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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성민 정치의 재구성

오세훈 "강남 빼고 전 국민이 박탈감, 이걸 해결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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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오세훈 4시간 격정 인터뷰 ①
국민 절반이 세상 뒤집기 원해
여당 수도권 열세는 양극화 탓
진보 아닌 보수가 약자 품어야
소멸 단계 운동권 뭘 청산하나
생계형 정치인 양산이 더 걱정

대한민국 정치는 표 얻는 기술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운 정치인들이 야기한 극심한 갈등은 국민을 좌절케 하고 나라를 퇴행시키고 있습니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치의 재구성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정치인들을 만나 그들의 진단과 해법을 들었습니다.

첫 번째 인물은 오세훈 서울시장입니다. 지난해 12월 16일 한남동 서울시장 관저에서 4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 오 시장은 '정치의 재구성'을 묻는 질문에 역설적으로 "정치를 바꿀 생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정치란 나라 번영을 이끌고 약자를 챙기는 것, 그게 전부라는 겁니다. 또 정치는 이기심을 다루는 기술이므로 이기심이 꽃 필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보수라도 했습니다. 그는 "국민 절반이 세상 뒤집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라면 국민 통합이나 희망찬 미래는 없다"며 "좌파는 말뿐이었고, 보수 우파가 계층 상승 사다리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터뷰 주요 내용을 ▶보수가 해야 할 역할과 ▶서울시와 국가가 번영을 위해 취해야 할 지향점, 크게 둘로 나눠 소개합니다.
강찬호·안혜리 논설위원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12월 16일 관저인 한남동 서울파트너스 하우스에서 박성민 정치컨설턴트와 만나 정치를 하는 이유 등을 밝혔다. 김현동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해 12월 16일 관저인 한남동 서울파트너스 하우스에서 박성민 정치컨설턴트와 만나 정치를 하는 이유 등을 밝혔다. 김현동 기자

(박성민) 4월 총선 얘기를 해보죠. 원래 한국에서 '민'자 들어간 게 비주류였죠. 1990년 3당 합당 후 30년간은 보수가 주류고 비주류인 민주당은 단일화를 해야 보수와 겨뤄볼 수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30년 만에 민주당 대 반(反)민주당 시대가 돼서, 이젠 보수가 과거 민주당이 하던 단일화를 해야 선거를 치를 수 있을 만큼 정치 지형이 민주당 주류 시대가 됐죠. 의석도 그렇게 민주당이 지배하고 있고요. 민주당이 약진해온 현장을 쭉 보셨을 겁니다. 보수 정당 국민의힘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일방적으로 밀리는 데도 분명히 원인이 있을 겁니다.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오세훈) 서울·수도권에서 보수가 밀리는 건 객관적 사실입니다.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면 해법도 나오죠. 원인은 양극화예요. 서울·수도권 2500만 명인데, 이 사람들 생각에 부자는 강남밖에 없어요. 강남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강남에 대한 박탈감이 있어요. 그 박탈감을 민주당이 해결할 것처럼 얘기했고 먹혀왔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선전 선동이고 거짓말이에요. 저 사람들 그거 해결할 이유 없어요. 그런데 이재명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정도의 득표율을 얻은 건, (적잖은 사람들이) '나는 죽을 때까지 저기까지 못 올라갈 거 같아'. 그거까지는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데 '내 새끼도 저기까지 못 갈 거 같아' 이건 못 참지. 세상이 바뀌기를 바라는 숫자가 이렇게 많은 거예요. 이재명 대표가 먹히는 건 사람들 보기에 정말 해줄 것 같아서예요. 사람이 좀 독하잖아요. 막 뜯어내고 막 걷어내는 이런 행정을 통해 보여준 이미지가 다 뒤집을 것 같은 거예요. '성격이 못됐어? 더 좋아. 그래야 뒤집지, 좌고우면하면 못 뒤집어. 그러니까 오히려 신뢰가 있어. 도덕적으로 바닥이라도 좋아. ' 이 세상이 저주스러운 사람부터 판이 좀 바뀌길 바라는 사람들이 이재명을 지지하는 건 그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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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민주당의 자극적인 버전이죠. 민주당이 따뜻한 정책을 펴서 어려운 사람을 위해줄 것 같은 프레임을 만들었는데, 보수 정당은 부자 정당 이런 식의 프레임에 걸렸죠. 서울·수도권에서 강남, 혹은 상위 10~30% 이외의 좌절에 빠진 사람들 대부분한테 민주당이 그런 희망을 주는 데 성공한 거예요. 경상도·전라도 빼고 나머지 지역 전부 다 그 프레임에 걸려 있어요. 그럼 해법은 뭐예요? 보수정당이 더 잘할 것 같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거예요. 어느 순간 그걸 깨달았어요. 

