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영민의 생각의 공화국

정치인에게 무협 만화 ‘앵무살수’를 권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무협을 통해 정치를 생각한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정치인들은 홍보 수단으로 책을 활용한다. 다독가로 알려진 김대중 전 대통령 이래, 대통령들은 자신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 홍보하기도 하고 추천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경리의 『토지』를, 문재인 전 대통령은 『명견만리』를, 이명박 전 대통령은 리처드 탈러의 『넛지』를 추천한 적이 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탄핵소추로 인해 직무가 정지되었을 때,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었다고 알려졌다.

이런 책들은 이미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였다. 따라서 추천자의 개인적 성향이 극명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게다가 대통령 주변에는 비서들이 있어서, 그들 의견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연설 비서관이 대통령의 연설문 초안을 쓰듯이, 비서관들이 추천 도서 리스트 초안을 만들 수도 있다. “각하, 이 책을 읽으시는 게, 혹은 읽으셨다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거물급 정치인들은 너무 바빠서 책의 요약본만 읽는 경우도 있다.

실제 정치는 무협과 다르지만
한국 정치의 이해를 위해서는
권력·삶·죽음의 드라마가 있는
무협의 세계 살펴봄이 어떤가

정치인들이 읽는 책을 보니

정치는 흔히 무협에 비유된다. 한국 정치에도 무협적 요소가 많았다. ‘앵무살수’는 2020년 2월2일~2024년 1월28일 네이버 웹툰에 연재된 무협 만화다. 감각적 그림과 대사로 매니아 층이 형성됐다. [사진 네이버웹툰]

정치는 흔히 무협에 비유된다. 한국 정치에도 무협적 요소가 많았다. ‘앵무살수’는 2020년 2월2일~2024년 1월28일 네이버 웹툰에 연재된 무협 만화다. 감각적 그림과 대사로 매니아 층이 형성됐다. [사진 네이버웹툰]

안철수 의원이 윌리엄 깁슨의 소설을 거론한 것, 그리고 한동훈 위원장이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한 것을 기억한다. 안철수 의원이 윌리엄 깁슨을 인용했을 때, “안철수 인용 윌리엄 깁슨은 누구”라는 신문 기사가 나오기도 했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일수록 개인 취향을 더 반영한다. 그 책을 자신이 고르지 않고 비서가 추천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을 비서로 두는 사람이라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새로운 인물일지 모른다. 혹시 이 책을 거론한 정치인은 기성 정치인과 다른 새로운 감각의 소유자가 아닐까. 실제로 안철수 의원과 한동훈 위원장 모두 기성 정치와 결별을 주장했다. 그 결과가 무엇이든.

윌리엄 깁슨과 오에 겐자부로가 나오는 마당에, 누가 무협지를 읽었다고 하면 부끄러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어느 공인도 삼국지 읽었다고 홍보한 기억이 없다. 그 유명한 『삼국지』와 『수호지』는 물론, 어느 정치인도 김용의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추천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김용의 팬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무협소설 인용하기 즐겼던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과는 크게 대조된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흔히 ‘삼국지 정치’라고 폄하되지 않는가. 이른바 ‘삼국지 정치’란 협잡, 음모, 암투, 합종연횡, 폭력, 술수, 간계 등이 넘치는 정치다. 검사 출신 정치인을 두고 “천하제일검”이라는 무협 용어가 사용되기도 하고, “용산대형”이라는 무협 형식을 띤 시사풍자만화가 있기도 하다. 거슬러 올라가면 학생운동을 무협에 빗댄 김영하 작가의 『무림학생운동』도 있고, 시인 겸 영화감독 유하의 『무림일기』라는 풍자시도 있다.

무협지를 방불케 하는 정치

현대 한국 정치에는 실제로 무협적 요소가 많았다. 20세기에는 조직폭력배가 정당 행사에 난입해서 난장판을 만들기도 했고, 폭력 전과를 가진 사람이 정치인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정치적 맞수를 납치해 익사시키려 한 적도 있고, 유력 정치인을 암살하기도 했고, 다시 그 암살범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기도 했다. 21세기에도 정치인 테러는 계속된다. 정치인들 사이에서 ‘삼국지 정치’ 그만하자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그간 ‘삼국지 정치’를 해 온 반증이다. 이러니 한국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협지를 읽어야 하지 않을까.

잘만 읽는다는 보장만 있으면, 무협지가 무슨 해가 되랴. 정치인들에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몸젠의 『로마사』 같은 거질의 책을 권해봤자 바쁜 그들이 읽겠는가. 그런 책들은 출판계를 돕는 차원에서 몇십 질씩 사서 주변에 나누어 주기 바란다. 바쁜 정치인 본인에게는 현실적으로 무협지, 아니 그보다 더 읽기 쉬운 무협만화를 권한다. 아무리 권력이 사람을 춤추게 한다지만,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외로운 것이 인생 아니던가. 정계 활동 와중에 심신을 달래기 위해 무협만화 보기를 권한다.

