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시각각

사람 입을 막지 맙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프라이머리) 유세가 진행된 지난 20일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의 실내체육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대통령을 맹렬히 비난하다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키더니 “그를 내쫓아도 좋다”고 했다. 이어 “밖으로 던져버려(throw him out)”라고 했다. 방송 카메라가 청중석으로 향하고, 검정 후드 셔츠를 입은 중년 남성이 제복을 입은 보안요원 두 명에게 이끌려 행사장 밖으로 강제로 퇴출당하는 모습이 중계됐다. 그 남성은 무언가를 계속 얘기했지만, 요원들이 입을 막지는 않았다. 양쪽에서 한 명씩 팔짱을 끼고 차분하게 퇴장을 유도했다. 나중에 기사를 찾아보니 그가 외친 말은 “독재자(dictator)”였다. 미국 언론은 ‘던지라’는 트럼프의 거친 표현을 비판했다.

법적 경호 기준은 ‘신체 위해 방지’
말이 몸을 해치는 경우는 제한적
인권의 역사는 말할 자유의 역사

내친김에 미국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의 훼방꾼은 어떤 일을 당하는지 확인해 봤다. ‘자유의 나라’답게 고함치는 방해자가 자주 등장했다. 정도가 심하면 경호요원이나 보안요원이 접근해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관련 영상과 사진이 많다. 그런데 요원들이 입을 틀어막는 모습은 단 한 개도 찾을 수 없었다.

찾다 보니 구글 알고리즘에 따라 미국 대통령이 그러한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 계속 올라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단골 주인공이었다. 그는 백악관의 시민 초청 행사에서 한 참석자가 계속 소리를 질러 연설을 방해하자 “여긴 내 집이에요. 손님, 조금만 참아 주세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시민들이 박수와 환호로 훼방꾼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관련 동영상 중 가장 조회 수가 많은 것은 2013년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오바마 전 대통령 연설 방해 사건이다. 연단 뒤에서 젊은이가 “긴급 명령을 발동해 이민자 추방을 막으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오바마가 “바로 그게 오늘의 주제다. 내가 말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점잖게 제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와 옆에 있던 다른 참석자들이 “강제추방 금지”라는 구호를 크게 외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오바마가 “괜찮아요. 그냥 두세요”라고 말했다. 청중 쪽으로 다가서던 경호요원들을 향한 것이었다. 오바마는 여러 차례 그 젊은이를 진정시키는 말을 해 상황을 정리하고 연설을 이어갔다. 문제를 일으킨 이는 한국계 이민자 후손 홍모씨였다.

한국의 경호법(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2조에 ‘경호란 경호 대상자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신체에 가해지는 위해(危害)를 방지하거나 제거하고, 특정 지역을 경계·순찰 및 방비하는 등의 모든 안전활동을 말한다’고 쓰여 있다. ‘신체에 가해지는 위해를 방지하거나 제거’가 경호 행위의 범위라고 명시돼 있다. 목소리가 신체에 위해를 가할 수 있을까? 귀 옆에 입을 대고 고함치면 그럴 수 있다. 모욕적인 말을 반복해 들으면 정신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 말이 위해를 가하는 상황은 이 정도다.

지난 18일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서의 진보당 강성희 의원 행동은 그 두 가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대통령 귀에 해를 끼칠 만큼 강한 소리를 내지 않았고, 발언 내용은 ‘국정 기조를 바꾸십시오. 국민이 불행해집니다’였다. 강 의원이 다른 돌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인의 장막’을 치거나 행사장 밖으로 나가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입을 막을 이유는 없었다. 경호법 어디에도 떠들지 못하게 하라는 말은 없다. 경호실은 소음으로 인한 대통령 업무 방해를 막는 조처였다고 주장하는데, 법은 경호원에게 그러한 임무를 부여하지 않았다.

인권의 역사는 말할 자유의 역사다. 말 때문에 혀가 뽑히고 화형당하지 않는 세상이 오기까지 숱한 희생이 있었다. 입을 막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기도 하다. 중구난방(衆口難防). 문자 그대로 대중의 입은 막기 힘들다. 입을 틀어막는 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다. 막으면 100리 갈 말이 1000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