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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꺼져" H-팝 열광…총선 앞 독해진 인도 힌두민족주의 [세계 한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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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수가 우리를 넘어서면/ 그들은 우리를 자신들의 음악에 맞춰 춤추게 할 거예요.”  

최근 인도 젊은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며 구독자 100만명을 두고 있는 가수 카비 싱의 유튜브. 사진 카비 싱의 유튜브 화면 캡처

최근 인도 젊은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며 구독자 100만명을 두고 있는 가수 카비 싱의 유튜브. 사진 카비 싱의 유튜브 화면 캡처

요즘 인도 젊은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며 유튜브 구독자 100만 명을 거느린 가수 카비 싱의 노래 일부분이다. 가사 속 ‘그들’은 무슬림을 의미한다. 이슬람교의 세가 불어나지 않도록 통제해야 한다는 노골적인 혐오성 발언이다.

인도에서 힌두 근본주의 성향이 짙은 음악인 ‘H-팝(힌두트바·Hindutva)’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며 무슬림·소수종교에 대한 혐오가 짙어지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이 최근 보도했다. 힌두트바는 힌두 근본주의를 뜻하는 말이다.

H-팝은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와 신나는 비트로 젊은층을 사로잡았다.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에서 카비 싱, 락스미 두베이 등을 비롯한 유명 가수들의 영상이 수십억 건 조회 수를 기록할 정도다. 겉으로는 ‘라마’ 등 힌두교의 신들에게 바치는 곡이지만, 실제 가사를 뜯어보면 무슬림과 소수민족을 악마화하는 표현이 담겨 있다. 이들에 대한 험한 표현도 서슴지 않아 실제 폭력 사태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이 SCMP의 설명이다.

지난해 8월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 충돌이 발생하자 힌두 우익단체가 시위를 벌이는 모습. AP=연합뉴스

지난해 8월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 충돌이 발생하자 힌두 우익단체가 시위를 벌이는 모습. AP=연합뉴스

이렇게 공격적인 가사를 담은 H-팝이 인기를 끌자 그렇지 않아도 인도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힌두 근본주의가 한층 힘을 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도에선 힌두 민족주의를 발판으로 정권을 잡은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인도인민당(BJP)이 집권한 2014년 이후 힌두교도(인구의 80%)의 무슬림(14%)에 대한 혐오 범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는 “특히 BJP 집권 지역에서 범죄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힌두 근본주의가 짙게 배인 대중가요가 젊은이 사이에 유행하면서 혐오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아미르 알리 자와할랄네루대학교 교수는 “H-팝은 분열을 조장하고 무슬림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긴다”며 “힌두교와 이슬람교라는 인도 사회의 중요한 두 종교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온 사회 구조가 완전히 붕괴됐다”고 설명했다.

대중문화 전반에 힘 뻗는 '힌두 근본주의’

지난해 5월 이슬람을 혐오하는 내용이 담긴 영화 '케랄라 스토리'가 개봉하자 인도 전역이 홍역을 치렀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5월 이슬람을 혐오하는 내용이 담긴 영화 '케랄라 스토리'가 개봉하자 인도 전역이 홍역을 치렀다. AFP=연합뉴스

힌두 근본주의는 음악 분야만의 얘기가 아니다. 인도에서 제작되는 영화·드라마에는 무슬림이 악역이나 테러리스트로 자주 등장한다. 알리 교수는 “최근작 ‘케랄라 스토리’나 ‘더 카슈미르 파일스’와 같은 영화는 무슬림을 악역으로 그려 혐오를 확산시켰다”고 지적했다. 각각 이슬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에 가입한 힌두교 여성, 이슬람 분리주의 반군의 위협에서 살아남는 힌두교인을 그린 작품이다.

힌두교의 교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작품은 용납하지 않는 모습도 보인다.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는 최근 인도에서 공개했던 영화 ‘안나푸라니: 음식의 여신’을 삭제했다. 요리사를 꿈꾸는 힌두 여성이 종교적 신념에 반해 육류를 먹는 내용이 담긴 탓이었다. 힌두주의자들이 ‘힌두교를 모욕한다’며 극렬하게 반발해 넷플릭스가 결국 물러섰다. 인도는 할리우드에 빗대 ‘발리우드’라 불릴 정도로 영화 산업이 발달한 데다, 14억 명의 인구가 있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3연임을 노리는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 그는 힌두 민족주의를 발판으로 집권했다. AP=연합뉴스

3연임을 노리는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 그는 힌두 민족주의를 발판으로 집권했다. AP=연합뉴스

모디 총리가 힌두 사원 봉헌식 집전도

그러나 올해 4~5월 총선을 앞둔 모디 정부는 대중문화 속 혐오표현에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폭력 사태에 대해서도 수수방관하는 모습이다.

한술 더 떠 지난 22일(현지시간)에는 북부 지역에 새로 들어선 힌두교 사원의 봉헌식을 모디 총리가 직접 집전했다. 명목상 국교가 없는 세속국가인 인도의 관례를 국가 지도자가 직접 종교행사를 주관한 것이다.

모디의 집전 장면은 인도 전역에 24시간 방영돼 "(세속국가) 인도를 힌두 국가로 선포하고, 인도 무슬림을 2등 시민으로 강등시켰다"(타임)는 비판을 받았다. 해당 힌두 사원 부지는 옛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모디 총리가 “구자라트주(州) 주총리로 재임 당시 반(反)무슬림 정책으로 인기를 끌었다”며 반무슬림 정서 강화가 선거에 유리할 것이라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무슬림에 대한 공격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외신과 전문가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모디의 재집권 가능성에 무게를 실으면서도, 장기적으로는 모디의 힌두 민족주의가 결국 그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힌두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인도의 외교는 점점 더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웃 이슬람 국가들과 갈등을 빚는 것은 물론 인권·종교의 자유 등에 민감한 서구와도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FP는 “중국이 ‘늑대전사 외교’라면 인도는 ‘호랑이전사 외교’같다”며 “결국 인도의 이익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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