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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경호의 시시각각

일론 머스크의 사외이사 사용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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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공통점 하나는 자기가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는 점이다. 잡스는 애플에서, 머스크는 글로벌 결제 서비스 회사인 페이팔의 공동창업자 겸 CEO였다가 해임됐다. 미국 기업 이사회의 독립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곧잘 인용된다. 창업 오너가 자기 회사에서 쫓겨나는 건 우리 기업 문화에선 상상하기 어렵다.

돈·마약 친구로 ‘이사회 참호’ 구축
사외이사들은 그를 ‘왕’처럼 느껴
한국도 이사회 투명성 더 높여야

한데 우리가 기업 지배구조의 모범으로 벤치마킹해 왔던 미국의 대표 기업도 항상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이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머스크가 테슬라·스페이스X의 전·현직 사외이사들과 돈과 마약으로 얽혀 있다는 내용이다. CEO와 이사회의 친밀한 관계 때문에 이사회는 경영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CEO의 마약 투약에 눈감았고, 이사회 회의록에도 관련 지적을 남기지 않았다. 독립성을 자랑하는 미국 기업의 이사회가 왜 그랬을까. WSJ 기사는 이렇게 전했다. “이사들은 머스크의 지근거리에서 누리는 ‘사회적 자본’을 잃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일부는 자신이 마치 ‘왕’과 가깝게 지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머스크가 ‘왕’처럼 군림했던 모양이다.

머스크의 이사회 운영 방식은 이랬다. 친구들을 이사회에 포진시켰다. 불법 마약 등으로 문제가 된 벤처투자가 친구도 내치지 않고 챙겼다. 이사 보수는 후하게 줬다. 머스크 소유 회사와의 주식 거래로 오라클 창업자인 래리 엘리슨과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의 차남 제임스 머독 등 전·현직 이사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줬다. 테슬라 주식은 지난 4년간 300% 넘게 올랐다. 이사회는 머스크에게 최대 558억 달러(약 74조원)에 달하는 보수를 주는 데 2018년 찬성했다. 미국 상장사 CEO 보수의 최고 기록이다. 얼마 전 델라웨어 법원이 제동을 걸긴 했다.

외환위기 직후 도입한 우리나라 사외이사제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사외이사 상당수가 바람막이용으로 영입된 ‘관피아’라는 비판이 많다. 가끔 이사회에 참석해 ‘거수기’ 노릇이나 하면서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억대 보수까지 챙긴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사외이사 연봉이 1억원을 넘는 상장사가 삼성전자(1억8127만원), SK(1억6640만원) 등 13곳이다(2022년). 최근 캐나다 호화 이사회로 비난받은 포스코홀딩스 같은 일부 소유 분산 기업의 사외이사는 CEO 추천권을 틀어쥐고 특권층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회사 이사회는 2022년 열 번 열렸다. 사외이사 평균보수가 1억500만원이니 회의 한 번에 875만원을 받은 셈이다.

사외이사 보수가 과하다는 지적이 있다. 고액 연봉과 회의 참석 때 주는 ‘거마비’에, 일부는 골프 회원권 혜택까지 누린다니 ‘황제 사외이사’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런저런 혜택이 많으니 그 자리를 한사코 유지하기 위해 CEO 눈치를 본다는 시각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외이사 보수는 기업과 이사회가 정할 문제고, 공시해 시장과 여론의 평가를 받으면 될 일이다. 차라리 사외이사 선임 절차의 투명성을 더 높이는 방식으로 유도하는 게 낫다.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야인 시절에 공저자로 펴낸 『경제정책 어젠다 2022』에서 주장한 내용인데, 동감한다. 기업들이 내세운 사외이사의 면면과 활동으로 이사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시장이 판단하도록 하고, 기업은 공시된 지배구조 내용으로 경쟁할 수 있으면 된다. 구린 데가 있고 권력 눈치를 많이 보는 기업일수록 검찰 등 권력기관 출신의 사외이사를 선호할 것이다.

『나는 대우조선의 사외이사였다』를 쓴 신광식 박사의 지적처럼 법과 제도만으로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외이사 스스로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분명히 알고 자리에 임해야 한다. 사외이사를 하고 싶은 분들은 5년간의 피 말리는 손배 소송을 기록한 이 책부터 읽으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