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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파격적 출산 장려 정책으론 국가 미래 보장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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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

얼마 전 양당이 초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을 제시했다. 내용만으로 보면 두 당이 제시한 정책들은 말 그대로 특단의 조치이고,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출산 관련 복지 정책들보다 범위가 넓은 것은 틀림없다. 곧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으니 양당 중 누가 다수당이 되더라도 앞으로 출산 관련 복지 수준은 크게 향상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파격적인 정책들이 실제로 가동되면 우리나라의 초저출산 현상이 해결될 수가 있을까? 해결이라 말하기 위해서는 합계출산율이 그래도 1.3(인구학에서 초저출산과 저출산을 나누는 기준)은 넘어야 할 텐데, 그 수준은 아니더라도 지금의 0.7보다는 높아질 수 있을까?

출산 장려책 경쟁적으로 내놓지만
성공한다 해도 축소사회는 불가피
줄어드는 인구, 위협으로 보지 말고
새로운 사회 만드는 기회로 삼아야

비록 많은 이들이 회의적이겠으나 긍정 회로를 함께 가동해보자. 현재 출생아의 70% 이상이 30~38세 여성으로부터 태어나고 있으니, 양당의 출산 복지정책이 효과를 발휘해서 내년부터 이 연령대 출산율이 2035년까지 매년 5%씩 올라간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합계출산율과 태어나는 아이의 수에 어떠한 변화가 생길까?

위 가정대로면 2023년 0.7이던 합계출산율은 10여 년 뒤인 2035년이 되면 1.0에 가깝게 된다. 합계출산율이 1.0이 되면 현재 24만 명도 채 되지 않던 출생아 수가 2035년에는 29만 명 수준까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대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태어나는 아기의 수가 늘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안타깝지만 합계출산율이 2035년 전까지 1.5 수준으로 올라가지 않으면 연 출생아 수 30만 명을 다시 보기는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 이제 판단해보자. 양당 모두 특단의 대책인 만큼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하다. 양당 대책을 비교한 중앙일보 1월 19일자 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대책에는 연간 3조원이 필요하고 더불어민주당 대책은 연28조 원이 필요하다. 이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는 차치하고, 2035년에 지금보다 약 5만 명 더 태어나는 데 수십 조에서 수백 조 예산 투입이 괜찮은 것인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국가 소멸 수준이니 10년 뒤에 5만 명이 더 태어날 수 있다면 예산이 얼마든 과감한 조치를 펼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예산을 써도 결국 30만 명도 태어나지 않을 것이 정해졌다면 차라리 지금과는 질적으로 달라질 2035년 이후 대한민국을 미리 준비하는 데 그 예산을 쓰는 것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대부분 제도와 정책이 우리나라 인구 성장기에 만들어진 것이라,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면 잘 작동할 수 없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사실 서로 다른 두 가지 판단 중 어느 것이 더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필자는 기왕 수조 원 이상의 예산을 마련할 것이라면 출산 장려를 위한 복지정책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데 예산을 쓰자는 주장에 힘을 보태고 싶다. 합계출산율을 높일 필요가 없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정책의 성공 가능성을 보고 내린 판단이다.

먼저 주요 연령대 출산율이 매년 5%씩 상승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물론 제대로 출산 장려에 쓰인 것은 아니겠지만) 지난 15년이 넘게 300조가 넘는 예산이 투입되었으나 출산율은 계속 하락했다. 양 당이 강조하는 육아 휴직 제도도 보육과 양육을 위한 현금성 지원도 항상 향상됐는데도 말이다. 백번 양보해서 연 5%씩 상승한다고 치자. 하지만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수가 연 30만 명을 넘기 어렵다면 초저출산을 망국의 위협이라 보는 이들이 걱정하는 모든 일은 여전히 발생한다. 일할 사람과 연금과 세금을 내줄 사람이 줄고, 내수 시장 규모도 불안정하고, 대학이 문을 닫고, 군 병력도 모자라는 등과 같이 예상되는 문제는 출산 장려 복지정책이 성공해도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하고, 일하는 인구가 작아도 사회의 지속성을 담보해 줄 정책에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면 그 효과는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내수가 줄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강화에 예산을 더 쓰는 것이다. 대학이 무너지면 2040년을 목표로 새로운 대학 생태계 조성에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정책 대결을 펼치는 양당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자 함이 아니다. 인구학 전공자로 아이를 낳고 기르고 싶은 청년들이 매년 5%가 아닌 15% 이상은 많아지길 희망한다. 다만 아무리 잘 만든 출산 장려 정책도 작아진 인구에서는 큰 효과를 내기 어렵다. 하지만 자원이 한정적이라면 아무래도 성공 가능성이 낮은 곳보다는 높은 곳에 투자하는 것이 옳다. 인구가 작아져도 결코 사회 붕괴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국민에게 보여주고, 가족이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해준다면, 초저출산도 극복될 것이다. 무엇이 우선인지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조영태 서울대 교수·인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