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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민주당 또다시 ‘전 당원 투표’ 뒤에 숨으려 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하고 있다. 이 대표 오른쪽은 홍익표 원내대표, 왼쪽은 정청래 최고위원. 전민규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운데)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하고 있다. 이 대표 오른쪽은 홍익표 원내대표, 왼쪽은 정청래 최고위원. 전민규 기자

정청래 “전 당원 투표로 병립형 비례 결정” 제안  

“4년 전 위성정당 때처럼 또 개딸 힘 빌려” 반발도

더불어민주당에서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출 방식을 둘러싼 혼선이 정리되지 않자 해결의 열쇠로 ‘전 당원 투표’가 본격 거론되기 시작했다. 친명계인 정청래 최고위원은 그제 소속 의원 단체대화방에서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며 전 당원 투표에 부치자고 제안했다. 이와 맞물려 이재명 대표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 등에선 강성 팬덤층을 중심으로 “전 당원 투표에 동의하느냐”는 문자를 의원들에게 돌리는 인증 글이 잇따랐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어제 라디오 방송에서 지도부가 어느 정도 결정하는 게 우선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전 당원 투표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공개적으로 가능성을 열어놨다.

그동안 민주당은 병립형 회귀와 준연동형 유지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지도부가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재명 대표), “총선은 자선사업이 아니다”(정청래 최고위원)며 병립형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그러나 소속 의원 절반가량인 80명은 “병립형 퇴행은 윤석열 정부 심판 민심을 분열시키는 악수 중의 악수”라며 반발하고 있다. 당 안팎에선 더는 밀릴 수 없다고 판단한 지도부가 결국 입맛대로 하려고 강성 당원들을 동원하려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민주당이 4년 전 총선 때 준연동형을 밀어붙이면서 내걸었던 ‘사표 방지와 소수정당 존중’ 약속도 공염불로 전락할 처지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 당시 비례대표 위성정당 참여를 두고 격론이 붙자 전 당원 투표로 출구를 찾았고 74.1%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위성정당의 길을 열었다. 이어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2021년)에선 “귀책사유가 자신들에게 있으면 무공천한다”는 당헌을 전 당원 투표를 내세워 뒤집었다. 민주당 권리당원 245만여 명(2023년 6월 기준)의 절반에 가까운 47.2%는 이 대표가 대선후보로 부상한 2021년 이후 입당했다. 이 대표가 당 대표로 선출됐을 때 권리당원 득표율은 78.2%였다. 이들 대부분이 사실상 ‘이재명 팬덤’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지난해 말엔 권리당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당헌 개정안도 의결했다. 당내에선 “나치 정당”이라는 격앙된 반응까지 나왔다. 당심과 민심 간 큰 괴리가 우려되는 판국에 이번엔 병립형 회귀를 위해 전 당원 투표를 민주적 의사결정 절차인 양 동원하려는 모습이다. 책임회피성 알리바이 시도라는 쓴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총선(D-71)이 목전인데도 선거제를 매듭짓지 못한 여당 책임도 있지만, 입장조차 정하지 못한 제1야당의 존재 이유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유권자는 안중에 없이 총선 유불리 계산에만 몰두한 결과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제라도 꼼수를 포기하고 원칙과 명분을 세우지 못한다면 민심의 호된 심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