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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예견한 각본" 고레에다 감독이 꼽은 '괴물' 흥행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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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괴물'을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지난 5일 한국 취재진과 내한 인터뷰를 가졌다.사진 미디어캐슬

영화 '괴물'을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지난 5일 한국 취재진과 내한 인터뷰를 가졌다.사진 미디어캐슬

“프랑스 개봉 때도 현지 교내 왕따 사건으로 아이가 자살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건 때문에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좀 더 늘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日영화 ‘괴물’ 50만 돌파 #고레에다 감독 기념 내한 #“사카모토 각본이 흥행 동력 #퀴어 소년 섬세하게 연출했죠”

영화 ‘괴물’(지난해 11월29일 개봉)의 50만 관객 돌파를 기념해 내한한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61) 감독이 “한국의 그러한 사건‧사고에 대해서도 들어서 알고 있다”면서 “시대를 예견한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의 힘”을 흥행 비결로 꼽았다. 5일 그를 서울 강남의 투자배급사 NEW 사옥에서 만났다.

'괴물' 50만…15년간 日실사영화 흥행 2위  

그의 연출작 ‘괴물’은 초등학교 5학년 소년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가 겪는 사건을 두고 학부모‧교사‧학생들의 엇갈린 시선을 그렸다. 최근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교내 폭력, 교권 추락을 정면에서 다룬 데다, 같은 사건을 3가지 각도에서 모두 보고서야 진실이 드러나는 구조도 몰입도가 높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영화 '괴물' . 사카모토 유지가 각본을 쓰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했다. [사진 미디어캐슬]

영화 '괴물' . 사카모토 유지가 각본을 쓰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했다. [사진 미디어캐슬]

‘괴물’은 한국에서 개봉 66일만인 지난 2일 누적 관객 50만명을 넘었다. 이로써 누적 117만 관객의 멜로 영화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2022)에 이어 최근 15년간 일본 실사 영화 흥행 2위에 올랐다. 1999년 한‧일 문화 개방 후 ‘러브레터’, ‘주온’ 등 신드롬을 일으켰던 일본 실사 영화 시장은 2000년대 중반부터 마니아 관객 위주로 축소돼왔다가 지난해 ‘스즈메의 문단속’, ‘더 퍼스트 슬램덩크’ 등 일본 애니메이션, 원작 소설 인기에 힘입어 되살아나는 추세다.

"퀴어 소년 연기…아역들 전문가 성교육 받아"

특히 ‘괴물’은 영화 ‘어느 가족’(2018)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한국 스타배우 송강호‧아이유 등과 한국영화 ‘브로커’(2022)를 찍은 글로벌 거장 고레에다 감독이 동성애 소재를 다룬 점도 주목 받았다. 극 중 두 주인공 소년은 우정과 사랑 사이를 넘나든다.
아동의 성 정체성 문제는 그간 아시아 주류 작품에선 잘 다뤄지지 않았다. 고레에다 감독은 “처음 사카모토 유지가 쓴 플롯을 읽고 정면으로 퀴어 소년들을 그려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섬세한 연출이 필요했다”면서 “평소 아역들의 연기는 대본을 주지 않고 배역과 아역 본인의 개성이 겹쳐지는 방식으로 연출했는데 이번엔 위험하다고 생각해 처음부터 각본을 읽게 했다. 성 교육 전문가를 불러 성 정체성의 종류, 신체 변화에 대해 교육도 받게 했다”고 설명했다. “촬영 중 신체 접촉 등 아역에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현장에서 전문가가 참관했다. 할 수 있는 노력은 다했다”고 말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새 영화 '괴물'(11월 29일 개봉)은 몰라보게 바뀐 아들(쿠로카와 소야)의 행동에 이상함을 감지한 엄마(안도 사쿠라)가 학교에 찾아가면서 감춰져 있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을 그렸다. 사진 미디어캐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새 영화 '괴물'(11월 29일 개봉)은 몰라보게 바뀐 아들(쿠로카와 소야)의 행동에 이상함을 감지한 엄마(안도 사쿠라)가 학교에 찾아가면서 감춰져 있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을 그렸다. 사진 미디어캐슬

영화 주제에 대해 그는 “주인공들을 궁지로 몰아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가까운 엄마‧선생님일 수 있다. 일반적인 행복, 평범함, ‘남자답게’란 담임교사의 말처럼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언어에 동조 압력, 남과 똑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의식이 깔려있다. 어른들의 가치관이 같은 반 아이들에게도 스며든다”면서 “언뜻 평범한 사람들이 아이들 스스로 ‘나는 괴물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원인일 수 있다는 걸 관객이 알아차리길 바랐다”고 말했다. 그간 직접 각본을 쓰며 “영화의 구성, 인물상, 대사가 다 조금은 비슷해지고 스스로 질리고 있었다”면서 “존경하는 각본가와 일한 것이 큰 경험으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연출로 출발한 그는 1998년 극영화 연출작 ‘원더풀 라이프’로 처음 부산 국제영화제를 찾은 뒤 지난해 ‘괴물’까지 신작이 나올 때마다 부산을 찾았다. 간장 게장을 가장 좋아하는 한식으로 꼽는다. 이날 그는 “제 데뷔 시기가 부산 영화제 출범 시기와 거의 같았다. 김동호 전 이사장, 돌아가신 김지석 프로그래머 덕분에 부산 영화제와 함께 영화를 통해 걸어왔다”면서 “그런 분들이 (저를) 영화제에 불러주셨기 때문에 한국 관객들이 점점 더 일본 영화를 보게 됐다. (한국 관객이) ‘괴물’을 사랑해주신 데는 그분들의 공도 크다”고 감사를 표했다.

배우 쿠로카와 소야(오른쪽), 하이라기 히나타가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점에서 열린 영화 '괴물' 주연 배우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배우 쿠로카와 소야(오른쪽), 하이라기 히나타가 지난해 12월 21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점에서 열린 영화 '괴물' 주연 배우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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