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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21만쪽, 재판 106회…이재용 수사부터 선고까지 5년 3개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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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 회장은 3년 5개월간의 재판 끝에 무죄를 받았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 경영권 승계 의혹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 회장은 3년 5개월간의 재판 끝에 무죄를 받았다. 연합뉴스

이른바 ‘국정농단’ 수사 과정에서 불거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이 1심에서 무죄로 결론났다. 수사부터 1심 선고까지 5년 3개월이 걸렸으나 법원은 검찰 주장 대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5일 오후 2시 이 회장 등의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 사건에서 이 회장 등 피고인들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선고 대상은 ▶이 회장이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에서 위법하게 관여했는지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닉스의 자산 가치를 4조5000억원가량 부풀리는 식으로 분식회계를 했는지 등이었다.

2015년 이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주주에게 피해를 주며 불법적으로 이뤄졌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사실상 삼성의 경영권 승계 작업 전반이 법정에 오른 셈이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17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참여연대, 경실련, 금융정의연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부당합병 1심 선고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여연대, 경실련, 금융정의연대 등 노동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부당합병 1심 선고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사가 촉발된 것은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부터다. 이듬해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과정에서 당시 부회장이었던 이 회장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위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접촉했다는 정황이 알려지면서 부당합병 의혹이 수면 위로 올랐다. 별도로 김경율 당시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현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 2016년 12월 금융감독원에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 의혹에 관한 질의서를 송부했고, 금감원은 2017년 3월 특별감리에 착수해 “삼성바이오가 회계처리 기준을 바꾼 것은 분식회계”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어 2018년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고발로 서울중앙지검의 수사가 시작됐다.

김경진 기자

김경진 기자

‘삼성바이오 증거인멸’ 사건이 수사의 첫 분수령이 됐다. 검찰은 2019년 5월 삼성바이오 압수 수색 과정에서 공장 바닥을 뜯어내다가 노트북 등이 무더기로 묻어져 있는 것을 포착했고, 증거인멸 혐의로 이모 삼성전자 재경팀 부사장 등 삼성 측 핵심 관계자 8명을 재판에 넘겼다.

수사는 2020년 5월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문제로 확대돼 이 회장을 두 차례 소환 조사하며 정점에 이르렀다.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 회장과,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팀장에 대한 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이 회장 측은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해 반격에 나섰다. 수사심위위는 같은 해 6월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3개월의 장고 끝에 2020년 9월 이 회장을 비롯한 11명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이 수사심의위 권고에 불복한 첫 사례였다. 이로써 이 회장은 국정농단 사태로 2017년 재판에 넘겨진 뒤 약 3년 반 만에 또다시 기소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24년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24년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1년 9개월간의 수사과정에서 삼성전자 등 10개 계열사를 37회, 임직원 주거지를 13회 압수 수색했고 300명에 대해 860여회 소환 조사를 거쳤다. 이렇게 법원에 제출한 수사기록만 모두 437권, 21만 4000페이지에 이른다.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였던 이복현 현 금융감독원장이 이끌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당시 3차장검사로,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수사를 지휘했다. 국정농단 특검에서부터 손발을 맞췄던 검사들이다.

이후 재판은 이날 1심 선고까지 3년 5개월간 이어졌다. 그동안 총 106번이 열렸고, 80여명의 증인이 법정에 출석했다. 이 회장은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불출석한 날을 제외하고 95번을 직접 출석했다.

이 회장은 2021년 1월 국정농단과 관련해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같은 해 8월 가석방된 뒤 이듬해 8월 사면됐다. 유죄가 확정된 사건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정치권에 86억원 규모의 뇌물을 주며 부정한 거래를 했다는 것이고, 이날 선고된 사건은 승계 작업 자체가 불법이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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