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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성민 정치의 재구성

원희룡 "586 싸잡아 청산은 안돼…민주당 운동권이 타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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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원희룡 4시간 격정인터뷰 ② #보수도 진보도 '이중구조'가 문제의 본질 #586중 열려있는인재들은 청산 대상 아냐 #'가난팔이'는 불순,'인간 개조' 망상 깰 때 #당내 개혁파 '필요악' 인정하는 관용 절실

대한민국 정치는 표 얻는 기술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공익보다 사익을 앞세운 정치인들이 야기한 극심한 갈등은 국민을 좌절케 하고 나라를 퇴행시키고 있습니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정치의 재구성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정치인들을 만나 그들의 진단과 해법을 들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이준석 개혁신당 정강정책위원장·조응천 미래대연합(가칭)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에 이은 네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은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입니다.

지난 10일과(대면) 18일(대면) 및 23일(전화) 3차례 4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에서 원 전 장관은 '정치의 재구성'을 묻는 말에 "우리 사회문제의 뿌리는 말로는 가치를 앞세우면서 뒤로는 기득권을 고집하는 이중 구조로 이를 해체하는 것이 정치의 재구성"이라고 했습니다. 또 자신의 계양을 총선 출마에 대해 "이번 총선은 대한민국을 위하는 자와 대한민국에 맞서는 자와의 대결이라 그걸 분명히 하기위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터뷰 주요 내용을 ▶계양을 출마의 의미와 '윤석열-한동훈 충돌'에 대한 입장  ▶보혁갈등과 586 청산론 둥 우리 정치의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해법으로 나눠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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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찬호 논설위원

 (원희룡) 보수 몰락이란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4년 전 총선에서 민주당이 180석을 석권한 건 코로나로 인한 국민의 위기의식이 컸고 문재인 정부가 이를 핑계로 재정을 대규모로 풀어 포퓰리즘 선거를 치렀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보수의 몰락 계기란 주장도 동의하지 않는다. 탄핵은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서 비롯된 위기였을 뿐이다. 보수와 진보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번갈아가면서 정권을 잡으며 경쟁해온 관계다.
(박성민) 과거에 '민'자가 붙은 건 죄다 비주류를 상징했다. 민주당, 민변, 민노총, 민예총... 그런데 어느 순간 이들이 대한민국의 주류가 됐다. 유권자의 지형 변화 때문이다. 과거에는 무조건 민주당 찍는 사람이 20%였는데 지금은 30%로 늘었고 무조건 보수정당 찍는 사람은 30%에서 20%로 줄었다. 민주당을 지지하지만, 불만이 있으면 반대당 찍은 스윙보터가 20%, 보수정당을 지지하지만, 마음에 안 들면 반대당을 찍는 스윙보터가 30%다. 박근혜 탄핵은 이 두 스윙보터 세력이 민주당 지지층과 뭉쳐 80%란 '대세'를 만들었기에 일어난 일이다. 유권자 환경이 이렇게 전변한 마당에서 당연히 정치는 재구성돼야 한다. 당신이 생각하는 보수의 재구성 방안은?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일 서울 여의도에서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와 대담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일 서울 여의도에서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와 대담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원희룡)2000년에 한나라당 입당으로 정계 입문해 3선 국회의원과 재선 제주지사를 거쳐 대선 후보와 장관을 지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정치는 결국 재조정을 해주는 것인데 현재 우리 정치는 그 기능이 왜곡돼있음을 깨달았다. 우리의 정치가 안고있는 문제의 뿌리를 양극화에서 찾는 흐름이 많은데 난 양극화란 용어에 반대한다. 겉으로 드러난 빈부 격차만 따지는 거라서다. 우리 정치와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이중 구조'다. 기업도 노조도, 수도권과 지방도, 사회의식과 언론도 모두 이중 구조다. 겉으론 가치를 말하지만, 뒤로는 이권을 챙기는 구조다. 보수든 진보든 기득권화하면서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든 결과다. 이걸 타파해야 한다. 

