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고질적 재판 지연에 줄줄이 풀려나는 형사 피고인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박영수 전 특검도 보석

법원, 보석 노린 재판 지연 시도 적극 대처해야

대북 송금과 횡령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지난 23일 보석으로 석방됐다. 김씨뿐 아니라 김모 전 쌍방울 재경본부장, 안부수 전 아태평화교류협회장 등 이 사건 관련자 대부분이 보석으로 나왔다.

형사소송법상 구속기소된 피고인의 구속 기간은 6개월이며, 예외적으로 재판부가 연장할 수 있다. 김씨는 지난해 필리핀에서 송환돼 2월 3일 구속기소됐다. 1차 구속 만료 시한을 앞두고 지난해 7월 검찰이 배임 혐의로 추가 기소하며 영장이 다시 발부됐다. 하지만 다시 6개월이 넘도록 결론이 나지 않자 결국 법원이 풀어준 것이다.

모두 이 사건 핵심 피고인인 이화영 전 경기도부지사 재판이 늘어진 데 따른 결과다. 이 전 부지사는 변호인 해임과 재선임, 재판부 기피 신청 등을 내며 재판을 지연시켜 왔다. 여기에 현 재판부가 다음 달 인사로 교체될 것으로 보여 재판은 더 늦어질 전망이다.

대장동 의혹 사건에서도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씨를 비롯해 남욱·정영학·유동규 등 대부분의 피고인이 석방됐다. 대장동과 관련해 50억 클럽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박영수 전 특검마저 얼마 전 보석으로 풀려났다.

형사 피고인은 형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되는 만큼 불구속 재판이 원칙이긴 하다. 하지만 기일 내에 재판을 마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풀어주는 것은 다른 문제다. 보석을 노려 재판을 지연시키고, 보석으로 석방된 뒤 도주하거나 말을 맞추는 등의 부작용이 계속 발생한다. 창원 간첩단 사건 피고인들의 경우 국민참여재판, 관할 이전, 재판부 기피 신청 등을 하며 재판을 끌다 9개월 만인 지난해 12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동안 정식 재판은 두 차례밖에 열리지 못했다.

대법원도 재판 지연을 해소하려고 여러 방안을 강구 중이다. 재판장 임기를 1년 늘리고, 시니어 법관제를 도입하며, AI 활용 방안까지 검토한다고 밝혔다. 이는 무엇보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시민의 권리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계속 재판을 끌어보려는 형사 피고인에 대해서는 다른 방안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 집중심리제를 도입하고, 특정 사건 재판이 길어질 경우 해당 재판부에 다른 사건 배당을 줄여 주는 것도 방법이다. 형사소송법에 규정된 구속기간 제한에 대해서도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

아울러 법관들도 민감한 재판의 결론을 미루다 인사 때 떠나버리거나 아예 사표를 내는 일을 지양해야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16개월이나 끌다 사표를 낸 강규태 부장판사가 대표적이다. 이런 사례가 쌓이고 재판이 더 늘어지면 법원의 신뢰도는 추락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