이트에 장남 꽂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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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대선을 일주일 앞둔 인도네시아에서 두 손가락을 'V'자 형태로 만들어 흔드는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의 손 인사가 논란이 되고 있다. 대통령이 소속당(투쟁민주당) 대신 야당(그린드라당) 대선 후보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부 장관의 선거 기호(2번)를 알리며 지지를 호소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특히 프라보워의 러닝메이트인 부통령 후보는 조코위의 장남 기브란 라카부밍 라카다. 때문에 일각에선 헌법상 3선이 불가능한 조코위 대통령이 프라보워와 장남을 내세워 사실상 '정치 왕조' 구축에 나섰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조코위 대통령(왼쪽)과 프라보워 수비안토 야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9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자카르타포스트 홈페이지 캡처

인도네시아의 조코위 대통령(왼쪽)과 프라보워 수비안토 야당 대선 후보가 지난달 29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자카르타포스트 홈페이지 캡처

"인니의 민주주의, 도전받다" 

7일(현지시간)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임기 말에도 지지율이 80%에 육박하는 조코위 대통령의 암묵적 지지를 받는 프라보워 장관이 지지율 53%로 대선 후보 3명 중 1위를 달리고 있다.  

유권자가 2억500만 명(전체 인구의 72%)에 달하는 인도네시아 대선은 오는 14일 열린다. 같은 날 총선도 함께 진행된다. 포린폴리시 등은 이 선거를 두고 "하루에 치르는 선거론 유권자가 세계 최다"라고 소개했다. 인구 대국 인도의 총선(4~5월) 유권자(9억 명)가 인도네시아보다 많지만, 인도는 투표가 40일 동안 나눠 진행된다. 

인도네시아는 인구로 인도·미국에 이어 세 번째 규모의 민주주의 국가다. 지난 대선·총선 투표율이 80% 이상일 만큼 투표 참여도 활발하다. 인도네시아 선거가 '민주주의 축제'로 불리는 이유다.  

기호 2번인 대통령 후보 프라보워와 부통령 후보 기브란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지난달 28일 모였다. AFP=연합뉴스

기호 2번인 대통령 후보 프라보워와 부통령 후보 기브란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지난달 28일 모였다. AFP=연합뉴스

그러나 미국 브루킹스연구소는 최근 "이번 대선으로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가 도전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논란의 중심엔 조코위 대통령이 있다. 한때 그는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불렸다. 

오랜 기간 군부 독재에 시달렸던 인도네시아는 2004년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했다. 조코위는 2014년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직선제를 통한 최초의 정권 교체였다. 무명의 정치인에서 일약 대통령이 된 조코위는 친서민·개혁적 행보를 통해 한때 '인니의 오바마'로 불리기도 했다. 조코위는 2019년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해외 투자 유치, 인프라 확충 등 친시장 정책인 이른바 '조코노믹스'로 국민적인 지지를 얻었다. 동남아시아 최대 경제 대국인 인도네시아는 조코위 대통령 재임 기간 2020년을 제외하곤 매년 연평균 5%대 경제성장률를 기록했다.

'대통령 아들' 야망에 정적과 손잡았나  

하지만 이번 대선을 앞두고 권력 연장을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당초 36세였던 기브란은 선거법상 연령 제한(40세 이상)에 걸려 부통령 후보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는 '지방자치단체장은 연령 제한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헌법 소원을 받아들여 수라카르타 시장이자 조코위의 장남인 기브란의 출마가 가능하게 했다. 당시 헌재 소장이 조코위의 매제였다. 

조코위 대통령. AP=연합뉴스

조코위 대통령. AP=연합뉴스


기브란을 러닝메이트로 지목한 프라보워는 2014년·2019년 대선에서 연거푸 조코위에게 패했다. 프라보워는 엘리트 집안의 보수주의자로 빈민가 출신에 자수성가한 조코위와는 정치적 대척점에 있었다. 프라보워는 인도네시아를 32년간 철권통지한 독재자 수하르토 전 대통령의 딸과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프라보워 자신도 1990년대 후반 민주화 운동가 납치·실종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달 현지 언론엔 조코위와 프라보워가 단둘이 점심을 먹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실려 논란을 빚기도 했다. 오랜 기간 정적이었던 조코위와 프라보워가 이번 대선에서 손을 잡은 건 서로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전문가를 인용해 "조코위는 아들을 부통령에 앉히기 위해 프라보워에게 자신의 인기를 빌려줬고, 당선을 위해 조코위의 인기가 필요했던 프라보워는 러닝메이트로 기브란을 선택했다"고 지적했다. 

 프라보워와 기브란. 기브란이 손가락으로 두 사람의 기호인 숫자 '2'를 표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라보워와 기브란. 기브란이 손가락으로 두 사람의 기호인 숫자 '2'를 표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인도네시아 아트마자야대 연구원 요에스 케나와스는 NYT에 "조코위의 진짜 목표는 아들 기브란의 2029년 대선 출마일 것"이라며 "부통령은 이를 위한 견습 기간"이라고 분석했다. 미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98년 군부 독재 종식 후 인도네시아는 민주주의 성공 사례로 꼽혀왔으나 이번 선거로 후퇴할 위기에 처했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내에서도 조코위 대통령의 중립성 의무 위반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최근 조코위 대통령의 모교 가자마다대를 포함한 주요 대학의 교수들이 잇따라 규탄 성명을 냈다.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국립 인도네시아대 교수진은 지난 2일 성명에서 현 상황을 "국가적 비상사태"라고 규정했다. 조코위가 속한 투쟁민주당도 그가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데 반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대선에 출마한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들을 소개한 포스터를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인도네시아 대선에 출마한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들을 소개한 포스터를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대선에 수백명 과로사…투표함 이송에 코끼리  

인도네시아 대선은 14일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1·2위 후보가 오는 6월 26일 결선 투표를 치른다. 프라보워의 과반 득표 전망이 우세하나 조코위 대통령의 선거 개입 논란이 막판 표심의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차 투표의 공식 결과는 다음 달 20일쯤 발표될 예정이다. 유권자가 워낙 많은 데다 수개표 방식으로 개표 집계와 당선자 확정 등에 한 달 가량 걸린다. 1만70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도네시아의 지리적 특성도 신속한 집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다만 투표 다음 날 표본으로 지정된 투표소의 투표함을 개표하는 방식으로 전반적인 윤곽을 파악한다.   

인도네시아 대선을 앞두고 최근 투표 관리원들이 투표 시범을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인도네시아 대선을 앞두고 최근 투표 관리원들이 투표 시범을 보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2019년 대선에선 투표 관리원들이 선거 전후 과로의 영향으로 수백명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인도네시아는 전국에 투표소 80만여 곳을 설치하는데 대부분이 오지여서 비행기·헬기·뗏목·코끼리 등을 동원해 투표함을 실어 나른다. 

앞서 인도네시아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대선과 유사한 사태를 막기 위해 투표 관리원(570만 명)의 연령을 55세 이하로 제한하고, 건강검진 진단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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