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연 이자 4562%에 나체 사진 뿌린 사채업자…원금 무효 소송한다

중앙일보

입력

두 자녀를 둔 30대 A씨는 건설업체 관리직으로 일하는 번듯한 가장이었다. 원래 한 달에 400만원 이상의 급여를 받았었지만, 건설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수개월째 월급이 밀렸다. 결국 A씨는 지난해 1월 인터넷 대출카페를 통해 급전 20만원을 빌렸다. 대출 기간 7일에 상환금액 40만원으로 연체 시 하루 2만원을 더 입금하는 조건이었다. 기간 안에 갚아도 이자율이 법정 최고금리(연 20%)를 훌쩍 넘는 연 4562%에 달했다. 대출 조건도 까다로웠다. 대부업자는 A씨에게 조부모와 부모는 물론 직장 동료와 지인 등 11명의 연락처와 9명의 인스타그램 계정까지 요구했다. 하지만 돈이 필요했던 A씨는 이런 요구를 모두 받아들였다. 처음엔 나체 사진까지 달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결국 돈을 갚지 못하자, 대부업자들은 과거 A씨가 다른 대부업체에 돈을 빌리면서 제공한 A씨 나체사진을 찾아 이를 지인들에게 뿌렸다.

불법 사금융, 원금까지 무효소송 진행

대부업자들의 악랄한 불법 추심을 막기 위해 원금까지 무효로 하는 소송이 진행된다. 6일 금융감독원은 대한법률구조공단과 함께 성착취 및 지인 추심을 한 대부계약 2건을 상대로 계약무효소송을 지원하기로 했다.

금융감독원과 대한법률구조공단이 불법대부계약 무효화 소송을 지원한다. 연합뉴스

금융감독원과 대한법률구조공단이 불법대부계약 무효화 소송을 지원한다. 연합뉴스

그간 불법 사금융에 대한 형사적 처벌은 있었다. 하지만 금융당국 주도로 원금까지 무효로 하는 민사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변호사와 소송 진행은 법률구조공단에서 맡고, 변호사 선임 등 비용 일체는 금감원이 부담한다.

“반사회적 계약 처음부터 무효”

금감원이 불법 대부계약을 원금까지 갚지 않아도 된다고 보는 근거는 민법 103조다. 민법 103조에는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돼 있다. A씨 사례처럼 추심을 위해 나체 사진을 뿌리는 것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위반한 것일 뿐 아니라, 반사회적 행위라는 것이 금감원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지인 연락처 제공을 조건으로 대출을 한 것부터 이후 나체 사진을 이용한 추심까지 대출계약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모두 문제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A씨는 대부계약 무효확인소송은 물론 1000만원의 위자료도 청구할 예정이다. 대부 계약이 법원에서 무효가 되면 이미 납부한 원금과 이자까지 돌려받을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불법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불법사금융 민생현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지인 연락처를 이용한 불법 추심에 대해서도 소송을 지원한다. 20대 B씨는 지난 2021년 5월부터 2021년 9월까지 17회에 걸쳐 10~20만원을 돈을 불법대부업체에 빌렸다. 대출 기간은 3~14일로 이자는 6~20만원을 받았다. 이자율이 연 1520.8%, 7300%에 달했지만, 급전이 필요했던 B씨는 가족과 지인 연락처까지 제공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B씨는 돈을 못 갚을 경우, 지인에게 연락해도 좋다는 내용이 담긴 차용증을 작성해 이를 들고 있는 사진을 찍어 대부업자에게 건넸다. 결국 B씨가 돈을 갚지 못하자 대부업자들은 가족 등에 연락해 폭언과 협박을 했고, 직장에도 이 사실이 알려져 일을 관둬야 했다. 대부업자들은 B씨에게 다른 대부업체에 돈을 빌려 빚을 갚게 하는 돌려막기까지 종용했다. B씨는 소송을 통해 기존 대부계약 무효는 물론 위자료 300만원까지 청구하기로 했다.

“추가 사례 발굴해 소송 지원”

금감원은 앞으로도 추가 불법 사금융 사례를 더 발굴해 소송을 지원할 방침이다. 소송으로 실제 무효 판례가 만들어지면, 비슷한 상황의 피해자들도 보다 빨리 구제받을 수 있다는 게 금감원 생각이다.

금감원은 “불법사금융피해신고센터 운영을 통해 다양한 피해사례 등을 수집하고, 무효 가능성이 높은 불법대부계약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피해자 무효소송(연내 10건)을 지속해서 지원해 나가겠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