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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현곤 칼럼

닥치고 가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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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고현곤 기자 중앙일보 편집인
고현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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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권 신공항을 처음 꺼낸 건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이듬해 이명박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받았다가 2011년 백지화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다시 후보지 세 곳을 평가했다. 가덕도는 꼴찌였다. 파리공항공단 측은 김해신공항 818점, 밀양 665점, 가덕도 635점을 줬다. 장마리 슈발리에 수석연구원은 “가덕도는 국토 남쪽 끝에 있어 접근성이 떨어지고 건설비가 많이 든다. 공항 입지로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다시 군불을 땠다. 김해신공항을 흠집 내더니 부산시장 재·보궐 선거를 앞둔 2021년 느닷없이 가덕도로 바꿨다. 1등(김해)이 문제 있다며 2등(밀양)을 건너뛰고, 3등(가덕도)으로 직행했다. 기이한 결정이었다.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는 특별법을 만들어 대못을 박았다. 부산 표를 구걸하는 야당(국민의힘)이 합세했다. 일사천리의 진풍경이었다. 예타 면제는 두고두고 나쁜 선례로 남았다. 지난주 통과한 ‘달빛철도특별법’도 가덕도의 아류다.

부산 표 구걸…여야 합작 ‘정치공항’
활주로 1개 13조, 김해공항의 세 배
무리한 공기 단축, 부등침하 우려
엑스포 없는데 조기 개항해야 하나

지난해 3월 윤석열 정부는 2030 부산엑스포전에 개항하겠다며 공사 기간을 5년6개월이나 앞당겼다. 마음만 먹으면 뚝딱 줄일 수 있는 건지 의아했지만,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 당초 안은 바다에 짓는 것이었는데, 바다와 육지에 걸쳐 짓는 공법으로 바꿨다. 매립 규모가 줄면 공기를 단축할 수 있다. 꼴찌인 가덕도에, 공법도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 누더기가 됐다. 활주로 달랑 1개의 여야 합작 ‘정치공항’이 탄생하는 것이다.

가장 큰 논란은 안전 문제다. 특별법 처리 당시 국토부는 “진해 비행장과 공역이 중첩되고, 김해공항 관제 업무가 복잡해져 안전사고 위험이 증가한다. 수심이 30m에 이르고 태풍이 지나는 길목”이라고 지적했다. 활주로 1개로는 화재 등 비상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 부등침하(땅이 불균등하게 가라앉는 현상) 우려도 있다. 2022년 사전타당성조사 연구진은 “바다~육지 공항은 지반의 지지력 차이가 커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바다 쪽 활주로가 육지 쪽 활주로보다 많이 가라앉을 수 있다는 의미다.

난공사로 비용도 많이 든다. 김해공항 확장에 4조7000억원이 필요하다. 가덕도는 세 배인 13조5000억원. 활주로를 1개 추가하면 7조원이 더 든다. 도로와 공항철도, 해상여객터미널 건설비는 별도다. 외항에 짓는 만큼 여러 변수가 생길 수 있다. 실제 사업비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가덕도의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은 0.58이다. 공항을 지어서 얻는 편익이 비용의 절반에 그친다. 경제성으로 따지면 지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원안대로 김해공항을 확장하고, 남는 세금은 어려운 이웃 돕는 데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이용객은 불편하다. 부산에서 가덕도는 김해공항보다 멀다. 활주로 1개로는 국내선이 들어갈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국제선은 가덕도, 국내선은 김해공항으로 이원화된다. 항공사는 비용이 증가한다. 공항이 불편하고 비싸면 흥행이 안 된다. 텅 빈 활주로에 고추를 말리는 전남 무안공항처럼. 이미 웬만한 수요는 인천공항 2여객터미널과 서울~부산 KTX가 흡수했다. 자칫 부산 시민은 들러리 서고, 가덕도 인근 땅 주인과 관련 업자만 배 불리는 구조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사정을 잘 알면서도 침묵한다. 그러는 사이 가덕도 시계는 돌아간다. 지난해 말 기본계획을 고시했고, 올해 5000억원 넘는 예산을 편성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담당 공무원이 직무유기로 검찰에 불려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보수·진보가 모처럼 한통속이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인들은 표만 생각한다. 문제점에 눈 감고, 지역에 장밋빛 환상을 심었다. 문 전 대통령은 특히 노골적이었다. 2021년 부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가덕도 앞바다에서 “신공항 예정지를 눈으로 보니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별반 차이가 없다. 지난해 12월 엑스포 불발 1주일 만에 부산을 찾았다. “지역 현안 사업은 그대로 더 완벽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개항을 무리해 가며 5년 이상 앞당긴 건 엑스포 때문이었다. 유치에 실패하니 이번엔 민심을 달래기 위해 조기 개항을 밀어붙인다. 어처구니없는 악순환이다. 촉박한 엑스포 시간표가 없어진 만큼 안전과 비용을 따져 다시 검토하는 게 맞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한술 더 떴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정부가 가덕도를 국내 공항 정도로 대폭 축소해서 땜질한다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스타일의 저열한 비방이다.

젊은 정치인도 오십보백보다. 2021년 7월 당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가덕도 특별법은 우리 당이 앞장서 입법했다”고 자랑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최근 부산을 찾아 “조기 개항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기존 정치와 선을 긋고, 새 바람을 불어넣겠다면서 똑같은 구태 정치를 한다. 다들 자기 장사와 표 계산에 바쁘다. 세금을 자기 돈처럼 아껴 쓰고, 자신보다 나라의 앞날을 더 걱정하는 지도자가 안 보인다. 좌우, 신구를 막론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