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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성민 정치의 재구성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이대로 가면 나홀로민주당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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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동연 경기지사가 지난 25일 도지사 집무실에서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와 만나 4시간 넘게 한국 정치의 나아갈 방향, 현재의 양당 체제의 문제점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장진영 기자

김동연 경기지사가 지난 25일 도지사 집무실에서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와 만나 4시간 넘게 한국 정치의 나아갈 방향, 현재의 양당 체제의 문제점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장진영 기자

대한민국 정치는 표 얻는 기술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운 정치인들이 야기한 극심한 갈등은 국민을 좌절케 하고 나라를 퇴행시키고 있습니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치의 재구성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정치인들을 만나 그들의 진단과 해법을 들었습니다.

김동연 4시간 격정 인터뷰 ② #세계는 국제 정세 치열하게 고민 #우린 국익 무시한 디올백 정쟁만 #상대 실수만 기다리는 민주당 #자기 아닌 국민 밥그릇 챙기는 #'친기업 진보주의'로 거듭나야 #윤 정부도 문 정부 지우기 집착 #스스로 정책 신뢰 훼손 말아야

이번 인물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동연 경기지사입니다. 지난 25일 경기도청 도지사 집무실에서 4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 김 지사는 '정치의 재구성'을 묻는 질문에 "양극화 등 우리 사회가 처한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 정치개혁"이라며 "여야 모두 공익과 국민 대신 사익과 자기 권력 유지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인터뷰 주요 내용을 ▶공익 개념이 사라진 한국 공직사회 진단 ▶어설픈 진보·보수가 판쳐온 양당 정치에 대한 비판으로 나눠 소개합니다.

안혜리 논설위원

(박성민) 다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전 지금 민주당이 보여주는 것처럼 다수당의 비토크라시로 무장한 제왕적 당대표가 문제라고 봅니다. 대통령은 대법원장도 자기 마음대로 임명을 못 하는데, 정당에선 공천 하나 받자고 다들 비루하게 대표한테 줄 서잖아요.

(김동연) 인사권이 전부는 아니죠. 제법 큰 알파가 있죠. 가령 예산 심의권이 국회에 있다지만 정부 예산안이 국회에서 수정되는 비율은 미미합니다. 정책적 부분도 대통령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상당하죠. 제왕적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대통령이 여전히 매우 강력한 건 틀림없죠. 그리고 간접적으로 대통령이 소속된 당 공천에 끼치는 영향도 대단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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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최근 다보스 포럼에서 세계 각국 지도자들과 만나셨죠. 한국 지도자들과 뭐가 다르던가요.

(김) 네. 이번 다보스 주제가 네 가지였어요. 국제 정치, 경제, 기술 진보, 기후 변화. 특히 경제 부문은 세계 경제지도자 비공식회의에 한국에선 유일하게 초대받아 갔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모더레이터를 하고, 각국 재무장관급 이상이 20여 명, 중앙은행 총재가 10여 명, 그리고 국제기구 수장들과 다국적 기업들 이렇게 5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이 회의 내용은 물론이고, 나흘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서 인사이트 있는 대화를 나눠서 좋았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어요. 세계는 이렇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뭐 하는 건지 싶어서요. 정치가 경제를 흔드는 폴리코노미 현상 속에서 우리는 국제정치 흐름에 뒤떨어져 있고, 경제는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인식조차 못 하니 제대로 대처를 못 하고, 기술 진보나 기후변화는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어요.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을 만났는데 '한국은 여기서 뒤처지면 다시 못 따라온다'고 하더라고요. 기후변화와 관련한 맥락이었는데 기술 진보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미·중 하듯이 지금은 국가 주도의 산업 정책이 부활하고 있잖아요. 언론 헤드라인만 봐도 그 나라 수준을 알 수 있다는데, 이 엄중한 시절에 우리는 (영부인이 수수한) 디올백 얘기나 하고 있죠.
 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 16일 다보스포럼에서 독일 머크 그룹 카이 베크만 일렉트로닉스 회장(CEO)과 만나 투자 요청 대화를 나누고 있다. [경기도 제공]

동연 경기도지사가 지난 16일 다보스포럼에서 독일 머크 그룹 카이 베크만 일렉트로닉스 회장(CEO)과 만나 투자 요청 대화를 나누고 있다. [경기도 제공]

윤석열 정부가 국가를 운영할 역량이 있는지 회의적이에요. 대한민국을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비전이 보이지 않아요. 박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어요. 설령 비전이 있다 해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일머리가 있는지도 회의적이고요. 게다가 공익에 헌신하는 마음이나 국민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진정성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아요.
지난 대선 때도 얘기했지만, 대선 후보들이 흙탕물 튀기는 네거티브 캠페인은 많이 했지만 대한민국의 미래, 경제와 국제 문제를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쇼트트랙을 예로 들자면 직선 상에선 추월이 어려워요. 코너링할 때 추월 기회가 생기죠. 세계 모든 나라가 지금 코너링을 돌고 있는데 지금 우리 정부는 관심이 없어요.

