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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성 동점골, 조현우 선방쇼...미운 오리들, 백조로 변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마음 고생을 훌훌 털어낸 조규성(왼쪽 둘째)와 조현우(오른쪽 둘째)가 서로를 격려하며 얼싸안았다. 연합뉴스

마음 고생을 훌훌 털어낸 조규성(왼쪽 둘째)와 조현우(오른쪽 둘째)가 서로를 격려하며 얼싸안았다. 연합뉴스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부진으로 비판 받았던 '미운 오리' 조규성(미트윌란)과 조현우(울산)가 팀을 탈락 위기에서 구하면서 클린스만호의 '백조'로 변신했다.

위르겐 클린스만(독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31일(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 대회 16강전에서 전·후반전과 연장전을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2로 이겼다. 스트라이커 조규성은 동점골, 조현우는 승부차기 선방쇼로 클린스만호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후반 1분 사우디 압둘라 라디프에게 선제골을 내준 한국은 경기 종료 직전까지만 해도 패색이 짙었다. 10분이 주어진 추가시간 중 8분이 넘게 흐른 시점에도 동점골을 넣지 못하면서 대회 탈락 위기에 몰렸다. 절체절명의 순간 조규성의 머리가 번뜩였다. 후반 9분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설영우(울산)가 머리로 내준 패스를 조규성이 껑충 뛰아올라 헤딩 슛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극적 동점골을 터뜨리고 포효하는 조규성(왼쪽). 연합뉴스

극적 동점골을 터뜨리고 포효하는 조규성(왼쪽). 연합뉴스

그가 헤딩으로만 2골을 터뜨려 스타로 떠오른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가나전을 떠올리게 한 골이었다. 조규성의 천금같은 동점골 덕분에 클린스만호는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결국 승부차기에서 사우디를 물리치고 8강에 올랐다. 조규성은 승부차기에서 세 번째 키커로 나서서 침착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그런데 이날 조규성은 후반 19분 이재성(마인츠)과 교체돼 뒤늦게 그라운드를 밟았다. 후보 선수로 밀린 탓이다. 조규성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 3경기에서 모두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전했으나 번번이 쉬운 득점 기회를 놓치며 골침묵했다. 주포가 부진하면서 클린스만호는 한 수 아래 전력의 요르단(2-2무)과 말레이시아(3-3무)에 고전했다. 그 결과 E조 2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하며 우승 후보의 자존심을 구겼다. 조규성의 소셜미디어(SNS)는 악플로 도배됐다.

네티즌은 조규성의 긴 머리 스타일과 과거 각종 예능 프로 출연을 문제 삼았다. 공교롭게도 이번 대회 기간 조규성이 지난달 촬영한 분량이 예능 프로에 방영되면서 '연예인병에 걸렸다' '머리 기를 시간에 실력을 길러라' '국대 반납하고 예능인이 돼라'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조규성은 실력으로 비난을 이겨냈다. 그는 사우디전 후 "어떤 상황에서든 경기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준비했다"며 골을 넣은 순간엔 "여태까지 (득점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다. 이제야 한 골이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안도했다. 그러면서도 "더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다 넣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더 큰 것 같다"고 밝혔다.

승부차기에서 선방을 펼친 뒤 세리머니하는 조현우. 연합뉴스

승부차기에서 선방을 펼친 뒤 세리머니하는 조현우. 연합뉴스

조현우도 승부차기에서 상대 키커 2명의 슈팅을 막아내는 맹활약을 펼쳤다. 승부차기에서 양 팀 1, 2번째 키커가 나란히 득점한 가운데 사우디의 세 번째 키커가 왼쪽 골대 구석으로 찬 공을 조현우가 몸을 던져 막아냈다. 그의 주 무기인 선방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조현우는 사우디의 네 번째 키커의 슈팅도 다이빙해 막아내며 팀 승리를 확정했다. 조현우는 사우디가 주도권을 쥐고 공격을 몰아친 전반전에도 수 차례 수퍼세이브를 선보이며 한국을 실점 위기에서 구했다. 경기 최우수선수(MOM)까지 차지한 조현우는 그동안 마음 고생도 훌훌 털어냈다.

조현우는 당초 클린스만호의 백업 골키퍼였다. 주전은 김승규(알샤밥)이었다. K리그 시즌 베스트11 골키퍼에 7년 연속 선정된 조현우의 선방 능력은 아시아 정상급이지만, 빌드업을 중시하는 클린스만 감독은 발밑이 더 좋은 김승규를 중용했다. 조별리그 1라운드 후 김승규가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돼 중도 하차하면서 조현우가 선발로 나섰다.

팬들은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상대로 숱한 선방을 펼친 '빛현우'를 떠올리며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조별리그 2차전에서 2골, 3차전에서 3골 등 총 5골을 내줬다. '2번 골키퍼인 이유가 있었네' '골키퍼 때문에 대표팀이 부진했다' 등의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조현우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철저히 훈련하며 이를 갈았다.

조현우는 경기 중에도 여러 차례 사우디의 슈팅을 막아냈다. 뉴스1

조현우는 경기 중에도 여러 차례 사우디의 슈팅을 막아냈다. 뉴스1

조현우는 "승부차기를 많이 연습해 막을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안드레아스 쾨프케 골키퍼 코치님께서 '너의 판단이 다 옳다'고 믿음을 주셨다. 잘 판단해서 세이브가 나왔다"고 선방쇼의 비결을 밝혔다. 앞선 경기에서 많은 실점으로 인해 악플에 시달린 것에 대해선 "골키퍼는 경기에 나간다면 당연히 골을 먹어서는 안 된다"면서 "개인적으로나 팀으로도 지난 건 별로 개의치 않는다"고 밝혔다.

한국의 8강 상대는 호주다. 경기는 다음 달 3일 오전 12시30분에 치러진다. 문제는 휴식일이다. 호주는 지난 28일 오후 8시30분 열린 16강전에서 인도네시아를 4-0으로 완파했다. 경기 시간을 2시간이라고 치면 호주는 8강까지 122시간의 여유가 있다. 반면 120분 연장 혈투에 승부차기까지 치르느나 31일 오전 4시에 16강전을 마친 클린스만호는 회복하는 데 68시간30분 정도만 확보했다. 짧은 시간 내 얼마나 몸 상태를 회복하느냐가 호주전 승패를 가르는 주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현우는 "남은 시간 잘 회복하고 잘 준비해야 한다. 축구는 멘털이 중요한 스포츠다. 오늘 승리는 잊고 다음 경기 준비 잘 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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