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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차 MD "신상의 조건? 셀링 포인트가 될 스토리 먼저" [쿠킹]

중앙일보

입력

F&B업계는 어느 분야보다 유행 주기가 짧다. 그만큼 다양한 신제품이 쏟아져나오지만, 소비자에게 눈도장 한번 찍지 못한 채 사라져버리기 일쑤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제품들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쿠킹은 상품기획자(MD)를 만나 신제품 출시 과정을 듣는 코너〈신상의 조건〉을 시작한다. 첫 회는 올리브오일이다.

신상의 조건 ① 올리브오일  

올리브오일의 맛은 올리브의 품종과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사진 컬리

올리브오일의 맛은 올리브의 품종과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사진 컬리

조금만 더해도 요리의 풍미를 끌어올려, 미식을 완성하는 식재료를 꼽는다면 단연 올리브오일이다. 한계도 없다. 샐러드부터 스테이크, 밥, 빵, 심지어 아이스크림과도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그래서일까. 요리 좀 하는 사람뿐 아니라 요리 초보들의 주방에도 올리브오일은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하고 있다. 명절을 앞둔 요즘 같은 때는 선물용으로도 인기다. 갈수록 높아지는 인기를 보여주듯, 온·오프라인 몰에서는 다양한 브랜드가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컬리에서 판매 중인 올리브오일의 종류만 80여종이다. 이 전쟁터에 스페인 현지 올리브농장과 직접 계약해, 출시된 제품이 선보여 눈길을 끈다. 바로 ‘오가닉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이다. 컬리가 200년 역사의 스페인의 올리브 농장 핀카 듀에르나스와 직접 계약해 선보였다. 지난달 15일, 이를 기획한 조기훈(39) 그로서리 팀장을 만나 한국의 올리브오일 트렌드부터 상품의 기획 단계별 과정을 들었다.

신상품을 기획할 때 참고하는 것은.

“여러 가지 마케팅 포인트를 모두 고려하지만, 그중에서도 매출을 본다. 매출은 팩트다. 3~5년의 매출을 세부 카테고리까지 꼼꼼하게 살펴보면, 어떤 제품이 신장하는지 눈에 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가장 눈에 띈 항목을 꼽는다면.  

“코로나로 인해 외식이 내식화되는 등 식문화 트렌드에 큰 변화가 있었다. 예를 들어 홈 베이킹이 코로나 기간 인기를 끌다 이제는 그전 상황으로 회귀했다. 그런데 이런 이슈와 상관없이 매년 꾸준히 30% 이상 신장하는 게 올리브오일이다. 상황이 변했다고 지갑을 닫는 게 아니라, 한번 구매했는데 좋으니까 다음에도 또 사는, 대표적인 상품이다.”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올리브오일을 기획한 이유는.

“앞서 동물복지 우유를 기획하며 원하는 품질을 위해 제주도의 목장을 찾아갔었다. 그때 원산지의 농장과 계약해 현지에서 농작물을 재배해 가져오면 상품의 질도 신뢰할 수 있고 가격도 합리적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 떠올린 게 올리브오일이다. 한국에서 판매 중인, 특히 프리미엄을 내세운 올리브오일은 내 기준에서 마케팅 비용이 차지하는 부분이 컸다. 직접 현지에 가서 좋은 품질의 올리브오일을 구해서, 적절한 가격에 소개하고 싶었다. MD로서의 욕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장과 다이렉트로 거래를 해야 했다.”

200년 역사의 올리브 농장인 핀카듀에르나스. 사진 컬리

200년 역사의 올리브 농장인 핀카듀에르나스. 사진 컬리

스페인 농장은 어떻게 만났나.  

“국내의 업체를 통하지 않고, 해외의 농장과 직접 소통해야 했다. 그래서 주한 스페인 대사관에 메일을 보냈다. 그게 3월이었다. 내가 구상한 비즈니스 모델을 그림으로 그려 보냈는데, 다음날 연락이 왔다. 현지 농장에 컬리만의 구역을 정해서, 우리만을 위해 생산한 올리브로 오일을 만들고 싶다는 내용이었는데, 대사관에서 조건에 맞는 농장을 추린 리스트를 공유해줬다. 리스트에 있는 농장들과 소통하며 우리가 정한 기준에 맞는 곳을 찾았는데 모든 기준을 만족시킨 곳이 ‘핀카 듀에르나스’였다. 이곳은 200년 역사의 올리브 농장으로 유기농과 일반 등 재배 방식에 따라 구역을 나눠 관리한다.”

어떤 기준을 세웠나.

“상품기획자는 상품을 구상할 때부터 셀링 포인트가 될 스토리를 생각해야 한다. ‘좋은 품질’이라는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유기농의 경우 수령 100년 이상 된 올리브나무가 있고 그해 가장 먼저 수확한 햇올리브를 사용하고, 수확 후 4시간 이내에 오일 추출이 가능한 곳 등이었다.”