(박) 윤석열 정부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봅니까.

(김) 사실 여야가 다 문제인데요. 윤석열 정부는 지금 'anything but 문'(문 정부 지우기), 민주당은 'anything but 윤'(윤석열 반대)이잖아요. 이 둘 모두에 상당히 비판적입니다. 어떤 정책을 바꾸려면 그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이익, 그리고 국민과의 소통을 통한 지지가 우선 확보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냥 정책이 좀 잘못됐다는 정도로 이미 시행하고 있는 걸 바꾸면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요.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요.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가령 일회용 컵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었거든요. 정부 정책을 믿고 준비해온 관련 사업자가 폐업하는 등 여러 문제가 있지만 가장 심각한 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 훼손이에요. 교육정책도 마찬가지고요.  
문재인 정부 때 당시 야당인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 하도 경제 위기를 떠드니까 한 민주당 의원이 '지난 정부 정책 탓 아니냐'면서 저더러 전 정부의 잘못된 정책 예시를 달라는 거에요. 그래서 '경제는 흐름이고, 지금 잘못된 건 다 내 책임이지 지난 정부 탓할 것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오늘(인터뷰한 1월 25일) GTX-C 노선 기공식에서 윤 대통령이 '내가 직접 신경 써서 했다'더라고요. 2011년 국가철도계획망에 들어갔고, 2018년 제가 부총리 시절 예비타당성(예타) 통과가 된 것인데, 이런 식은 너무 유치하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5일 경기도 의정부시청에서 열린 GTX-C 착공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5일 경기도 의정부시청에서 열린 GTX-C 착공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박) 민주당은 더 나은 삶을 원하는 서민들의 욕망을 탐욕이라고 비난하면서, 자기들은 '내가 강남 살아봐서 아는데, 애들 특목고 보내봐서 아는데 너희는 그럴 필요 없다'고 합니다. 이런 위선이 어디 있습니까. 주류가 된 지금도 피해의식이 망상 수준으로 심합니다.

(김)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진보가 정권을 잡았을 때 범했던 우가 바로 이런 거였어요. 욕망 아니라 탐욕이면 어떻습니까. 인간의 탐욕을 무시하면 경제가 발전할 수 없어요. 자유로운 경제활동으로 돈 버는 걸 죄악시하는 건 잘못된 거예요. 지난해 당선 후 경기도에 와보니 다주택자 승진을 금지했더라고요. 취임 후 상당히 완화했습니다. 공직자가 과도한 투기를 했다면 모를까 집 두세 채 있는 게 죄는 아니지 않습니까. 시장을 부인하는 진보는 엉터리 진보에요.

(박) 지난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복지·민주·평화 세 단어로 민주당의 정체성을 정리한 바 있습니다. 이제는 신(新)노선으로 이동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김) 맞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민주당에 민주 없고 국민의힘에 국민 없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웃음) 지금의 민주당으로는 우리나라가 처한 여러 어려운 도전 과제를 해결하기도, 국민 지지를 받기도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 도전 과제를 해결하고 국민 지지를 받으려면 새로운 민주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시장을 존중하면서 시장의 불공정과 불형평을 해결하는 정당, 이른바 '친기업 진보주의'를 표방한 정당으로요. 시장과 시장경제를 이해하고 새로운 방향을 정립해서 국가와 시장·기업이 함께 가는 새 좌표를 제시하는 게 민주당의 새로운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당이 경제에 있어 더 유능하다, 시장을 이해하고 있다, 기업 친화적이라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앞서 말했듯 시장을 무시하는 진보는 진보가 아닙니다.

(박) 김 지사는 동질적 인물이 모인 민주당에서 매우 이질적 존재인데, 신노선으로 당을 바꿀 수 있을까요. 민주당의 김동연이 아니라 김동연의 민주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김) 부총리 그만둘 즈음 김부겸·김영춘 등 물밑에서 제 편을 들었던 의원 겸직 장관 대여섯 분한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당신들은 진보 가치를 추구한다면서 거꾸로 진보의 가치를 해치고 있다. 그 가치가 뭔지 모르거나, 어설프게 알지는 모르지만 실천에 옮길 일머리가 없거나, 혹은 둘 다 이거나. 비단 민주당뿐 아니라 국민의힘에서도 경제민주화가 강령에 들어있습니다. 글로 쓰여 있으면 뭐합니까.
또 도지사 당선 후인 지난해 6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가장 덜 민주당 사람 같아서 당선됐다는데 난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부총리님이 가장 민주당 가치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문 정부 말기에 총리 제안을 받았을 때도 비슷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어요. 남은 1년여를 정책 뒤집으면서 민주당과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어서 대통령님이 굉장히 불편할 거라고 했더니, '아무도 그렇게 안 하는데 그때 담대하게 해주셔서 고맙다'라고요.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전 전혀 이질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문 정부 핵심인사였던 윤석열·최재형은 상대 당인 국민의힘에 갔지만 저는 아주대 총장 시절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의 비대위원장 제안을 거절하면서 '그 당은 내 가치와 안 맞는다'고 했어요. 새로운 민주당이 되려면 진보의 가치가 뭔지 정확히 알고 그걸 실천에 옮길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여전히 많은 민주당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성장과 분배가 양립하기 어렵다는 말은 다 옛날얘기입니다. 각 나라의 경제·사회 여건에 맞춰 이 둘의 예술적 조화가 필요한데, 이게 실력이죠. 시간이 걸릴 수는 있지만 반드시 되리라고 봐요. 저도 노력할 거고요. 결국 시간문제입니다.
김동연 지사는 지난해 6월 당선인 시절 양산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았다. 중앙포토.

