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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훈 칼럼

한동훈 현상:세대 교체론, 자질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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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

#1 역설 한 가지. 우리 정치에서는 현실이 상상력을 앞질러 간다. 필자는 그동안 금년 말에나 한동훈 현상에 대한 칼럼을 써볼까 생각 중이었다. 하지만 한동훈 현상은 예상을 앞질러 현실정치의 중심에 서 있다. 한 위원장은 여당 내 힘겨루기뿐만 아니라 제1야당과의 경쟁에서도 중추를 이루고 있다. 심지어 4월 총선은 정부 심판론보다 여당 비대위원장 평가가 우선하는 특이한 선거가 될 조짐마저 보인다. 새 정치 스타가 솟구쳐 오르다 보니, 뜨거운 열광과 싸늘한 냉소가 이어진다. ‘73년생 한동훈’에 대한 지지층의 기대가 폭발하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비판을 넘어선 험한 말들이 쏟아진다.

탈산업화 세대 정치리더의 등장
윤·한 갈등은 세대 갈등이기도
공직 우등생이 정치리더로 변신
특권 폐지 등 리더 역량 시험대에

#2 이 칼럼의 목적은 한동훈 현상에 대한 찬양이 아니다. 그렇다고 맹렬한 비난에 동참하지도 않을 것이다. 열광과 냉소를 떠나 세 가지 관점에서 한동훈 현상의 의미를 짚어보려 한다. ①세대교체론. 윤석열 대통령이 산업화 시대 세계관의 마지막 계승자라면, 한동훈 위원장은 탈산업화 세대가 보수 정당의 주류로 등장했다는 신호탄이다. ②자질론. 한동훈 위원장은 한국의 교육 체제가 길러낸 최상급 인재이다. 뛰어난 문제풀이 능력을 바탕으로 세속적 성공의 사다리를 밟아온 이 제도권 인재는 과연 정치의 험난한 세계에서도 능력을 발휘할까? ③민주화 세대 청산론. 한동훈 장관이 여당 리더로 변신하면서 내세운 최우선 과제는 민주화 특권 계급 청산론이었다. 과연 그의 문제 설정에 대해 동료 시민들은 얼마나 지지를 보낼 것인가?

#3 먼저 세대론. 민주화 이후 보수 계열 정당에서 세대교체의 과제는 사실 같은 문제의 무한 반복이었다. 누가 언제 산업화 시대의 세계관, 멘탈리티를 벗어나 새로운 흐름을 만들 것인가?

이준석 대표 체제의 막간극을 거쳐 윤석열 정부 3년 차를 맞으면서 윤 정부가 산업화 세계관의 마지막 주자라는 점은 명확해지고 있다. 임기 초반의 각오와는 달리 점차 관료 중심주의, 성장 목표에의 몰입, 수직적 소통에 기대는 모습은 산업화 멘탈리티의 회귀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 보니 “술을 전혀 안하고 대신 커피를 마시는” 신인류 한동훈 위원장이 상징하는 세대, 문화적 기호들은 지지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커피, 음악, 옷맵시 등은 단지 개인 취향이 아니다. 그가 상징하는 취향의 발산은 곧 구시대의 집단주의, 위계질서, 돌격 정신을 거부하는 것이다.

오렌지 세대(혹은 서태지 세대) 리더의 부상에 적지 않은 이들이 당황해하고 있지만, 사실 이들이 곳곳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한 지는 꽤 됐다. 기업, 문화예술계, 과학기술계에서 이들 세대는 진작 주류로 진입해 있다. 다만 기득권의 철옹성이었던 정치, 특히 정당정치에서 이들 세대의 주류화가 미뤄져 왔을 뿐이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의 갈등은 한편으론 당-정 갈등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지연되어 온 정치세대교체를 둘러싼 갈등이기도 하다.

#4 윤 대통령-한 위원장의 세대 갈등(과 봉합)이 빚어내던 만큼의 극적 요소들은 많지 않지만, 필자가 눈여겨보는 것은 한동훈 위원장의 자질을 둘러싼 토론이다. 한편에서는 그의 군더더기 없는 언어 구사와 상황 요약 능력을 떠받들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제1야당에 맞서는 말싸움 실력 외에는 보여준 것이 없다는 냉소적 평가도 뒤따른다.

하지만 자질론의 핵심은 한동훈 위원장의 화려한 경력을 뒷받침해 온 자질과 정치리더로서의 자질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데 있다. 대학입시-사법시험-검찰 요직을 거치며 한 위원장이 세속적 성공의 길을 달려온 바탕에는 탁월한 문제풀이 능력이 있었다. 법률, 대학 교육과정이라는 분명한 준거들이 있고 이 준거들 안에서 문제를 빨리 효율적으로 푸는 것이 그의 검증된 능력이었다.

반면 정치의 세계에서 리더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문제풀이와는 전혀 다르다. 문제의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따로 모범답안이 나와 있지도 않다. 대표 사례들을 꼽아보자. 인구위기, 사회 양극화, 인공지능의 도전, 기후변화. 이들 가운데 가장 시급한 문제는? 가장 해결이 어려운 문제는?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문제는?

결국 주어진 문제를 풀이하기보다 문제의 우선순위를 살피는 능력,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는 능력, 문제 해결의 완급 조절이 곧 리더의 자질이다. 이 점에서 한동훈 위원장의 정치적 자질 검증은 현재 진행형이다.

검증의 첫 무대는 당연히 이번 총선의 핵심 이슈들이다. 한동훈 위원장은 세대교체, 특권 정치의 타파, 민주화 운동세력의 청산을 이번 선거의 핵심 과제들로 내걸었다. 이러한 문제설정에 유권자들이 얼마나 호응하는가에 따라 우리 정치는 방향을 바꾸게 된다. 지루하게 이어져 온 산업화세대-민주화 운동세대의 패권이 마침내 막을 내릴지? 민주화 이후 심화하여 온 정치 귀족들의 특권화는 멈추게 될지? 새로운 세계관으로 무장한 세대가 여야 정당을 주도하는 시대가 열리게 될지?

장훈 중앙대 교수·본사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