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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렬의 시시각각

‘부자 감세’ 프레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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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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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4년 전으로 돌려본다. 대한민국은 재난지원금에 꽂혀 있었다. 코로나가 극성이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비상경제회의에서 “소득 하위 70% 가구에 4인 가구 기준으로 가구당 10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21대 국회의원 총선 16일 전이었다. 6일 뒤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황교안 대표가 “전 국민에게 1인당 50만원을 즉각 지급하자”고 따라붙었다. 바로 다음 날,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야당의 ‘전 국민 지급’ 제안을 낚아채 정부안의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포퓰리즘의 끝판 경쟁이었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투표 이틀 전 통합당 오세훈 후보와 맞붙은 서울 광진을 고민정 후보 지원 유세에서 “고 후보를 당선시켜 주시면 저와 민주당은 100% 국민 모두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드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선거는 여당인 민주당의 압승이었다. 총선 19일 뒤 재난지원금 지급이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재난지원금이 모처럼 소고기 국거리 사는 데 쓰였다는 보도를 봤다”며 “가슴이 뭉클하기도 하다”고 했다.

증시 감세, 건전재정과 엇박자
정부 “투자자 감세” 외치지만
조세정의 배치, ‘낙수효과’ 논란

4년 전과 비교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금융투자소득세 백지화 등에 쏟아지는 총선용 포퓰리즘 비판이 억울할지 모른다. ‘퍼주기’ 정도는 그때와 비할 바가 아니다. 금투세 폐지에 따른 세수 감소 추정치는 연간 약 1조원. 4년 전 전 국민 재난지원금에 들어간 재정은 총 14조3000억원(지자체 부담 2조1000억원 포함)이었다. 포퓰리즘 비판에 관한 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자격 미달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증가한 국가 채무가 400조원이다. 민주당은 막대한 재정이 추가로 들어가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 다시 밀어붙이는 중이다.

그러나 생각해 볼 거리가 있다. 4년 전에는 코로나라는 특수 사정이 작용했다. 초유의 팬데믹이 돈을 막 푼다는 사회적 죄의식을 가렸다. 그사이 재정이 많이 망가졌다. 올해 재정적자만 GDP의 3.9%로 전망된다. 그 때문에 윤 대통령이 “선거용 매표 예산을 배격하겠다”며 예산을 긴축 편성하지 않았던가. 건전재정 사수 의지를 불태웠던 대통령이 해가 바뀌자마자 감세안을 쏟아내는 것은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대통령의 말도, 정책도 무거워야 한다.

감세의 명분은 경제의 선순환이다. 경기와 시장이 살아나기만 하면 세수도 더 늘어날 수 있다. 현실에선 좀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금투세 폐지는 세금을 면제해 투자를 유치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조세정의나 공평과세와 부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시장이 두터워져 주가가 오르면 국민 재산 증식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에 일리가 없지는 않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부자 감세’가 아니라 2000만 명이 넘는 투자자를 위한 ‘투자자 감세’”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 ‘큰손’을 비롯한 투자자가 대거 유입되고, 주가가 올라야 맞는 말이 된다. 결국 ‘낙수효과’가 얼마나 발생하느냐에 달려 있다. 주가가 정체·하락하면 그냥 부자 감세로 그칠 뿐이다. 정부가 지난 연말 시행한 대주주 양도세 완화도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최근 정부가 내놓는 민생 대책엔 서민 가계에 도움되는 내용이 적지 않다. 자영업자 이자 환급, 대출 갈아타기 플랫폼, 단말기유통법(단통법) 폐지 등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 직무수행 부정평가(60% 안팎, 갤럽 조사)의 첫째 이유로 계속 ‘경제/민생/물가’가 지목된다. 현 정권의 ‘친부자’ 이미지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금투세 폐지 등 일련의 증시 감세는 그런 이미지를 강화시킬 수 있다. 그 같은 감세가 어떻게 민생을 살릴 수 있는지에 대해 정부의 설명은 부족했다. 추진 방법도 미숙했다. 한국 정치에서 부자 감세 프레임은 강력하다. 국민 공감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필연적으로 정치적 반발을 초래한다. 현 정권도 자꾸만 그 프레임에 빠져드는 모습이다.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