특히 2024년은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해. 그뿐 아니라 무협만화의 새 역사를 쓴 웹툰 ‘앵무살수’가 완성된 해이기도 하다. 무협만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 대다수는 무협만화의 최고봉으로 문정후의 『용비불패』나 『고수』, 혹은 전극진과 양재현의 『열혈강호』를 꼽는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앵무살수’가 모든 한국무협만화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앵무살수’를 권한다. 읽으면 끝까지 읽게 될 것이요, 끝까지 읽고 나면 다시 읽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 ‘앵무살수’를 읽기 전 인간에서 읽고 난 후 인간으로 변신해 있을 것이다.

무협만화에 담긴 권력과 탐욕

‘앵무살수’의 뭐가 그토록 훌륭하냐고? 일단 무공을 구사할 때 납득할 만한 묘사를 보여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웹툰계에는 많은 무협만화가 연재 중이지만, 그중에서 납득할 만한 무술 묘사를 보여주는 경우는 드물다. 먼지 나는 모습이나 한바탕 보여주고, 상대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들이밀기 일쑤다. 그러나 ‘앵무살수’는 다르다. 무공의 초식 전개를 단계적으로 정밀하게 묘사한다. 그것은 김성진 작가가 고도의 묘사력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하다. 장면구성 역시 창의적이다. 잘려 떨어지는 머리통의 관점에서 상대를 바라보거나, 뚫린 상처를 통해 프레임을 설정하는 등, 입체적인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다.

사실, 그림은 만화의 기본이다. 그러나 소설만큼이나 만화에도 문장이 중요하다. ‘앵무살수’에서 빈번히 그러나 적절히 사용되는 사자성어와 문어투 문장은 흑백 그림에 잘 어울린다. 그리고 ‘앵무살수’에는 실로 정치인들이 외워둘 만한 대사가 차고 넘친다. “악수를 두고도 판을 이기는 방법은 두어진 악수를 버리지 않고 그 수들에 다시 의미를 만드는 것.” 엄청난 정치적 실수를 저지르고 난 뒤, 변명 삼아 하기 좋은 말이 아닌가.

그뿐 아니다. ‘앵무살수’에는 풍부한 레퍼런스가 담겨 있기에, 정치인이 상식을 쌓기에도 좋은 작품이다. 죽여도 죽지 않는 불사인(不死人) 캐릭터는 일본 사무라이 만화 ‘무한의 주인’의 칼잡이 만지를 연상시킨다. 화산의 대종사 학통이 불사인과 바둑 대결을 하는 것은 유럽 문화 전통 속 ‘죽음과의 체스’ 테마에서 따온 것은 아닐까.

‘앵무살수’ 스토리 핵심에는 탐욕과 권력의 문제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권력욕의 노예가 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 점에 관한 한 악을 처단하려는 영웅이나 부패한 권력에 맞서는 의인도 예외가 아니다. 만약 ‘앵무살수’가 일종의 해피엔딩이라면, 초절정 고수가 권력 대신 사랑하는 사람을 택하여 기어이 이 사바세계를 떠나버리는 데 있다.

무협과 정치의 차이

‘앵무살수’ 주인공의 여정은 자기 한 몸만 알던 젊은이가 공적 소명을 인식하게 되는 각성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저 나 하나 살아가면 그만이지, 라는 마음으로 이 세상 난리통에 무관심하던 젊은이가 마침내 무림의 공적(公敵)과 대결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자신이 홀로 살아가는 개인이 아니라, 자신에게 무공과 선의를 베풀어준 스승과 친구와 더불어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즉, 주인공의 여정은 사적 개인이 공적 존재로 거듭나는 드라마다.

이뿐이랴.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앵무살수’ 전반을 관통한다. 영화감독 세바스찬 융거는 가장 무서운 전사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 적이 있다. “심지어 자기 목숨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 이들이 가장 무서웠다.” ‘앵무살수’에 나오는 영웅들이 바로 그렇다. 그들의 관심은 부유하게 오래 사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이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죽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저 좀 더 오래 부귀영화를 누리려 난리 치는 이들을 일러 이렇게 말한다. “평생을 죽음에 쫓기는 자들입니다. 가련하지 않습니까.”

물론 정치인이 ‘앵무살수’를 읽을 때 주의할 점도 있다. 무협만화에 빠져 있다 보면, 괴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크흡”하는 협객의 신음을 낼지 모른다. 자, 기자가 묻는다. “올해 안보를 담당할 무공은 무엇입니까?” “크흡!” ‘앵무살수’를 읽었다고 자칫 섣부른 검술을 구사하거나, 한숨을 장풍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아무런 지지기반도 없이 공중을 걸어 다니는 허공답보(虛空踏步)를 구사하려 들어도 안 된다. 현실정치에서 무협만화 주인공이 활보할 공간은 없다. 반복되는 퇴보와 거듭되는 환멸을 통제해가면서, 지루하고 어려운 설득을 거쳐 마침내 한걸음 진보하는 데 실제의 정치가 있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