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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한국의 그레고리 펙’ 굿바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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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원조 미남배우인 남궁원씨가 5일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07년 6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에 참석한 고인이 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원조 미남배우인 남궁원씨가 5일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07년 6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에 참석한 고인이 팬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원조 미남 배우 남궁원(본명 홍경일)이 5일 별세했다. 90세. 최근 수년 간 폐암 투병을 해온 그는 이날 오후 4시께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다.

고인은 서구적 외모로 ‘한국의 그레고리 펙’으로 불렸다. 1959년 주목받던 신인 노필 감독의 ‘그 밤이 다시 오면’으로 스크린 데뷔해, 1999년 이두용 감독의 ‘애’까지 영화 총 345편에 출연했다.

1934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고, 수려한 외모로 한양대 화학공학과를 다닐 때부터 ‘길거리 캐스팅’ 제안을 많이 받았다. 본인은 배우가 아닌 교수나 외교관을 꿈꿨지만, 어머니의 암 치료비를 마련하려 충무로에 입성했다.

당대 유명 감독과의 인연도 많았다. 신상옥 감독의 ‘자매의 화원’(1959)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신 감독의 영화사 ‘신필름’ 전속 배우가 됐다. 신 감독과 합작 영화를 만들며 홍콩에 체류했던 때, 홍콩 영화를 보고 연습하며 연기력을 다졌다. 이같은 노력으로 ‘멋진 외모에 비해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오명을 씻어냈다.

주요 작품 중에는 신필름의 ‘빨간 마후라’(1964)와 ‘내시’(1968), 한국판 007을 표방한 첩보영화 ‘국제간첩’(1965), ‘극동의 무적자’(1970) 등 액션 주연작이 많다.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2), ‘충녀’(1972),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1978) 등에선 선이 굵은 외모와 달리 유약한 남성 가장 역할을 주로 맡았다. 이두용 감독의 ‘피막’(1980), ‘내시’(1986) 등에선 악역으로 변신했고, 이후 ‘가슴달린 남자’(1993) 등 다양한 장르로 연기 반경을 넓혔다.

남궁원씨가 50대 후반에 아들 홍정욱(뒷쪽 맨 왼편)씨 등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중앙포토]

남궁원씨가 50대 후반에 아들 홍정욱(뒷쪽 맨 왼편)씨 등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중앙포토]

그는 2015년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시대극과 현대극을 거슬러 여러 배역을 맡았지만, 이미지에 맞지 않아 머슴 역을 못 맡은 게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고인에 대해 “남성적인 듬직한 스타일이 주를 이루던 시대에 서구적 외모로 인기를 모았다”며 “연기 외에 정치나 사업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거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신영균·윤일봉·김지미 등 전설의 배우들과 함께 활동한 배우”라며 “그의 별세는 1960~7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 1기의 문이 닫히고 있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고인은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 헤럴드 명예회장 등을 지냈다. 2016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자서전 『7막 7장』의 저자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이 아들이다. 유족은 아내 양춘자 씨와 홍 회장 등 1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8일 오전 9시 30분, 장지는 경기 포천시 광릉추모공원이다.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조화·부의는 받지 않는다고 유가족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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