그러한 기준을 세운 이유는.  

“올리브를 수확한 후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올리브가 오일 추출기에 들어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적을수록 산도가 낮은 신선한 올리브오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리브오일에서 산도는 품질을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다. 산도가 낮을수록 더 신선하다. 산도 0.8% 이하일 때는 엑스트라 버진 등급을, 2% 이하는 버진 올리브유로 나눈다. 산도를 모르더라도 잠시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수확한 올리브를 쌓아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아래쪽에 있는 올리브는 뭉개지거나 컨디션이 나빠지니까. 최상의 상태에서 바로 추출하고 싶었다. 그런데 핀카 듀에르나스는 농장 내 추출이 가능해서 수확 후 1시간 이내에 오일 추출과 병입이 가능하다.”

핀카듀에르나스와 협업해 선보인 오가닉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 2023~2024 햇올리브를 사용해 만들었다. 사진 컬리

핀카듀에르나스와 협업해 선보인 오가닉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 2023~2024 햇올리브를 사용해 만들었다. 사진 컬리

다양한 올리브 품종 중 피쿠알을 선택했는데.  

“품종을 고르기 위해 정말 많이 고민했다. 농장에서는 사실 다른 품종을 추천했었다. 하지만 소비자의 니즈가 먼저였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4인 가족 기준, 한 달 기름 소비량은 900mL 기준 1.5통, 그러니까 약 1350mL 정도다. 아마 올리브유는 이보다 훨씬 적을 거다. 기름은 공기와 접하면 산패(酸敗)된다. 이 때문에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도록 산화에 강한 품종이냐가 중요했다.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품종이 ‘피쿠알’이다. 더불어, 컬리에서 판매한 80여종의 올리브오일을 분석했다. 원산지, 산도, 병입의 유형, 맛, 향, 매출, 소비자 후기 등을 정리해보니, 피쿠알을 선호하는 소비자가 많았다. 데이터로 검증된 데다, 피쿠알 특유의 청토마토와 풀내음이 한국 소비자의 입맛에도 잘 맞을 거라고 판단했다. 가끔 신선한 올리브오일의 풀향을 쓰다고 느끼기도 하는데, 신선한 제품에서 느낄 수 있는 풍미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과자나 가공식품의 경우 기획하면 다음 주에 샘플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올리브오일은 처음 기획한 3월부터 논의를 시작했는데 여름이 돼도, 가을이 돼도 아직 올리브를 수확하지 않으니 계속 불안했다. 게다가 현지 올리브 농사가 어려워지면서, 가격이 인상됐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걱정이 커졌다.”

실제로 올리브 산지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하던데.

“사실이다. 폭염과 가뭄으로 스페인 현지의 올리브 작황 상황이 정말 안 좋다. 올리브는 매년 10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수확하는데, 22~23년 수확량만 봐도 전년 대비 절반 정도 감소했다고 한다. 수확량 감소는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데 실제로 지난해 현지 답사 당시만해도 전년 대비 30~50% 정도 올리브오일 가격이 올라있었다.”

스페인의 핀카듀에르나스 농장을 찾은 조기훈 팀장(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과 컬리팜이라고 적힌 팻말. 사진 컬리

스페인의 핀카듀에르나스 농장을 찾은 조기훈 팀장(사진 왼쪽에서 두번째)과 컬리팜이라고 적힌 팻말. 사진 컬리

현지 농장 설득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숫자가 아닌 진정성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단순히 10억, 20억원 규모의 비즈니스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올리브오일에 대한 소비가 갈수록 늘고 있고, 컬리 소비자는 올리브오일을 정말 좋아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 정말 좋은 올리브오일을 보여주고 싶고, 앞으로도 한국에서 올리브오일 시장을 함께 키우자고. 스페인 현지에 도착했을 때 진심이 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며 사진에 합성했던 '컬리팜'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600ha(180만평) 규모의 농장 중에서 유기농 올리브 농장은 5ha, 일반 올리브농장은 20ha가 ‘컬리팜’이다. 축구장 크기로 비교하면 35개의 구장 규모다.”

반대로 컬리 입장에서도 큰 수익이 나는 상품은 아닐 텐데.  

“물론 상품 한두개로 회사의 매출이 결정되진 않는다. 하지만 그로서리팀을 맡고 있다 보니, 카테고리마다 브랜드 정체성을 보여주는 상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소비자가 접하는 브랜드의 정체성이 확고해질 수 있다. 이러한 가치는 매출이라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다.”

가장 보람된 순간은. 

“라이브를 통해 처음 소개했는데, 당일 준비한 수량이 매진됐다. 그리고 후기들이 올라오는 '더 살 걸 그랬다'는 후기를 보며 10개월간의 노력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MD에게 ‘더 구매하고 싶다’는 후기만큼 최고의 칭찬은 없지 않을까.”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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