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윤덕노의 식탁 위 중국] 갑진년 용의 해와 바닷가재 롱샤(龍蝦)

중앙일보

입력

롱샤(龍蝦)로 만든 다양한 요리들이 원형 테이블에 올려져 있다.

롱샤(龍蝦)로 만든 다양한 요리들이 원형 테이블에 올려져 있다.

섣달 그믐날 저녁에는 가족이 둘러앉아 소원을 빌며 새해맞이 음식을 먹는 것이 중국의 오랜 전통이다. 단원반(團圓飯) 혹은 제야 음식(年夜飯)이라고 한다. 원래 음력인 춘절 풍속이지만 요즘은 양력 새해맞이 음식으로도 먹는다. 최근 중국 뉴스를 보니 올해 새해맞이 음식으로 홍콩과 중국 등지의 고급 음식점에서는 바닷가재 요리가 인기였다고 나온다.

음식 이름에 용(龍)자가 들어가는 요리를 먹으며 올 한 해 운수대통하기를 빌었는데 적지 않은 중국요리가 그렇듯이 새해맞이 음식이라며 먹었다는 요리들도 이름을 보면 거창하기 그지없다.

이를테면 청룡이 물속에서 노닌다는 뜻의 청룡희수(靑龍戱水), 바닷가재 살로 만든 사천식 완자 요리로 두 마리 용이 만나는 기이한 인연이라는 의미의 쌍룡기연(雙龍奇緣), 용을 포함해 12간지 동물을 주제로 꾸민 디저트, 딤섬으로 한 무리의 용이 장수를 축원한다는 군룡축수(群龍祝壽) 등등이 그것이다. 무협소설에 나오는 초식처럼 이름이 현란할뿐더러 그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용(龍)자가 들어가는 새해맞이 음식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이 바닷가재를 주재료로 한 요리라는 점이다.

용을 닮은 새우라는 뜻을 가진 롱샤(龍蝦).

용을 닮은 새우라는 뜻을 가진 롱샤(龍蝦).

바닷가재와 용, 그리고 새해가 무슨 연관이 있을까 싶지만, 중국에서는 나름 그럴듯한 상관관계가 있다. 2024년은 갑진년 용띠 해, 그것도 청룡의 해다. 옛날 중국 풍속에서는 이럴 때 용과 관련된 음식을 먹고 용의 기운을 받아야 한 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며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용은 상상 속 동물이니 실제 그 고기를 먹을 수는 없고 그래서 대신 먹은 것이 바닷가재 요리다.

용과 바닷가재도 얼핏 별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모든 일이란 게 풀이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다. 바닷가재는 중국어로 롱샤(龍蝦)다. 용을 닮은 새우라는 의미다. 그러니 꿩 대신 닭이라고 용띠 해의 새해맞이 음식으로 용의 기운을 받아 소원을 이루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용띠 해이건 아니건 중국에서 바닷가재 먹으며 행운을 빈다는 말, 별로 들어보지도 못했고 그래서 뜬금없기 짝이 없는데 그러면 중국인들, 언제부터 용띠 해에 바닷가재를 먹으며 새해 소원을 빌었을까?

일단 중국에서 바닷가재를 먹은 역사부터가 뚜렷하지 않다. 중국 문헌에 바닷가재가 나오는 것은 16세기 후반, 명나라 때다. 지금의 광동성 동부에 위치한 고을인 징해(澄海)현의 지방관청 기록인 현지(縣志)에 나온다. 바다새우(海蝦)라고 했는데 길이가 2~3척이고 수염은 수척에 이른다고 했다. 그러니 대략 60cm~1m 크기의 초대형 바닷가재다. 원주민들이 그 껍질로 등불을 밝히는데 바라보면 마치 용의 모습과 같다고 했다. 그래서 용 새우(龍蝦)라고 부른다고 했으니 롱샤의 어원이 여기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기록은 명나라 때 보이지만 그렇다고 이때부터 바닷가재를 요리해 먹었던 것 같지는 않다. 상어지느러미, 바다제비집 요리와는 달리 명청시대 황제가 살았던 북경을 비롯한 중원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에서 바닷가재 요리가 인기를 끈 것은 1990년 후반 이후 경제가 발전하면서, 서양 랍스터 요리의 영향을 받으면서부터다. 그러니 롱샤라는 이름에 용(龍)자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갑진년 용띠 해의 새해 음식으로 바닷가재 요리가 등장한 것이 다소 뜬금없고 우스꽝스럽지만, 꼭 그렇게 볼 것만도 아니다. 문화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새해맞이 음식은 아니어도 연초에 용과 관련해 음식을 먹는 풍속이 있었다. 청나라 후반 지금의 북경 지역 풍속을 기록한 『연경세시기(燕京歲時記)』에 그 내용이 보인다. 이 책에 음력 2월 2일을 용이 머리를 드는 날(龍擡頭)이라고 했는데 이를 기념해 용과 관련된 음식을 먹는 것이 풍속이라고 적혀 있다.

뭔 소리인가 싶지만, 계절에 따라 움직이는 별자리가 이날에는 마치 용이 머리를 드는 것과 같은 모습이라고 해서 생긴 말이다. 예전 중국에서는 이날을 중화절이라고 해서 농사가 시작되는 날로 삼았다. 참고로 우리는 하루 앞인 음력 2월 1일이 중화절이다. 용이 머리를 드는 날, 바꿔말해 용이 기운을 뻗어 일어나는 날이니 이날 용의 정기를 받으면 한 해 좋은 일이 생긴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용 고기를 직접 먹을 수는 없으니 먹는 음식마다 의미를 부여해 용과 관련을 지었다.

이를테면 이날 먹는 호떡 같은 음식은 용의 비늘(龍鱗), 국수는 용의 수염인 용수면(龍鬚麵)이라고 했다. 부녀자들은 이날만큼은 바느질을 하지 않았는데 자칫 용의 눈을 찌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먹는 음식마다 용과 관련지으며 용의 기원을 받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그리고 풍년이 들어 풍요로운 한 해가 되기를 빌었다.

갑진년 용의 해에 중국인들이 새해 음식으로 롱샤(龍蝦), 바닷가재를 먹으며 소망을 빌었다는 뉴스에는 이런 민속적 배경이 있다.

더차이나칼럼

더차이나칼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