 (박) 원 전 장관도 청산론이 거세게 제기되는 586세대다. 민주당 동년배들과는 차별화되는 변화된 정치를 보여줄 수 있나.

  (원) 586세대 전체를 싸잡아 청산하자는 건 적절하지 않다  ‘민주, 시민, 통일’ 같은 말을 40년 넘게 반복하면서 낡은 이념 학습에 집착하며 뒤로는 이권을 챙기는 민주당의 운동권 586이 청산 대상이지 변화의 흐름에 열려있는 유능한 사람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나는 이미 1987년 민주화 당시 변화의 흐름을 감지해 돌아선 사람이고, 나처럼 돌아서서 국민의힘에 온 사람들도 많이 있다.

  (박) 앨버트 허시먼이라는 정치경제학자가 쓴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Exit, Voice, and Loyalty)』란 책이 있다. 나이지리아 철도공사에서 벌어지는 일을 들여다보던 그는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독점이었던 철도공사는 같은 노선에 도로가 정비되면서 트럭과 경쟁하게 됐다. 경쟁이 치열해지니 철도 서비스는 나아질 것으로 여겨졌으나, 결과는 반대였다. 철도가 운송하던 화물이 트럭으로 죄다 넘어갔다. 독점일 때 고객들은 철도공사에 항의를 쏟아냈고, 공사는 개선책을 찾았다. 그러나 경쟁 체제가 되자 고객들이 가장 먼저 이탈했다. 철도는 경쟁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고객이 항의를 멈추고 트럭 같은 대안으로 이동해버리고, 둔감한 조직원들만 충성을 맹세하면 조직의 몰락은 빨라진다. 하지만 건강한 항의가 남아 있다면 조직은 최소한의 회복력을 갖는다는 게 허시먼의 이론이다.  항의하는 고객은 이탈하고 조직원들만 남아 '그들만의 리그'로 치닫는 것이 이중구조의 전형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그런 이중 구조 문제에 시달라고 있는 듯하다.

 (원) 그렇다. 그런 이중구조로 인해 정치의 역기능이 극대화돼 배제의 정치가 극성이다. 나는 한나라당 입당 당시 미운털 박힌 소장파였다.  그래도 그때는 필요악이라 인정하는 정서가 있었다. 지금은 진보, 보수 모두 이런 정서가 무너져 있다.

  (박) 민주당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연패한 것도 이중구조 때문 아닐까. 이른바 진보세력의 기득권화에 젊은이들이 절망하는데도 반성하지 않고 내로남불을 고수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원) 민주당은 '경제성장 시절 소외된 마이너리티'란 트라우마에서 여태 벗어나지 못했다. 대한민국 성장사의 수혜자임에도 군부와 관료, 재벌이 밉다 보니 외부자적 시각으로만 바라본다. 북한과 중국에 대한 막연한 호감과도 단절해야 되는데 안 보이는 끈으로 엮여 있다. 자연히 대한민국을 내파하려는 세력과 엮인다. 국제질서의 흐름에도,  자유로운 개인으로 태어난 젊은이들의 행동 원리에도 안 맞는다. 그러니 앞으로도 민주당은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맬 소지가 많다. 이와 차별화하는 게 보수의 갈 길이다. 이는 결코 낡은 색깔론이 아니다.

  (박) 국민의힘도 이중구조가 심각하지 않은가.세상엔 ① 변화를 이끄는 세력 ② 변화를 뒤쫓는 세력 ③ 변화가 두려운 세력 ④ 변화에 둔감한 세력이 있다. 나라와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야할 집권당이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최소한 둔감하다. 통찰이나 성찰 없이 현찰만 좇는다.

 (원)보수의 이중 구조는 경제 성장 시절의 기억에 붙잡혀 새로운 시도를 못 한다는 거다.국가와 사회, 경제와 일상, 지역과 국토 공간에 자유의 활력을 불어넣는 자유주의 혁신이 절실하다. '다른 것'들에 대한 소통도 강화해야 한다. 

