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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영경의 마켓 나우

축구 한류 활용해 K비즈 파워 키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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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고영경 고려대 아세안센터 연구교수

고영경 고려대 아세안센터 연구교수

아시아가 축구로 후끈 달아올랐다. 향상된 경기력과 투지를 보여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팀을 이끈 김판곤, 신태용 감독의 지도력이 크게 부각됐다. 이에 고무된 매체들은 ‘축구 한류가 시작됐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이미 박항서 매직으로 기업들이 톡톡히 효과를 봤지만, 축구 한류를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 닐슨의 ‘2022 세계 축구 리포트’에 따르면 축구 팬 비율에 따른 아시아 국가 순위에서 베트남이 75%로 1위, 인도네시아가 3위(69%), 태국과 말레이시아가 5위(58%)와 7위(53%)를 차지했다. 한국은 8위(50%)에 그쳤다. 6억7000만 명이 사는 동남아 어디를 가도 축구 팬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동남아 국가 간 대결은 한·일전을 연상시키며, 자국 리그 응원 열기도 뜨겁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팀 서포터즈 작마니아(Jakmania)는 열광적인 응원으로 유명하다.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동남아에서는 유럽 축구에 대한 인기가 한국보다 훨씬 일찍 시작됐고 강렬하다. 미디어의 성패는 유럽 리그 경기 중계권에 달려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말레이시아 방송사업자 아스트로의 압도적 시장점유율(75%)은 해외 축구경기 덕택이다. 당연히 손흥민을 필두로 유럽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에 대한 관심도 높다. 해외구단 인수에도 적극적이다. 잉글랜드 우승 신화를 쓴 레스터시티 뒤에는 태국 유통업체 킹파워 창업자 위차이 시와타나쁘라파가 있었다. 그가 구단주가 된 뒤 레스터시티는 태국 국민구단으로 등극했다. 그 외에도 말레이시아 에어아시아 대표 토니 페르난데스는 박지성이 몸담았던 QPR을, 재벌 바자야 그룹의 빈센트 탄은 카디프시티를 인수했다. 스페인 발렌시아FC 구단주는 싱가포르 부호이며, 이탈리아 인터밀란의 구단주도 한때 인도네시아 재벌이었다.

축구 열기를 기업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1996년 시작된 아세안 축구 선수권대회는 싱가포르 타이거맥주 후원을 받아 타이거컵으로 명명됐으며, 2008년부터는 일본 스즈키가 스폰서로 등장해 스즈키컵으로 불렸다. 2018년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에 10년만의 우승을 안겨주고 국민 영웅으로 떠오른 대회가 바로 이 스즈키컵이다. 오토바이와 소형차가 주력인 스즈키는 아세안에 진심이었다. 스즈키가 나간 자리를 다시 일본기업이 채우며 2022년부터 미쓰비시일렉트릭컵이 됐다.

한류의 최전선 K팝과 K드라마는 아세안 안방을 차지하고 현지인들의 워너비가 됐지만, 소비자 시장에서는 여전히 일본·유럽 브랜드가 강력하다. 한국이라는 국가의 소프트파워는 향상됐지만, 기업의 브랜드파워와 마켓파워로 이어지지 않았다. 한류에 또 한 번 기회가 왔다. 축구라는 매개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영경 고려대 아세안센터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