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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문일지십(聞一知十)과 안회(顔回)

중앙일보

입력

자공. 바이두백과

자공. 바이두백과

공부하기 쉽지 않다. 만약 이 결론에까지 이르렀다면 그는 공부를 시작해도 된다. 멀리 갈 채비는 갖추었기 때문이다. 내일이라도 생경한 외국어 공부를 하나 시작해 보라. 이거 간단치 않다. 당장 하루 소홀히 하면 이틀 공부가 실종된다.

당장 일본어 한자 읽기와 독일어 명사 성별, 그리고 중국어 네 성조, 이런 각 언어의 낯선 요소들은 우리 유구한 배달민족의 혀와 뇌에 고약하게 쓰거나 매운 맛을 선사한다. 하물며 더 고차원의 논리적 사고가 요구되는 학문 분야라면 ‘8부 능선’까지 오르기가 마음처럼 그리 수월치 않다.

이번 사자성어는 ‘문일지십(聞一知十)’이다. 공부하기와 무관하지 않은 이 네 글자는 우선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나를 듣다’가 ‘문일’이고, ‘열을 안다’가 ‘지십’이다. 하나를 듣고 능히 열을 아는 인물이 있을까. 안회(顔回)가 이런 인물이었다. 공자가 하루는 제자 자공(子貢)을 따로 부르더니 질문 하나를 툭 건넨다. “너는 너와 안회 중에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냐?” ‘뭐, 뭐요?’, 자공은 이런 표정으로 반응한다. 질문이 벌써 우문(愚問)이기 때문이다.

스승은 늘 안회를 공개적으로 칭찬해왔다. 제자라면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이 평판을 스승이 새삼 묻고 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린 자공은 표정까지 진지하게 바꾸어 현답(賢答)으로 위기를 수습한다.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능히 열을 알지만, 저는 겨우 둘을 압니다.” 논어 ‘공야장(公冶長)’편에 기록된 이 우문현답 일화가 바로 ‘문일지십’의 유래다.

우리는 이 ‘문일지십’ 문구 자체의 현대적 이해에 있어 핵심을 두 가지 각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경청하는 능력의 중요성이다. 둘째, 스스로 추리하는 능력의 중요성이다. 안회가 이 두 장점을 갖춘 인물이기에 스승도 다른 제자들도 젊은 그를 가볍게 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참고로, 안회는 말수도 적고 내성적인 인물이었다. 공자조차도 초기엔 어쩌면 그가 우매한 인물일 수도 있겠다고 의심했을 정도다. 하지만 안회와 긴 대화를 나눠본 이후 스승 공자는 의심을 거두고 그를 각별히 아꼈다. 그는 공자의 유교적 가르침을 따르는 삶에 장애물이라고 판단해 공자의 적극적 권유에도 관직 진출을 마다하고 학문에만 매진했다. 재물에도 무심했다. 경제적으로 그리 여유롭지 않았음에도 행실이나 처신이 이러했다.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생애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단명했다. 근대 이전 동양 사회의 인물평인 품인록(品人錄) 문화에서 동량지재(棟梁之材)의 으뜸으로 언급되곤 한다.

그런데 필자는 앞의 ‘문일지십’ 일화에서 자공의 비유적 현답에도 마음이 간다. 특히 거기에 등장하는 숫자들에 주목할 필요는 느낀다. 근대화를 거친 이후 중국에서도 자공에 대해서는 평가가 나쁘지 않다. 자공은 상인으로서의 자질이 출중했다. 누구보다 숫자에 밝았다. 이 짧은 즉흥적 답변에서 그는 숫자 1, 10, 그리고 2를 언급한다. 그가 언급한 이 숫자들은 당시에도 여러 함축적 의미가 있었다.

숫자 1은 현대 수학의 초심자라면 여전히 주기적으로 곱씹고 고민하는 숫자다. ‘대체 1이란 무엇인가’, 이런 식으로 말이다. 두뇌에 이 숫자 1이 정의되고 안착해야 비로소 정수론 체계가 잡혀 가깝게는 가감승제에서 멀게는 선형대수까지 수학 세계의 엔진에 시동이 걸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공이 자신의 수준으로 겸허히 언급한 이 숫자 2는 요즘 AI 시대의 핵심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그가 언급한 숫자 10도 동서고금 막론하고 그 의미가 크다. 숫자 10은 10진법 체계의 요체일 뿐만 아니라 ‘완전하다’라는 뜻도 함축되어 있다. 불교에서 상하까지 아우르는 모든 방향, 즉 공간을 뜻하는 시방(十方)이란 말도 쓰인다.

최근 교육 정책과 관련하여 말들의 성찬이 오가며 다투고 있다. 그 와중에 ‘과잉 경쟁’과 ‘적정 경쟁’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적정’인가는 다시 우리에게 표준화와 계량화라는 숙제를 남긴다.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이다. 교육 정책에 더 명징한 통찰과 더 투명한 숫자 제시의 병행이 요구되는 이유다.

홍장호 ㈜황씨홍씨 대표

홍장호. 더차이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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