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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친윤, 개딸 행태를 답습해서야

중앙일보

입력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충돌은 한 위원장의 90도 폴더 인사로 일단 '봉합'됐다. 아무 죄 없이 영조의 노여움 앞에서 석고대죄할 수밖에 없었던 사도세자처럼 한 위원장은 살을 에는 한파에 패딩도 입지 않고 우산 없이 눈을 맞으며 10여 분을 기다린 끝에 충남 사천시장을 찾은 윤 대통령을 맞았다. 만남 뒤 취재진에게는 "대통령에 대한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에 변함이 전혀 없다"며 낮은 자세를 유지했다. 한 위원장이 한껏 굽히고 들어가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일단 급한 불은 껐다. 윤 대통령 체면은 살려주면서 다가오는 총선에 악재로 작용할 소모적인 내분 확산을 막았기에, 여권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윤-한 갈등 촉발한 김건희 명품백
대통령 무리수에 친윤은 궤변
상식 외면하면 민심 멀어진다

두 사람의 속마음은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 다만 국민 눈높이로 보자면 안도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단순히 누군가의 사과나 누군가의 사퇴와 같은 특정 사안에 대한 '봉합'이냐 '해결'이냐의 차원을 넘어 윤석열 정부의 근본적 한계를 만천하에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계란 바로 김건희 여사다. 그동안 적잖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추측만 했다면, 이번 대통령실의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 소동을 계기로 다들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20년을 동고동락한 최측근에다 지난 문재인 정권에선 모진 탄압까지 함께 맞서 싸운 동지적 관계조차 한순간에 위험에 빠뜨릴 만큼 김 여사는 이 정권의 불가침 성역 같은 존재라는 사실 말이다.

한 위원장은 법무부 장관 시절은 물론 비대위원장 취임 후에도 줄곧 김 여사를 두둔하는듯한 모습이었다. 대통령과의 수직관계를 벗어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수준의 변화를 기대하는 적잖은 국민은 그래서 오히려 실망했다. 김 여사와 관련해 당내 인사로선 처음으로 김경율 비대위원이 문제를 제기한 이후인 지난 18일과 19일 한 위원장이 한 발언도 국민 눈높이에선 과하기는커녕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대통령더러 야당의 김건희 특검법을 받으라거나 김 여사더러 명품백 수수와 관련해 당장 사과하라는 것도 아니었다. 고작 "국민이 걱정할 부분이 있다"라거나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이를 문제 삼아 다른 꼬투리를 대서 취임 28일밖에 안 된 집권당 대표를 '또' 갈아치우겠다고 나섰다. 게다가 이 문제를 제기한 비대위원 사퇴를 양측 화해의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누가 봐도 명분이 없을뿐더러 비상식적이다.

그런데 이른바 친윤이라는 사람들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이들은 이번 갈등을 촉발한 김 여사의 명품백 논란과 관련해 "피해자에게 사과하라는 격"이라며 김 여사 엄호에 나섰다. 윤심의 핵심이라는 이철규 의원은 "국민이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우려한다"는 식으로 국민을 가르치려드는 태도까지 보였다. 이 의원을 비롯해 장예찬 전 최고위원, 이용 의원 등 윤 대통령 부부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이들이 말하는 진실은 딱 하나다. 전후 맥락 다 잘라내고 몰카 함정이었으니 그저 김 여사는 무고한 피해자라는 거다.

대통령 부인이 특정 세력의 저열한 몰카 공작에 속았다는 걸 누가 모르나. 그걸 몰라서 민심이 요동치는 게 아니다. 민심이 김 여사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건 애초에 대통령 부인 자리에 걸맞은 공적 마인드 하나 없이 그런 인사와 거리낌 없이 만남을 이어가고, 아무리 사석이라지만 국정에 개입하는듯한 부적절한 언행을 쏟아내고, 결정적으로 값비싼 여러 선물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하다 하다 이젠 공작을 진행한 친북 목사한테 받은 300만 원짜리 디오르 백을 김 여사가 돌려주면 국고 횡령이라는 궤변까지 이철규 의원 입에서 나왔다. 김 여사는 이 선물을 사적으로 받은 게 아니라 정상적인 절차와 규정에 따라 받아 처리했다는 주장을 하려고 이런 무리수까지 두는 모양인데, 기가 막히다. 법상으로는 대통령이나 공직자가 직무수행과 관련해 국가적 보존 가치가 있는 선물인 경우 즉각 신고하고 선물을 인도하도록 돼 있는데 디오르 백이나 샤넬 화장품은 그 어떤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호위무사들의 일련의 발언은 조국 사태 때 어용 지식인을 자처한 유시민 작가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측의 증거 인멸 시도를 "증거 보존"이라는 궤변으로 옹호하던 걸 떠올리게 한다. 또 적잖은 친윤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김경율 비대위원을 맹비난하며 사퇴를 요구하는 대목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하나 지키겠다고 당내의 합리적인 다른 목소리를 억압하는 '개딸' 행태와 정확히 겹쳐 보인다. 개딸 전체주의를 비판하며 출발한 비대위에 개딸의 그림자라니. 이래저래 국민의 근심만 깊어진다.

글=안혜리 논설위원 그림=윤지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