(박) 김종인 비대위 때 내건 거고.

(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지식사회에 많아요. 현실로 보여준 우파 정치인은 내가 유일해요.

(박) 유승민 전 의원이 잠깐 시도했죠.

(오) 이걸 정책으로 실행한 적이 없죠. 정치권이든 지자체장이든 누가 있어요?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 사명감을 느낍니다. 우파 진영에서 나더러 '수박'이라는 식의 비난이 엄청났지만, 줄곧 약자와의 동행을 외쳤어요.
20대 대선 득표율 현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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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민주당이 어떤 정당인지 정리한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뿐입니다. 민주당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싸우는 정당,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정당, 서민을 위해서 싸우는 정당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웠죠. 노무현 이후 문재인까지 누구도 민주당이 어떤 정당인지 내놓은 게 없습니다.

(오) DJ가 말한 세 가지가 다 실패했죠. 결과적으로는 북핵 기정사실화했고, 서민을 위하는 정책 한다며 부동산값 올려놓고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인건비 올리고 그나마 있던 일자리 다 없앴고. 게다가 지금 저 당이 민주주의 정당입니까? 무상급식 주민투표 때 아예 투표하지 말자고 운동하는 게 민주주의 정당입니까? 민주주의를 내걸고 전체주의하고 있다고요. 세 가지 다 처참하게 실패했죠.

(박) 보수정당 국민의힘은 어떤 정당입니까?

(오) 보수는 물이에요. 물. 건강에 좋다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습관적으로 물 한잔하죠. 특별한 감흥은 없는, 그냥 일상이에요. 그게 보수에요. 진보는 섹시하게 자꾸 포장해요. 사이다야. 근데 자꾸 마시면 물 밖에 생각이 안 나요. 인생을 살아본 사람들은 저게 얼마나 거짓말인지, 맨날 설탕물만 먹고 살 수 없다는 걸 알죠. 하루에 세 끼 먹는 데 무슨 이유가 있나요. 그게 합리적이니까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발전하고 번영하고 강대국이 되는 거죠. 보수 우파의 본질은 어젠다 세팅이 있지 않아요, 현실에 있지.

(박) 자본주의는 더 좋은 데 살고 싶고, 우리 애 더 좋은 학교 보내고 싶은 욕망을 허용하는데 민주당은 보통 사람들의 욕망을 탐욕이라고 비판합니다. 게다가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너희는 강남 살 필요 없다'는 식의 위선이 깔렸죠. 그래서 실패했다고 봅니다. 욕망을 허용하지 않는 게 세계적으로 실패한 사회주의 방식인데 우리나라 민주당이 그대로 하고 있죠.

