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빌런’ 있어야 뜬다…독해진 연애 예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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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최근 시즌 3이 공개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연애 프로그램 ‘솔로지옥’. [사진 넷플릭스]

최근 시즌 3이 공개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연애 프로그램 ‘솔로지옥’. [사진 넷플릭스]

지난 9일 전편이 공개된 넷플릭스 11부작 예능 ‘솔로지옥3’에서, 한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쟤, 얘, 얘”라고 지목한다. 이를 지켜본 스튜디오 패널인 배우 이다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저건 정말 마이너스 행동이네요”라고 말한다. 이에 다른 패널들도 공감했다.

지난 2021년 시즌1으로 시작한 연애 예능 ‘솔로지옥’은 최근 공개된 시즌3이 가장 큰 성과를 거뒀다. 공개 첫 주에 넷플릭스 글로벌 TV쇼(비영어) 4위로 올랐고, 전 시즌을 합쳐 처음으로 7000만이 넘는 누적 시청시간을 기록했다. 6000만대였던 이전 시즌과 가장 달라진 점을 꼽자면, 빌런(villain) 캐릭터의 등장이다.

악당 또는 악역을 일컫는 빌런은 연애 예능의 중요한 요소가 됐다. 여러 이성을 놓고 ‘간’을 본다거나 무례한 말을 하는 등 빌런의 악행이 화제가 되면, 프로그램의 존재감도 덩달아 높아진다. 일례로 2021년 1기를 시작해 최근 18기를 방영 중인 연애 예능 ‘나는 솔로’(SBS Plus·ENA)도 강력한 빌런 캐릭터가 나올 때마다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을 보였다. 지난해 16기 돌싱 특집에선 출연자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방송분(9월 27일)에서 4.1%(닐슨)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연애 예능 속 빌런은 형식의 다양화 과정에서 등장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연애 예능은 더 이상 트렌드가 아니라 하나의 장르로 정착했는데, 플랫폼 다양화로 콘텐트 수요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제작비를 크게 들이지 않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안전한 기획이기 때문”이라며 “다만, 콘셉트가 겹치면 안 되니 출연진을 세분화해 차별화하는 시도가 최근 몇 년 새 강하게 일었다”고 분석했다.

‘환승연애’. [사진 티빙]

‘환승연애’. [사진 티빙]

우선 젊은층 위주의 일반인 출연자 범위가 넓어졌다. 헤어진 옛 연인(티빙 ‘환승연애’), 10대 연인(넷플릭스 ‘19/20’, 티빙 ‘소년 소녀 연애하다’), 동창(MBC ‘학연’), 이혼남녀(MBN ‘돌싱글즈’) 등 다양한 관계와 삶을 다루게 됐다. 넓어진 일반인 출연자의 범위로 인해 연애 예능은 청춘 남녀의 이상적인 로맨스를 넘어 현실에 가까운 연애를 보여주게 됐다.

특히 관찰을 전제로 하는 리얼리티 예능의 경우 현실에 밀착하다 보니 빌런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커졌다. 따라서 빌런의 특성이 드러나게 편집하거나, 등장 분량을 늘리기도 한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예쁘기만 한 연애는 지루하고, 현실성도 없다. 빌런이 등장하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연애 예능이 이를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리얼리티 예능의 효과를 극대화한다”고 짚었다.

출연자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방송분으로 지난해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나는 솔로’. [사진 SBS Plus, ENA]

출연자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 방송분으로 지난해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나는 솔로’. [사진 SBS Plus, ENA]

‘솔로지옥’ 김재원 PD는 “(무례한 행동도) 관심 있는 이성을 향한 마음인데, 편집했다면 왜 여자들이 화났는지 등 맥락을 알 수 없었을 것”이라며 “러브 라인과 관련된 건 그대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례한 행동에 아무도 관심을 안 줘) 분량이 없겠다 싶었는데 (여성 출연자 마음의) 불씨가 하나하나 살아나더라. 이런 상황을 보는 재미가 컸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예능에서 빌런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건 패널들 반응이다. 중립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선을 넘는 출연자에 일침을 가하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하재근 평론가는 “TV 예능의 일반적인 속성은 비난을 줄이고 최대한 좋은 쪽으로 포장하는 것인데,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반응하는 지금 시대에는 포장만 할 수는 없다”며 “패널들이 시청자 마음을 대변할수록 프로그램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빌런이 활약할수록 연애 예능을 소비하는 시청자 마음은 설렘으로부터 거리가 멀어진다. 대신 분노와 짜증이라는 또 다른 자극을 느끼고 반응하게 된다. 그런데도 계속 보는 이유는 뭘까.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연애 예능은 동일시 효과가 중요하다. 그동안은 출연진과 나를 동일시해 대리 만족하고 설렘을 느꼈다”며 “빌런 등장 이후엔 그 상황과 내 생활 반경을 동일시하며, 그 때문에 감정을 더 이입하고 빌런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식으로도 프로그램을 소비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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