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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선 유효타, 尹 앞에선 폴더인사…한동훈 '싸움의 기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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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동훈 국민의힘이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한동훈 국민의힘이 비상대책위원장이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용산 대통령실과 충돌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싸움의 기술’이 여권에서 회자되고 있다.

지난 21일 밤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한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했다’는 보도 이후 여권은 초비상 상태였다. 한 위원장은 보도 직후 “국민 보고 나선 길, 할 일 하겠다”고 단체 공지문을 띄운 데 이어 이튿날인 22일 아침 기자들과 만나서는 “제가 사퇴 요구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공식화한 강공 모드였다. 대통령실 입장에선 자칫 '당무 개입'으로 비칠 수 있는 사안을 여당 비대위원장이 인정한 셈이었다. “용산을 겨냥한 한 위원장의 유효타”라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한 위원장은 다음날인 23일 충남 서천 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 대통령을 만나자 고개를 90도 숙였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전용열차를 함께 타고 서울역에 도착해 기자들과 만나서는 “대통령님에 대해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24일 기자들과 만나서도 ‘김건희 여사 리스크’ 관련 질문에 “제 생각은 이미 충분히 말씀드렸다”라고만 했다. 그러면서 “저는 민생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한 목표를 위해서 가겠다. 대통령께서도 마찬가지”라며 화제 전환에 주력했다.

한동훈(왼쪽)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3일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 특화시장에서 현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한동훈(왼쪽)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3일 화재가 발생한 충남 서천 특화시장에서 현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이같은 한 위원장의 스타일 변화를 두고 당내에선 “아웃 복싱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의원은 “한 위원장은 언론 등을 통해 자신을 내치려는 듯한 접근전이 펼쳐지자 발톱을 드러내고 강력히 대처했지만, 막상 윤 대통령을 만나서는 90도 폴더 인사로 자신을 최대한 낮췄다”고 말했다. 상대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다가 기회를 맞이할 때만 정확히 포인트를 올리는 ‘아웃 복싱(out boxing)’과 유사하다는 뜻이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말로 유명한 무하마드 알리가 대표적 아웃 복서로 꼽힌다.

또 다른 초선 의원은 “할 말 하는 모습을 통해 ‘윤석열 아바타’ 프레임을 어느 정도 떨쳐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만나서는 고개를 숙여 전통적 보수층의 반감도 최소화했다”고 평가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0회 국회(정기회) 제8차 본회의에서 당시 한동훈 법무장관의 국회의원(이재명) 체포동의안에 대한 체포동의요청 이유설명이 길어지자 항의하는 박광온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한 장관을 지지하는 윤재옥 원내대표와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0회 국회(정기회) 제8차 본회의에서 당시 한동훈 법무장관의 국회의원(이재명) 체포동의안에 대한 체포동의요청 이유설명이 길어지자 항의하는 박광온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한 장관을 지지하는 윤재옥 원내대표와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법무부 장관 시절 한 위원장은 아웃 복싱보단 ‘인파이팅(infighting)’에 가까운 스타일이었다. 국무위원 신분으로 국회에 출석해서도 야당 의원의 질문에 송곳같은 답변을 하며 공세적인 태도를 취했다. 지난해 9월 2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을 앞두고 제안 설명을 할 때는 민주당에서 고성이 이어졌지만, 연단에 서서 30여분 동안 체포동의안에 적시된 이 대표의 범죄 사실을 꿋꿋하게 읽어내려갔다.

한 위원장이 단기간에 국민의힘 지지층으로부터 인기를 얻은 건 이런 공격적 스타일 덕이었다. 하지만 최근 갈등 국면에서 상반된 모습을 선보이자 “한 위원장이 정치인이 되면서 조금씩 유연성도 키우는 거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임기가 3년 이상 남은 대통령, 그것도 본인을 성장시켜왔고 인연이 깊었던 권력자와의 관계를 맺기 위해선 예의와 소신을 넘나들어야 하지 않겠나”라면서 “당분간 이런 스타일을 유지하는 게 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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