(오) 민주당뿐만 아니라 전 세계 좌파 정당은 다 비슷한 발상을 하죠. 정치가 방해만 안 해도 대한민국은 미래로 갈 수 있다고 얘기한 게 바로 그런 뜻이에요. 오래 해보니까 정치는 어려운 게 아니에요. 간단해요. 인간의 이기심을 다루는 기술이에요. 인간의 이기심이 꽃 피울 수 있게 해주는 게 보수고, 인간의 이기심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면서 부도덕한 것처럼 죄책감 느끼게 하는 게 사회주의적인 방식입니다. 인간 욕구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해서 번영의 단계까지 가는 제도를 만드는 게 이제 정치가 해야 할 일이에요. 여기서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인센티브 시스템이 작용하도록 하는 겁니다. 번영하는 나라와 번영하지 않는 나라의 차이는 인센티브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어요. 10년 전 서울시장 할 때 '경쟁이 경쟁력'이라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잘하는 사람한테 상주고 못하는 사람한테 벌이 따라가는 사회 만들자, 이런 얘기하는 사람이 보수주의자. 이게 잘못됐다고 하는 사람의 바탕은 사회주의자라고 보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주 찐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천착했던 게 번영입니다. 왜 어떤 나라는 계속 번영하고 어떤 나라는 주저앉는가. 평범한 사람들의 조그마한 도전과 모험이 성취를 이루도록, 도전과 모험이 자연스럽게 벌어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정치의 모든 것이라고 봅니다. 인센티브 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가 되면 번영의 길로 갑니다. 인센티브 시스템을 작동할 수 있게 하는 철학을 가진 정치인을 리더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그 사회가 계속 번영을 보장받는 길인지의 차이를 만든다고 봅니다.

(박) 지난 민주당 정부는 자유주의 없는 민주화를 떠들고, 지금 보수 정당은 민주주의 없는 자유를 얘기합니다. 개혁적 자유주의를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요.

(오) 자유주의·민주주의를 떠나 지금 정치는 표를 얻기 위한 기술만 남아 있습니다. 가슴으로 정치하는 사람을 점점 찾아보기가 힘들어지는, 정치 상실의 시대죠. 정치가 매우 공허해졌어요. 양쪽 다 집토끼 잡아놓고 선거 때 중도 표 어떻게 좀 더 얻어서 이기느냐 이 생각만 해요. 평소에 집토끼를 확실히 잡지 않으면 당내 경선에서 못 이기니까 거기에 어필하는 정치를 하죠. 뜻 있는 국민은 좌절을 느끼는데, 조용히 일하고 성과 내는 정치인도 있다는 걸 보여드리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어느 순간 이런 지도자 유형도 있다는 게 굉장한 위안을 드릴 거라고 생각을 해요.
지난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나경원 전 의원(오른쪽)이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유세에 함께했다. [중앙포토]

지난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나경원 전 의원(오른쪽)이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유세에 함께했다. [중앙포토]

(박) 나경원 전 의원과 이념적 차이가 크지 않은데 왜 나 의원은 더 보수적으로, 오세훈 시장은 더 개혁적으로 비칠까요.

(오) 정확한 답은 아니지만 이렇게 얘기해 볼게요. 처음에는 정치를 바꾸는 게 정치를 시작한 동기였어요. 근데 지금은 정치를 바꾸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어요. 그럼 뭐하려고 정치하냐, 어려운 사람들 도우려고 정치한다고 해요. 정치인이나 정당 존재의 목적이 양극화 해소라고 봐요.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계층 이동 사다리를 복원해내는 게 내가 속한 정당의 미션이 됐으면 좋겠어요. 나 개인의 미션이기도 하고 당의 미션이어야 하고요. 우리나라의 미래도 여기 달려 있어요. 국민 절반 이상이 이놈의 세상 뒤집어졌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라면 국민 통합이나 화해·화합을 전제로 한 나라의 희망찬 미래는 없는 거니까요. 국민 절반이 현 체제, 현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찬, 거의 증오에 가까운 마음인데 나라가 발전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누구를 위한 발전입니까?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이 뭐예요? 불행하고 상대적 박탈감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안을 드리고, 실제로 계층 이동 계층 상승을 할 수 있는 사다리를 놔주는 거예요.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강점을 가지고 있는데, 문제는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일들만 한다는 거죠.

