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화가 이쾌대·조각가 김윤신…4월 베니스 ‘K아트’로 물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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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 20일부터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에는 이쾌대의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1940년대). [사진 국제갤러리]

1935년 함남 원산에서 태어나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목조각가 김윤신(89), 성 소수자 이야기를 예술로 엮어온 이강승(46), 국내에서 한동안 ‘금기의 화가’였던 월북 미술가 이쾌대(1913~65), 100원 동전에도 쓰인 이순신 영정을 그린 한국화가 장우성(1912~2005).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미술 올림픽’ 베니스 비엔날레가 선택한 한국 미술가들이다.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인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는 지난달 31일 이탈리아 베니스 현지에서 주제전 참여 작가 332명을 발표했다. 발표 중에 이쾌대의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1940년대) 이미지도 보여줬다. 이탈리아 르네상스풍 초상화에 한복 차림으로 팔레트를 든 화가의 자화상. 전시 주제인 ‘누구나 이방인(Foreigners Everywhere)’과 상통하는 작품이다. 이번 주제는 어디를 가든 이방인을 만날 것이며, 우리 또한 마음 깊은 곳에선 이방인임을 뜻한다.

페드로사 총감독은 “외국인·이민자·실향민·망명자·난민 예술가들의 작업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라며 “이방인의 의미를 확장해 성 정체성으로 박해받고 소외되는 퀴어 예술가, 독학으로 작업을 시작한 예술가, 민속 예술가 등의 실천도 조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성자의 ‘오작교’(1965). [사진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강보경 차장은 “페드로사가 지난해 4월 한국을 방문해 베니스에 초청할 만한 작가들을 조사해 갔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의 김윤신 개인전, 광주비엔날레 등을 둘러봤다고 한다.

대표적인 ‘현대미술 플랫폼’인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은 1895년부터 격년으로 열리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6년부터 참여했다. 이번 전시는 4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히토 슈타이얼, 테레사 마솔레스, 잉카 쇼니바레, 슈퍼플렉스 등 거장들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다.

본전시 외에 국가관별 전시도 풍성하다. 베니스 비엔날레가 ‘미술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1995년 건립된 한국관(Korean Pavilion)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1932~2006)의 꿈이었다. 1993년 독일관 대표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그는 베니스 시장을 만나 “한국관에서 남북한 공동 전시를 열자”고 설득했다. 이어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 한국관 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백남준은 전날 남대문 시장서 산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청와대에 나타났다. 대통령 면담을 끝내고 ‘힘들어 죽겠다’며 박카스를 꺼내 시원하게 들이켜는 모습이 마치 퍼포먼스 같았다”고 말했다.

김윤신의 ‘합이합일 분이분일 2022-9’(2022) 등 한국 미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볼 수 있다. [사진 리만머핀]

올해 한국관에서는 구정아(57)가 향기를 전시한다. 한국 실향민·입양아 등의 추억을 모티브로 만든 향기로 한반도 지도를 그려 보인다는 구상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12세기 건립된 몰타기사단 수도원에서 한국관 개관 30주년 기념전 ‘모든 섬은 산이다’도 연다. 비구니 20여 명의 퍼포먼스를 펼쳤던 곽훈부터 특별언급상을 받은 전수천·강익중·이불 등 역대 참여 작가 30여 명이 출품한다.

유영국미술문화재단은 르네상스 화가 조반니 벨리니의 작품이 상설 전시된 베니스 고택에서 ‘유영국: 무한 세계로의 여정’을 연다. 단색화 세대의 스승인 1세대 추상화가 유영국(1916~2002)은 자신이 나고 자란 울진의 산을 강렬한 원색으로 그렸다.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은 바르토메우 마리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기획으로 재불화가 이성자(1918~2009)의 회고전을, 갤러리현대는 신성희(1948~2009)의 박음 회화, 엮음 회화 연작을 전시한다. 일찌감치 타지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으나 충분히 조명받지 못한 작가들이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