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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안나가 소리내다

프랑스 "난임 지원, 35세도 늦다"는데…한국 왜 20대를 외면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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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난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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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난임 시술 지원을 확대하고 있지만 이에 앞서 청년층의 난임 조기 검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난임 시술 지원을 확대하고 있지만 이에 앞서 청년층의 난임 조기 검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프랑스가 25세부터 난임 검사를 무료로 실시하는 방안을 고려한다고 한다. 프랑스의 2023년 합계출산율은 1.68명인데 반해 한국은 0.7명이다. 그런데도 프랑스는 출산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대대적인 난임 지원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대통령실 관계자는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35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난임에 대비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싶다”고 전했다. 난임이 되고 나서 지원하면 늦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시술 지원해도 출산율 안 올라 #가임력 알고 임신 계획 세워야 #20대부터 난임 조기 검진 필요

하지만 우리의 난임 정책은 어떠한가. 중앙·지방정부 모두 나서 난임 부부 지원을 확대하고 있지만 젊은이들이 곧 난임이 되는 것은 손 놓고 보고 있다. 그래서 여성들은 임신이 잘 되는 20대에는 임신할까 봐 걱정하고, 임신이 어려운 40대에는 임신할 때까지 뭐든 다해야 한다는 이중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의 난임 증가는 의학적 문제가 아니다. 20대에 애를 낳을 수 없도록 하는 사회적 압력이 많은 국민을 난임의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즉 ‘사회적 난임’ 증가가 심각한 문제다. 여기에 정부가 나이 제한 없이 난임 시술 지원을 확대하면서 나이가 들어도 난임 시술을 계속하면 임신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그 결과 난임 시술을 받는 부부와 시술 건수는 매년 증가하지만 출산율은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는 난임 부부의 증가를 저출산의 원인으로 잘못 파악하여 정책을 펼친 결과다. 난임 증가와 저출산은 원인이 같다. 임신할 수 있을 때 아이 낳기 어려운 사회가 원인이다. 사회 문제를 의학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2019년부터 난임 시술이 건강보험이 되고 본인 부담금에 대한 지자체 지원도 병행하여 확대되면서 치료비 부담이 줄었지만 돈만 비용이 아니다. 반복되는 시술 과정에 들이는 시간과 스트레스 등 난임 부부의 고통은 실로 심각하다.

체외수정을 하는 여성의 80% 이상이 우울과 불안, 좌절 등 정서적 어려움을 호소한다. 보건복지부는 전국에 난임·우울증상담센터를 설치하여 심리 상담과 정서 지원을 무료로 하고 있지만 가장 좋은 것은 이런 고통을 받는 국민이 더 늘어나지 않게 돕는 것이다.

20년 가까이 했는데도 안 되면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 난임 지원을 줄이자는 게 아니다. 이미 난임인 사람은 얼른 부모가 될 수 있게 실질적으로 돕고, 아직 난임이 아닌 젊은이들이 난임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지 않게 예방 정책을 펼쳐야 한다. 임신 지원이 가장 필요한 20대 국민이 난임 정책에서 가장 소외되어 있다.

난임 예방 정책의 1순위는 공교육과 홍보다. 많은 난임 부부들이 이렇게 임신하기 어려울 줄 알았으면 더 일찍 시도할 걸, 그때 그 아이를 낳을 걸 등등 여러 후회를 한다. 나이에 따른 가임력 저하는 누구도 피할 수 없으며 의학이 발전하여 평균 수명이 늘어났어도 불로장생 할 수 없듯이 노화에 따른 가임력 감퇴는 어머니와 아이의 건강을 위한 자연의 섭리라는 것을 공교육이 가르쳐야 한다.

여성은 35세 이상이 되면 아기의 염색체 이상과 자연유산 빈도가 높아지고 임신성 고혈압이나 당뇨 등 임신 관련 합병증도 증가하여 고위험 임신군에 속한다. 40대에는 가장 적극적인 난임 시술인 체외수정(시험관 임신 시술)을 해도 임신 가능성이 작아지고, 임신 되어도 자연 유산될 가능성은 커진다.

입시 교육엔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도 스무살에는 임신이 잘되고 35세가 넘어가면 어려워진다는 기본적인 성 지식도 알려주지 않는다. 위험을 알고 대비하는 것과 위험을 모른 채 닥친 후에야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은 과정도 결과도 다르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준비되면 나중에 임신할 것이라고 미루고 미루다가 난임이 되는 국민에게 그 위험과 어려움에 대해 알리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하도록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나서야 한다.

난임을 예방하는 가장 쉬운 길은 난임이 되기 전에 자신의 가임력을 알고 임신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지금 젊은이들은 정부가 모든 비용을 다 대준다 해도 아이를 낳을까 말까다. 생식 능력과 관련 있는 모든 진료비, 즉 산부인과와 비뇨의학과 진료를 20대 국민은 본인부담금 없이 검진받게 해서 난임 원인이 되는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게 지원해야 한다. 생식기 질환을 제때 치료받지 않아 훗날 임신을 원할 때 어려워지기도 한다. 20대 인구가 워낙 줄고 있고 예산도 많이 필요하지 않다.

혹자는 한 해 출생아 중에 난임 시술로 태어나는 아이들의 비율이 난임 지원을 시작한 2006년 약 1%에서 최근에는 10%대로 증가하였다며 이를 정책의 성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총출생아가 20여만명 감소하여 난임 시술 출생아 비율이 증가한 것은 정책 실패다.

우리가 원하는 게 난임 시술 증가인가 출생아 증가인가. 그동안 정부는 난임 시술만 계속하면 임신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줬다. 그 결과 많은 부부가 정부가 지원하는 만큼 난임 시술을 계속하는 것이 부모가 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라 여기고 병원을 찾는다. 출산을 늘리지 못하면서 난임 시술만 늘리는 정책은 여성들의 건강과 부부의 삶을 위해 이제 바꿔야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난임 부부들에게 도움 안 되는 예산을 쓰며 생색내지 말고, 이제라도 난임 예방 정책을 제대로 시작하자.

최안나 국립중앙의료원 산부인과 난임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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