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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국가소멸론 나오는데 마냥 표류하는 저출산 대책 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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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저출산위 부위원장 1년 만에 다시 교체 검토

자문기구보다 더 강력한 ‘컨트롤타워’ 필요

대통령실이 지난해 1월 임명된 김영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을 교체할 예정이라고 한다. 후임으로는 주형환 전 산업부 장관이 유력하다고 한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현재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인 저출산 대책을 총괄하는 기구다. 대통령이 위원장이어서 부위원장이 실무를 책임지는 구조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5개월간 새 부위원장을 임명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2022년 10월 나경원 전 의원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나 전 의원이 국회 경험이 많아 적임자라고 발표했지만, 속내는 당 대표 선거에 나가고자 하는 나 전 의원을 주저앉히기 위해서라는 말이 돌았다. 나 전 의원은 대통령실과의 갈등 끝에 석 달 만에 사퇴했다. 그 후임이 교수 출신인 김영미 부위원장이다. 그런데 1년 만에 성과가 나지 않는다며 교체를 검토한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민간위원인 조영태 서울대 교수가 “현재 저출산 대책이 전 정부의 실패한 정책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사임했다. 상임위원인 홍석철 서울대 교수도 여당의 공약개발본부장으로 영입돼 위원회를 떠났다.

대통령이 보기에도 성과를 전혀 못 내고, 위원들조차도 리더십과 거버넌스의 한계를 지적하는 데는 근본적 이유가 있다. 위원회가 저출산 대책 컨트롤타워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자문기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예산 편성권도, 정책을 결정할 권한도 없다. 2017년 사무국을 만들었지만, 인원은 대부분 중앙부처나 지자체, 공공기관으로부터 파견받는다. 이들의 평균 근무기간은 14개월에 불과하다. 각 부처의 정책을 모아 정리·나열하는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처들은 평소 해 오던 정책을 저출산 대책이라고 포장해 보내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니 20년간 300조원 가까운 돈을 쓰고도 합계출산율은 2022년 0.78명, 지난해에는 그보다 더 떨어져 0.6명대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역주행이다.

새 부위원장으로 주형환 전 장관을 검토하는 것은 그의 강력한 추진력을 높이 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불도저 같은 돌파력이 있어도 현재와 같은 위상이라면 소용이 없다. 외신이 나서 ‘국가 소멸’을 걱정할 정도의 위기를 돌파하려면 자문기구가 아닌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다행히 여야가 동시에 총선 공약으로 인구 담당 부처를 만들겠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속히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

아울러 조영태 교수가 “당장 태어나는 아기 숫자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10년 뒤 아이를 충분히 낳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듯이, 이번 기회에 저출산 대책의 근본적인 방향성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