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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혁의 싱가포르서 보는 중국] 뮌헨 협정과 대만: 역사적 유사점과 미·중 관계에 대한 세 가지 교훈

중앙일보

입력

왼쪽에서부터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 프랑스 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 이탈리아 두체 베니토 무솔리니가 협정을 조인하기 전 만난 모습

왼쪽에서부터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 프랑스 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 이탈리아 두체 베니토 무솔리니가 협정을 조인하기 전 만난 모습

1938년 9월에 체결된 뮌헨 협정은 단순히 히틀러의 야망을 유화책으로 넘겨버리려는 시도에서 역사상 가장 실패한 협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협정은 초기에 동맹국의 외교적 성공으로 간주하였으며,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지역인 주데텐란트를 병합하면 더 이상 확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큰 유럽 분쟁을 막기 위한 것으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이후 히틀러가 재차 침공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이러한 유화책의 본질적인 결함이 드러났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미·중 관계를 분석하는 많은 사람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유화책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뮌헨 협정 당시의 영국과 독일 간의 상황과 현재의 미국과 중국 사이의 유사성을 탐색함으로써 현재의 미·중 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뮌헨 협정을 양측 관계에 적용하여 세 가지 교훈을 도출해 보았다.

양안 관계와 뮌헨 협정의 유사성

당시의 영국과 현대의 미국은 모두 국내적인 문제로 인해 전략적 라이벌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상태였다. 당시의 영국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경제적, 군사적으로 제약을 받은 상태였으며 유럽의 안정이 최우선이고 체코슬로바키아를 방어해야 하는 공식적인 책임이 없는 영국은 수동적으로 데탕트 정책을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현대의 미국은 경기 둔화가 예측되며, 현재 중국과 상당한 무역 관계를 맺고 있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가자 전쟁으로 인한 군수물자 부족으로 미국이 적극적으로 행동하기에는 어렵게 보인다. 또한 공식적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주장하는 미국은 더욱이 대만에 대해 적극적인 방어태세를 취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신흥 강국인 당대의 독일과 현재의 중국은 모두 과거의 한계를 극복하고 글로벌 영향력을 증진하려는 전체주의 국가이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으로 약화한 독일은 1936년 라인란트에서 적극적으로 군사 재무장을 추구하며 더욱 공격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해 나갔다. 마찬가지로 '세기의 굴욕'에 시달리는 현대 중국은 군사적 활동에 투자하며, 양안과 남중국해에서 더욱 공격적인 '전랑 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특히 대만 통일을 국가 부흥의 중대 과제로 설정하고 중국이 정당한 세계적 영향을 행사하는 것을 권력의 목표로 삼고 있다.

체코슬로바키아와 대만은 당시 신흥 강국인 독일과 중국과 각각 지정학적으로 근접한 지역에 있다. 체코슬로바키아와 독일 사이에는 원래 험준한 산맥으로 인해 자연적인 장벽이 존재하여 독일의 침략을 방해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주덴텐란트의 양보로 독일군이 다른 동유럽 지역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마찬가지로 대만 역시 중국의 태평양 진출의 출발점 역할을 할 수 있다. 중국의 대만 통일은 중국이 지리적 제약을 벗어나며 태평양과 남중국해 지역에서의 존재감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첫 번째 교훈: 전략적 자산의 중요성 

1938년,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독일의 팽창주의 야망을 억제하기 위해 유화책을 추구했지만, 확장적인 권위주의 정권에 맞선 단순한 유화책은 해결책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특히 체임벌린은 독일의 공격적인 행태인 라인란트 재무장과 같은 사안을 간과하면서 주덴텐란트의 영토와 그 전략적 가치를 과소평가했다. 뮌헨 협정에서 결정된 주덴텐란트의 할양은 독일이 산악지대의 자연적 국경을 넘어 무제한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군수 산업의 문을 열어줌으로써 나치의 전쟁 인센티브를 크게 강화했다. 결과적으로 유화책은 의도치 않게 독일의 추가 정복에 대한 열망을 자극하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대만은 태평양과 남중국해 사이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데 있어 전략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더욱 공격적인 입장을 취함에 따라 대만을 흡수하면 강력한 해군 기지를 제공할 수 있으며, 중국이 이 지역에서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으며, 주변 국가와의 갈등도 고조될 것이다. 특히 세계 반도체 시장의 65%를 지배하고 있는 TSMC와 같은 중요 산업에서 대만이 중요한 항로와 자원을 통제하는 것은 기술 의존적인 세계에서 중국에 전례 없는 지렛대를 제공할 것이다. 대만의 영토 보존은 안정과 세계적인 균형 유지, 미·중 간의 '투키디데스 함정'의 위험 회피를 위해 필수적이며, 이는 양국 간의 글로벌 강대국 간의 갈등 위험을 크게 높일 수 있는 티핑포인트로 작용하고 있다.

두 번째 교훈: 전략적 모호성의 함정 

1936년 독일의 라인란트 재군비화에 대해 영국은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그 결과 독일은 뮌헨 협정 이후에 영국의 수동성에 대한 입장을 더욱 견고히 했으며, 이는 히틀러가 확장을 더욱 대담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촉매제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대만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은 중국에 미국의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을 것이며, 양쪽 간의 긴장을 강화할 것이다. 중국과의 노골적인 대립을 피하기 위해 1970년대에 도입된 미국의 대만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 정책은 미국이 현실적으로 양안 문제에 개입할 수 있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에 미국의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게 한다.

특히 전략적 모호성과 더불어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가자 분쟁에서 나타난 서방의 비일관적인 대응은 미국의 대만에 대한 방어 의지에 의구심을 더욱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대만에 보내야 하는 미국의 무기 재고가 이미 190억 달러를 초과하는 등을 고려할 때 중국은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 한편으로 중국은 남중국해와 양안 등지에서 해군을 증강하고 있으며 이미 중국의 군사 예산과 기술 투자는 괄목할 만큼 성장하였다. 이를 고려했을 때, 이제는 '전략적 모호성'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할 때이다.

세 번째 교훈: 포괄적 봉쇄의 필요성

20세기 중반 베르사유 조약은 가혹한 배상과 영토 조정으로 독일을 심각하게 약화해 광범위한 불만과 초인플레이션을 조장했다. 히틀러는 민족주의적 정서를 이용해 권력을 장악하고 침략을 부추기는 이 불만을 교묘하게 무기화했다. 마찬가지로 시진핑은 역시 청년실업, 주거위기 등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국가에 대한 민족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적극적인 봉쇄는 중국의 민족주의 정서와 침략에 대한 정당성을 더욱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독일 나치의 부상에서 볼 수 있듯이 한 국가에 대한 고립은 의도치 않게 그 국가의 공격성을 부추길 수 있다. 보다 효과적인 접근법은 억제력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의 세계 경제로의 통합을 심화시키는 장기적인 전략을 포함해야 한다. 무역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상호 의존성을 촉진해 전략적으로 중국의 공격적인 행태를 억제한다. 이 방식은 세계 경제의 안정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권위주의 국가가 그 민족주의 정서를 조장하기 힘들게 한다.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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