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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건물도 땅도 기부…'1조 기부왕' 실업자 130명 만들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조 기부왕’으로 알려진 고(故)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이 설립해 수십년 동안 운영하던 타일 제조업체 삼영산업이 경영악화를 이유로 전 직원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이 회사는 최소 120억원이 넘는 회사 자산을 관정이종환교육재단(재단)에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영산업 대주주는 지난해 9월 별세하기 전까지 회사 지분의 99%를 가진 이 전 회장이었다.

124억 기계장비 재단에 기부…“자본잠식”

'1조원 기부왕' 고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이 설립한 타일 제조업체인 경남 김해시 삼영산업. 연합뉴스

'1조원 기부왕' 고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이 설립한 타일 제조업체인 경남 김해시 삼영산업. 연합뉴스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다트)에 공시된 삼영산업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삼영산업은 2020년 124억5300만원 상당의 회사 기계장치를 관정이종환교육재단에 출연하고 기부금으로 처리했다. 그 해 삼영산업은 151억원이 넘는 큰 손실을 봤다.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은 “관정이종환교육재단에 장부가액 124억5300만원인 기계장치를 출연함에 따라 당기순손실 151억5300만원이 발생했다”고 감사보고서에 썼다. 이어 “이로 인해 자기자본이 105억5400만원에서 (-)46억원으로 자본잠식됐다”고 했다.

1972년 9월 설립된 삼영산업은 최근 4년간 영업손실이 커졌다. 삼영산업 감사보고서(2020~2022)에 따르면 2020년 자본잠식에 빠진 이후 부채가 늘었다. 현재 누적 부채는 160억원으로 파악됐다. 전반적인 건설경기 악화로 건축용 자재인 타일 판매에 애로를 겪은 데다 원자재, 가스비 인상 등이 겹치며 경영 악화가 심화됐다고 한다.

설비뿐만 아닌 건물·토지도 재단에 기부

고 이종환 전 삼영화학그룹 회장이 2019년 7월 30일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고 이종환 전 삼영화학그룹 회장이 2019년 7월 30일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게다가 삼영산업은 2007년 회사 건물과 부지도 관정이종환교육재단에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등기부등본을 보면, 회사 건물은 2007년 재단에 출연하면서 소유권이 회사에서 재단으로 이전된다. 같은 해 본사 건물이 있는 부지(1559㎡)와 공장용 부지 일부(12만9245㎡ 중 8만279㎡)를 재단에 기부했다. 이 때문에 삼영산업은 공장 등 건물·부지와 기계장치(설비) 등을 재단에 임차료를 주며 사용해왔다.

삼영산업은 당장 이달 말까지 갚아야 할 금융권 채무 17억원이 없다고 한다. 삼영산업 연 매출은 300억원이 넘는다. 한기문 삼영산업 대표는 “건물·토지·장비 등이 모두 재단 소유여서 담보 잡아 대출을 받을 수도 없다”며 “(2020년 기계장비 기부할 당시) 이렇게 되면 회사 운영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종환) 회장님 계셨더라면 (해고 통보 직원) 퇴직금이라든가 딱 말끔하게 정리해주셨을 텐데. 자녀분이 상속을 포기하니까 주인이 없는 회사가 돼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게 됐다”며 “직원 퇴직금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하루아침에 직장 잃은 실업자 130명…“퇴직금도 못 받나”

'1조원 기부왕' 고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이 설립한 타일 제조업체인 경남 김해 삼영산업. 연합뉴스

'1조원 기부왕' 고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이 설립한 타일 제조업체인 경남 김해 삼영산업. 연합뉴스

김해시 등에 따르면 지난 15일 해고 통보를 받은 삼영산업 직원은 130명으로 파악된다. 직원들은 짧게는 1년 길게는 35년을 삼영산업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서무현 삼영산업 노조(한국노총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삼영산업노동조합)위원장은 “임금 체불은 없지만 당장에 급한 건 직원 퇴직금 32억원”이라며 “대부분 평생직장으로 알고 일해와서 갑자기 재취업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한편, 이종환 전 회장은 2002년부터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을 설립해 장학사업을 해왔다. 재단에 쾌척한 재산만 1조7000억원에 달한다. 재단에선 매년 국외·국내 장학생 수백명을 선발해 지원해왔다. 이 재단 장학생 수는 지난 23년간 1만2000여명에 이르고 박사학위 수여자도 750명에 달한다. 이 전 회장은 2012년 600억원을 지원해 서울대에 총면적 2만5834㎡ 규모의 전자도서관을 짓기도 했다.

지난해 7월 서울 성균관대에서 열린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장학증서 수여식에 모인 장학생과 재단 관계자들. 사진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지난해 7월 서울 성균관대에서 열린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장학증서 수여식에 모인 장학생과 재단 관계자들. 사진 관정이종환교육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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