(박) 국회 다수당이 절대적 의석을 무기 삼아 모든 걸 비토하는 비토크라시 정국을 우리가 미처 고민하지 못했죠. 제왕적 대통령제는 없어졌는데 제왕적 당 대표는 그대로 남아있다고 봅니다. 해법이 뭘까요.

(오) 다른 거 다 필요 없고요. 의회는 단순 과반수면 좋겠어요. 여당이 소수면 정부가 일을 못 해요. 어떻게 이상적인 정치를 만들 것이냐는 내 관심사가 아니에요. 어떻게 일 할 수 있나가 관심이죠. 서울시에 와보니까 의회가 소수라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예산이 뒷받침 안 돼서. 지금은 7대 3으로 우리가 많아요. 이젠 일 못 하면 100% 내 책임이잖아요.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굉장히 신중해져요. 검경 수사권? 불편하겠지만 상관없어요. 그런데 의회만큼은 단순 과반수가 돼야 합니다. 국민께 부탁드리고 싶은 건 어느 대통령을 뽑으면 그 대통령이 일할 수 있게 해주고 비판해야 돼요. 난 진보 좌파의 효용을 인정해요. 진보 좌파 없이는 보수가 부패할 가능성도 높고 기득권화돼요. 바람직하기로는 보수와 진보가 6.5대 3. 안 되면 51대 49도 좋아. 의회 의석만큼은 총선 때 일단 일할 수 있게 해주고 심판하셔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 이재명 당 대표의 맹목적 지지자들인 이른바 '개딸'이 보내온 화환이 놓여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 이재명 당 대표의 맹목적 지지자들인 이른바 '개딸'이 보내온 화환이 놓여있다. 뉴스1

(박) 586 운동권 청산은 올드라이트와 뉴라이트로는 불가능하고, 이들과 전혀 다른 이념적이지 않은 세력이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오) 그걸 청산할 필요가 있나요. 지금도 이미 너무 낡아서 생명을 다해 가는데 뭘 청산을 해요. 결국 선거 한두 번 더 치르면서 민심이 청산해 줄 텐데요. 586 적폐의 문제보다 오히려 주류를 이루고 있는 국회의원 중에 정치 자영업자, 정치 샐러리맨이 너무 많아진 게 더 문제에요. 생계형이라 정치 공학에 휘둘리고 극단적인 지지 세력에 휘둘리면서 벌어지는 이상 현상이요. 운동권 출신 이제 몇 명 남지도 않았어요. 크게 영향력도 없고 겨우 한목숨 부지하려고 아등바등 지역구나 쇼핑하는 단계인데. 총선을 맞이해서, 양당에서 개혁 공천한다며 또다시 정치 샐러리맨을 양산하는 쪽으로 갈까 그게 더 걱정이에요. 지금 충원 시스템에서는 바람직한 정치를 고민하고 꿈꾸는 사람들이 정치권에 들어오기가 힘들어요. 양당이 다 인재영입이라는 낡은 프레임에 빠져 있어요. 검증 과정에 따라 구의원, 시의원, 국회의원 레벨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누구에 의해 발탁되느냐에 따라 누구는 시·구 의원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국회의원 한단 말이에요. 선거 때마다 50%씩 물갈이하는 걸 개혁 경쟁으로 포장하는 것도 동의 못 합니다. 우리 당 초선 의원 중 4년 동안 나름대로 정치하면서 할 일 깨닫고 이제 이런 정치를 해야지, 하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꽤 될 텐데요. 옥석을 구분해내는 공천이 돼야지 일괄적으로 이번 초선은 다 형편없어, 이러면서 물갈이 대상으로 삼는다든가 무조건 일정 비율 바꾸는 게 국민한테 어필하는 선거 전략이 되는 건 경계해야 한다, 기껏 4년 동안 훈련해놓고 내쫓는 결과가 안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