김동연 지사는 지난해 6월 당선인 시절 양산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를 찾았다. 중앙포토.

(박) 오세훈 서울시장과 똑같은 얘기를 하시네요. 오 시장은 진보 전유물이던 약자 챙기기를 보수가 더 잘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데, 김 지사는 보수의 강점인 경제를 진보가 더 잘한다는 걸 보여주면 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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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오 시장 뜻대로 잘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절대 잘하지 못할 거에요. 소고깃국 끓인다면서 고기 넣고 국물을 푹 우려내는 게 아니라 소가 한번 밟고 지나간 뜨거운 물 정도가 될 가능성이 커요. 오 시장을 콕 집어 말하는 건 아니지만 보수가 진짜 양극화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우선 보수의 가치부터 가슴으로 느끼고 거기서 성공한 후 해야 할 거 같아요. 근데 일머리가 없어요.
진보도 똑같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결국 국가와 사회를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만들 것이냐, 이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민주당이나 진보 진영이 양극화나 취약계층에 대한 얘기만 떠든다면 국가적 지속가능성이 없을뿐더러 국민적 지지를 받기도 어렵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을 거부해요. 국제정치적으로 볼 때 이 둘의 경계가 사라지는 트렌드이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경계선이 정부의 역할이었어요. 그런데 팬데믹 이후 이런 경계는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예요.

(박) 정치 불신이 강한 듯한데 왜 정치를 합니까.

(김) 양극화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 정치개혁입니다. 정치판을 바꾸지 않고서는 애덤 스미스(고전적 자본주의)나 존 케인스(수정 자본주의)가 와도 아무 소용 없습니다. 정치와 행정을 편의상 나눌 수는 있겠지만, 부속품에 머무는 게 아니라 스스로 고도의 정책적 결정을 하는 관료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결정은 정치에요. 비전을 갖는 건 정치인의 역할, 행정관료를 통해 실천을 끌어내는 것도 정치영역이고요.  
제가 정치를 시작한 가장 큰 이유가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였어요. 부총리라는 최고 정책 결정자로 있으면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만들어도 문제 해결을 못 하고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했던 이유가 결국 정치였더라고요. 
정치판을 바꾸지 않고는 대한민국이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고 봐요. 정치에 뛰어든 지 2년밖에 안 됐지만 역설적으로 정치판을 깨기 위해 정치를 했고요. 대선 후보 때나 경기도지사 후보 때나 여의도 경험 없고 정치를 잘 모른다는 게 제 경쟁력이라고 얘기했어요. 저는 제 식으로 정치하고 싶어요. 구(舊)정치의 행태를 따라 하고 싶지 않고요. 그렇게 할 바엔 차라리 정치를 안 할 거예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9일 '더불어민주당' 새 로고를 배경으로 최고위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동연 지사는 민주당이 지금처럼하면 '나홀로민주당'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전민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9일 '더불어민주당' 새 로고를 배경으로 최고위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동연 지사는 민주당이 지금처럼하면 '나홀로민주당'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전민규 기자

(박) 총선을 앞둔 민주당에 조언한다면.

(김) 민주당이 지금처럼 감나무 아래 입 벌리고 서서 상대편 실수만 기다리는 식으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렇게 되면 결국 더불어민주당이 아니라 나홀로민주당이 될 수밖에 없죠. 정책과 혁신으로 경쟁하는 정당으로 환골탈태해서, 자기 밥그릇이 아니라 국민 밥그릇 챙기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박)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가 뭡니까.

(김) 증오의 정치, 보복의 정치 아닐까요. 『레미제라블』이 한 2500페이지쯤 되는데, 그중 3~4페이지밖에 안 되는 '장발장의 복수'라는 대목에서 전율을 느꼈어요. 장발장을 평생 괴롭힌 자베르 경감이 혁명군에 스파이로 잠입했다가 잡히는데, 장발장이 원수 같은 자베르를 그냥 풀어주잖아요. 최고의 복수는 이런 거죠. 지금 정부에 기대하기는 틀렸지만요. 이쪽저쪽 다 빨리 복수심을 털어야 해요. 누가 되든 다음 정부는 상대를 끌어안았으면 합니다. 통합은 힘센 사람이 먼저 내려놔야 하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