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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컷칼럼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진짜 원인

중앙일보

입력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명박(MB) 정부 시절 얘기다. 2008년 11월 대통령이 미국에서 동포 간담회를 하면서 “지금 주식을 사면 최소 1년 이내에 부자가 된다”고 말해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당시 야당은 “도박사나 할 말”이라고 공격했고, 언론은 “주가와 같은 불확실한 미래를 그렇게 확실하게 얘기하기엔 대통령의 자리가 너무 무겁다”고 꼬집었다.

 그때 주식을 샀다면 어땠을까. MB 발언 당시엔 금융위기 여파로 코스피지수가 1000선 안팎까지 떨어졌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1년 뒤에는 1600선까지 올랐다. ‘부자’까지는 아니어도 평균 60%의 큰 수익을 누렸겠다. 그렇다고 그 발언을 옹호할 생각은 지금도 없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건 증시 전망을 족집게처럼 맞히는 애널리스트의 역할은 아닐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 감세 너무 많아
금투세 폐지 땐 거래세 유지해야
불확실한 정부 정책이 더 문제다

 주식시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윤석열 대통령이 역대 최고인 것 같다. 윤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올해 증시 개장식에 참석했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자본시장 규제는 과감하게 혁파해 글로벌 증시 수준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고 축사를 했다. 보름 뒤인 지난 17일에도 여의도 한국거래소를 찾았다. 금융위원회 업무보고를 겸한 민생토론회 자리였다. 현직 대통령이 이렇게 자주 거래소를 방문한 적이 과거에 있었나 싶다.

 정부는 지난해 공매도 금지와 대주주 주식 양도소득세 기준 완화에 이어 올해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폐지하고 증권거래세는 예정대로 인하하며,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세제 혜택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련의 자본시장 정책은 1400만 개인투자자가 좋아하는 증시 부양책이라는 평가가 많다. 정책 추진 과정에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재정 형편을 고려하지 못했다. 금투세 폐지와 증권거래세 인하, ISA 세제 혜택 확대로 내년 수조원의 세수 감소가 예상된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그제 방송에 나와 “자본시장 관련 세제 지원이나 민생 지원 등은 큰 규모가 아니다”고 했다. 경기가 살아나고 세수 기반이 확충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지만 글쎄다. 감세는 당장 나가는 현금이고 감세 효과는 불확실한 어음 같은 거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앞뒤 재지 않고 생색만 내는 감세 조치가 너무 많다.

 팬데믹 이후 정부의 역할이 커졌다. 취약층 보호, 저출생 대책, 전략산업 지원, 기후변화 대비 등 재정을 꼭 써야 할 데가 많다.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고 세금 깎아주는 조세지출은 줄이며 복잡한 세제를 단순화하면서 중장기적으로 합리적인 증세안을 준비해야 한다. 세제 개편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에 특정 세목의 부분 논리만으로 감세를 결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공매도 금지에 대한 비판을 굳이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을 계속하기 때문에 한국은 메이저 국제금융 중심지가 될 수 없다”고 했던 투자자 짐 로저스의 비판이 참 아팠다. 금투세는 장기투자 유인이 없다는 점을 비롯해 보완할 여지가 있긴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덜컥 폐지하려면 적어도 패키지 딜이었던 증권거래세의 단계적 인하는 중단했어야 했다. 증권거래세는 정부가 노름판에서 고리 뜯어 돈 버는 ‘도박판 하우스’냐는 욕을 들었지만 그래도 많을 때는 10조원 넘게 들어오는 ‘세수 효자’였고, 상대적으로 경제 왜곡이 적은 세금이기도 했다.

 경제 부처 ‘패싱’ 논란이 벌어진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공매도 입장을 번복해야 했던 금융위나, 선진 세제라고 자랑하던 금투세를 ‘없던 일로’ 해야 했던 기획재정부의 난감함은 지켜보기 안쓰러웠다. 이런 정부 정책의 불확실성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진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구체적인 지시가 반복되면 부처의 책임성과 경제 관료의 정책 공간이 줄어들고, 이는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조장한다. 관료의 보신주의를 비판하지만 말고 대통령실과 부처의 관계 설정부터 다시 하기를 바란다.

글 = 서경호 논설위원 그림 = 임근홍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