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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이던 남편 깜짝등장…이 사진, 헤일리 '신의 한 수'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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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키 헤일리(가운데) 미 공화당 대통령 경선 후보가 지난 6월 아프리카로 떠나는 남편 마이클 헤일리를 배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니키 헤일리(가운데) 미 공화당 대통령 경선 후보가 지난 6월 아프리카로 떠나는 남편 마이클 헤일리를 배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번 미국 공화당 대통령 경선은 '니키 헤일리'라는 다섯 글자를 세계에 각인시켰다. 헤일리는 자신의 주군(主君)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상대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법 리스크로 하차할 경우 유력한 대체재로도 거론되며, 부통령 후보로도 하마평에 오르는 중이다. 경선 과정에서 헤일리는 '나홀로 유세'의 모습을 주로 보였다. 가족의 가치를 중시해 배우자와 자녀를 대동하는 것이 유리한 미국 정치에선 다소 낯선 광경이다. 이유가 있다. 그의 남편인 마이클 헤일리는 군인으로, 현재 아프리카에서 근무 중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헤일리의 아프리카 파병 소식은 지난해 6월 공개됐다. 부인 니키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가 대통령 경선 출마를 공식화한 뒤였다. 군인에 대한 예우를 각별히 중시하며, 참전용사에 대한 처우가 선거에서 주요 향방을 가르곤 하는 미국에서, 마이클의 아프리카 파병은 부인 니키에겐 '신의 한 수'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지난달 경선 후보 토론에서 니키 헤일리는 "대선 출마는 사실 남편, 그리고 남편과 함께 복무하는 남녀 동료를 위해 결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군인은 그들의 희생이 의미가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우리의 애국심을 그들에게 알려야 한다"라고도 말했다.

니키 헤일리 미 공화당 대통령 경선 후보가 23일(현지시간) 걸어나오고 있다. 이날 선거에선 졌지만, 그의 정치적 위상은 더 단단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AP=연합뉴스

니키 헤일리 미 공화당 대통령 경선 후보가 23일(현지시간) 걸어나오고 있다. 이날 선거에선 졌지만, 그의 정치적 위상은 더 단단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AP=연합뉴스

이번이 마이클 헤일리에겐 두 번째 해외 파병이다. 2013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한 게 처음이었다. 경선 현장에서 남편의 부재는 오히려 더 큰 존재감을 지닌다. 군복 차림의 마이클 헤일리는 경선장이 아닌 니키 헤일리가 지난달 공개한 방송 광고에서 등장했다. 조용한 듯 조용하지 않은 외조인 셈이다.

마이클 헤일리의 원래 이름은 '빌(Bill)'이었다고 한다. BBC에 따르면 니키 헤일리는 20대 초반, 군인이었던 '빌 헤일리'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름이 안 어울려. '빌'보다는 '마이클'이 나을 것 같아." 그렇게 빌 헤일리는 마이클 헤일리가 됐다. 둘은 1996년 웨딩마치를 울렸다. 니키도 바꾼 게 있다. 종교다. 인도계 미국인 2세인 그는 부모를 따라 시크교를 믿었으나, 남편을 따라 기독교로 개종했다. 마이클은 부인을 위해 이름을 바꿨고, 니키는 남편을 위해 종교를 바꿨다. 마이클 헤일리는 1970년생, 니키 헤일리는 1972년생이다. 둘 사이엔 아들 나린, 딸 레나가 있다. 딸은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결혼했다.

니키 헤일리(왼쪽에서 두번째)와 남편 마이클 헤일리(왼쪽에서 세번째)가 딸 레나, 아들 나린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해 6월 마이클 헤일리의 아프리카 파병식 당시다. AP=연합뉴스

니키 헤일리(왼쪽에서 두번째)와 남편 마이클 헤일리(왼쪽에서 세번째)가 딸 레나, 아들 나린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지난해 6월 마이클 헤일리의 아프리카 파병식 당시다. AP=연합뉴스

남편은 그러나 뼛속까지 군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둘은 결혼 직후, 니키 헤일리의 부모가 경영하던 의류 회사에서 사업을 했다. 니키가 최고재무관리자(CFO)를, 마이클이 남성의류 부문을 맡았다. 그러나 기업은 곧 문을 닫았다. 이때가 바로 니키 헤일리의 경력에서 큰 약점이 되는 부분이다. 당시 헤일리 부부는 경제적으로 풍족하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뉴욕타임스(NYT)의 지난달 보도에 따르면 세금 신고를 부실하게, 그것도 마감보다 늦게 했다고 한다. 니키 헤일리는 경선 과정에서 수차례 "대선 후보들이라면 납세 여부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는데,  NYT는 "니키 헤일리 본인부터가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니키 헤일리 경선 후보가 남편 마이클의 아프리카 파병 직전인 지난해 6월 초, 함께 정치 행사에 참석한 모습. AP=연합뉴스

니키 헤일리 경선 후보가 남편 마이클의 아프리카 파병 직전인 지난해 6월 초, 함께 정치 행사에 참석한 모습. AP=연합뉴스

경영자로서는 실패했지만, 부부는 니키의 정치적 야망으로 재기에 성공한다. 니키 헤일리가 2011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선거에 당선하면서, 마이클은 '사우스캐롤라이나 퍼스트 젠틀맨(first gentleman)'이라는 타이틀을 얻는다. 이때부터 마이클은 부인을 위한 조용하지만 조용하지 않은 외조를 시작한다. 2013년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지원한 것 역시 영리한 선거 전략의 일환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파병식 당시 니키 헤일리가 남편과 포옹하는 사진은 자신의 홍보에 대대적으로 동원됐고, 지금까지도 자주 활용된다.

니키 헤일리가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넘어, 중앙정치의 상징인 워싱턴DC로 진출하는 데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힘이 컸다. 니키 헤일리를 주유엔대사로 임명한 게 트럼프였다. 헤일리가 사의를 표명한 2018년 10월, 당시 대통령 트럼프는 헤일리를 백악관 집무실 오벌 오피스로 불러들여 기자들 앞에서 아쉬움을 표했다. 그만큼 헤일리와 트럼프는 각별했던 사이다.

2018년 10월 니키 헤일리가 사의를 표명한 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로 그와 기자단을 불러 "그간 수고했다"고 말하는 현장. UPI=연합뉴스

2018년 10월 니키 헤일리가 사의를 표명한 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로 그와 기자단을 불러 "그간 수고했다"고 말하는 현장. UPI=연합뉴스

니키 헤일리는 그러나 자신의 갈 길을 뚜렷이 했다. 트럼프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매체인 워싱턴포스트(WP)를 택해 기고문을 실으며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한 것은 영광이지만,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견해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요지의 주장을 펴면서다. 그리고 약 6년 후인 지금, 둘은 경선에서 적수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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