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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기쁨조" 욕설하면 성범죄?…통매음, 불기소 증가 추세

중앙일보

입력

“너 기쁨조야?”
2022년 4월 한 온라인 게임을 하던 A씨는 시비가 붙은 B씨를 수차례 ‘기쁨조’라고 채팅으로 조롱했다. 이에 성적 수치심을 느낀 B씨는 성폭력처벌법 위반(통신매체이용음란)으로 A씨를 경찰에 고소했고, 혐의가 인정돼 검찰로 송치됐다.

하지만 인천지방검찰청은 지난해 1월 A씨를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검찰은 불기소이유서에 “이 사건 메시지로 고소인이 수치심과 불쾌감을 느꼈을 수 있지만, A씨가 자신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메시지를 전송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적었다. 이 사건을 대리한 김승환 변호사는 “검찰이 통신매체이용음란죄 적용을 엄격하게 하려는 최근 추세가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통신매체이용음란은 성적 욕망을 만족하게 할 목적으로 통신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혐오감을 일으키는 말 등을 했을 때 성립하는 범죄다. 모욕죄와 달리 특정성과 공연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어 처벌 범위가 넓다.

이 때문에 온라인 게임에서 성적인 욕설을 했다가 성범죄자로 전락하는 10대·20대가 적지 않다. 젊은 층 사이에서는 ‘통매음’이란 줄임말로 불린다. 피고소인을 ‘덜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소를 당해 성범죄자가 될까 봐 덜덜 떠는 사람’이란 의미다.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는 이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통매음 갤러리’도 생겼다. 경찰 관계자는 “법을 이용해 합의금을 뜯는 ‘통매음 헌터’도 있다”고 전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하지만 최근 들어 통매음 불기소 처분이 증가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검찰이 접수한 통매음 사건의 불기소율은 2019년 26%, 2020년 24%, 2021년 29% 등 20%대를 오가다 2022년부터 45%로 급증했다. 지난해 불기소율도 48%였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몇 년 전부터 통매음 사건은 게임 내 분쟁으로 발생한 이른바 ‘겜매음’이 대부분”이라며 “성적인 욕설을 했더라도 홧김에 한 모욕 취지의 욕설이라 판단되면 전후 사정을 종합해 불기소 처분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법원에서도 통매음 사건에 대한 무죄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는 온라인 게임 ‘리그오브레전드’에서 같은 팀원에게 “니 애미 XX년” 등 성적 욕설을 수차례 한 C씨에 대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 무죄판결을 확정했다. 이 사건 2심 재판부는 C씨가 ▶피해자의 성별과 나이를 전혀 모르는 점 ▶성적 욕망이 개입돼있기보다는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피해자의 어머니를 모욕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이유로 1심 판결(벌금 500만원)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는 지난해 8월 온라인 게임에서 성적 욕설을 해 통신매체이용음란죄로 기소된 C씨에 대해 원심 무죄판결을 확정했다. 뉴스1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는 지난해 8월 온라인 게임에서 성적 욕설을 해 통신매체이용음란죄로 기소된 C씨에 대해 원심 무죄판결을 확정했다. 뉴스1

다만 법원·검찰과 달리 경찰의 사건 불송치율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5년 간(2018년~2022년) 불송치율은 2018년 25%, 2019년 26%, 2020년 27%로 나타났다. 2021년에는 20%, 2022년 23% 등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소폭 감소했다. 일선 경찰서의 한 여성청소년과장은 “심각한 수위의 성적 욕설을 한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그것이 모욕 취지였는지, 성적 만족을 얻기 위했는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통매음 사건을 다수 대리한 지세훈 변호사는 “원래 통매음죄는 온라인 채팅 등에서 음란한 사진 등을 보낸 이들을 처벌하려는 취지로 입법됐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게 옳다고 본다”며 “법원의 게임 내 성적 욕설 관련 무죄 취지 판결이 쌓이면 수사기관에서도 기준을 확실히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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