  (박) 제주도는 4.3이라는 비극적 사건이 있었다. 당신은 그곳의 가난한 감귤농장주 자식으로 태어났고, 서울 법대에 수석 입학한 뒤 운동권이 됐다. 좌파 정치인이 돼 반미·반일로 갈 수도 있었는데, 반대의 길을 갔다. 당신이 보수 정치인이 된 건 한나라당에 입당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보수 정치인이 될 생각을 했기에 한나라당에 입당한 건가?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 장관 시절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답변하는 모습. 뉴스1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 장관 시절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답변하는 모습. 뉴스1

 (원) 결론부터 얘기하면 내면에 변화가 있었기에 한나라당에 들어간 거다. 난 가난이 익숙하지만, 가난 팔이 하고 싶지 않다. 그건 불순하다고 본다. 가난하면, 살아남기 위해 하기 싫은 걸 해야 한다. 또 국가가 가난하면 국민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 개인과 국가의 가난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다만 가난 문제를 100% 완벽하게 푸는 정답은 없다. 스펙트럼이 있을 뿐이다. 그 스펙트럼 안에서 더 진보적이냐 더 보수적이냐의 차이가 있는데, 서로가 인정하면서 조정해가면 된다고 본다.  

 실존적인 전향 과정을 얘기한다면 1980년대 대학생 시절 민주화 운동에 천착했던 나의 정체성은 1989년 스스로 무너졌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북한의 실상이 드러났으며 우리나라도 군부가 민주주의를 수용하면서다. 당시 출범한 노태우 정부는 전두환 정권 때 쌓은 경제적 과실을 바탕으로 순기능 역할을 많이 했다. 좌파 세력까지 민주화 체제에 통합되면서 나는 '이젠 쿠데타 걱정은 없다. 최소 민주주의가 이뤄지고 있다. 투쟁으로 민주화를 이룬다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사회주의란  이념과 혁명이란 투쟁 방식을 다 버린다고 선언했다. 이어 법을 공부하기 시작하니 헌법 가치만 구현해도 좋은 나라로 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국민의 권리나 권력의 견제, 균형의 원리가 1987년 헌법에 다 담겨 있더라. 인간이 인간을 이념으로 개조한다는 건 교만한 망상이며 전체주의나 독재로 언제든지 갈 수 있다.
 (박) 우리는 일제에 의해 조선 왕조가 멸망했다. 그 때문에 해방 뒤 왕정복고 대신 공화정이 수립됐는데 이 점에서 이승만이 평가를 받는다고 본다. 이승만은 20세기도 되기 전인 1898년 23세 나이에 우리 역사상 첫 근대적 시민운동인 만민공동회에서 왕정 폐지를 주장했다가 감옥에 갔다. 이처럼 공화정의 토대를 놓은 지도자나 공화정의 물적 기반을 만든 지도자는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공화정의 내면화에는 실패하고 있다. 라인홀드 니버가 "진보의 문제는 비도덕적 이슈를 도덕적 방식으로 풀려는 것이고 보수의 문제는 도덕적 이슈를 비도덕적 방식으로 푼다는 것"이라고 했다.

 (원) 아무 생각 없이 저절로 발현하는 인간의 속성을 긍정하는 게 보수다. 웬만한 욕망은 타인에  피해를 안 주면 인정해준다.  국가가 쓸데없이 개인을 간섭하면 전체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다고 보는 거다. 나도 철저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출발한 정치인이다. 학교에서 받았던 교육, 즉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임을 내면에 받아들인 사람이다. 누구보다도 국가를 사랑하지만 말이다.  

 민주당은 거꾸로다. 욕망은 자연스러운 건데 탐욕이라고 몰아붙인다. '강남에 살아봐서, 아이들 특목고 보내봐서 아는데 강남 살고 특목고 보낼 필요 없다'고 한다. 위선 아니냐.  이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동원하는 게 이런 분노와 배제와 팬덤의 정치다. 민주화는 군부까지도 동의한 거 아닌가. 민주당이 그 브랜드를 가져간 건 정치적으로 영악했을지 모르지만 독점할 수는 없다고 본다. 특히 586 운동권들이 민주화 운동을 자산화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건 이중성의 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