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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국가배상 책임 첫 인정…고법 “원료 안전성 심사 소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6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인근에서 국가책임 민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이 6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인근에서 국가책임 민사소송 2심 판결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1000명 넘는 사망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원료 물질의 안전성 심사를 소홀히 한 국가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공론화된 지 13년 만이다. 서울고법 민사 9부(부장판사 성지용)는 6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항소심에서 1심 결과를 뒤집고 “정부는 위자료 총 1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3년간 연 5% 지연 이자도 지급하라고 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성분인 PHMG·PGH의 유해성을 각각 2000, 2003년 심사한 뒤 서둘러 “유해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공표한 부분, 또 그 이후 추가로 심사하지 않고 방치한 부분을 “정당성·타당성·합리성을 잃은 위법한 행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국가 배상책임을 판단할 땐 공무원의 권한 행사가 국민의 건강·생명·신체에 미치는 영향, 헌법상 국가의 국민보건에 관한 보호 의무 등 국가의 책무도 고려해야 한다”며 “국민에게 대규모 건강 피해를 준 가습기 살균제 원료 화학물질에 대한 불충분한 심사, 불완전한 고시 등으로 인한 국가 배상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PHMG는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옥시싹싹의 원료, PGH는 그와 같은 계열의 성분으로 둘 다 세퓨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물질이다. PHMG는 2000년, PGH는 2003년 환경부가 ‘유독물에 해당하지 않는 물질’로 등록·고시했고, 안전성 관련 등록 자료 제출이 면제됐다.

재판부는 “환경부 등은 PGH 등에 아무 제한을 두지 않고 ‘유독물이 아니다’라고 공표할 경우,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예견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원고 5명 중 3명에게 위자료로 각각 300만, 400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특별법에 따라 같은 피해에 대해 구제급여를 받았을 경우, 그만큼은 빼고 배상액을 정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원고 측은 “국가의 피해 보상 법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라고 반겼다. 환경부는 “판결문 검토와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상고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14년 8월 시작한 이번 소송은 이날 2심 판결이 나오기까지 9년 5개월이 걸렸다. 당초 원고 13명, 피고 6명(옥시·한빛화학·용마산업·롯데쇼핑·세퓨·대한민국)이었는데, 2015년 9월 피고 중 옥시·한빛화학·용마산업·롯데쇼핑과는 조정이 이뤄졌다. 1심 재판부는 2016년 11월 국가 배상책임은 인정하지 않고, 세퓨에 대해서만 총 5억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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